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 - 양장
김진명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궁화 꽃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김진명의 장편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하나의 허구화된 역사소설이다.
역사의 한 사건 즉 재미물리학자 이용후(본명/이휘소)박사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흥미있게
엮어나가는 소설이다.

 
이용후 박사의 살인이 역사 속에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는 것을 주인공 권순범 기자가
사건을 부탁 받으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1,2권은 권순범 기자가 이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주테마이다. 이 과정 속에서 다소 영화적인 구성-필연성의 결여로 인한
디펙트Defect-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외국에서 권순범 기자와 이미현 두 주인공이
호텔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야기나 레스토랑에서 킬러에게 적당히 조치를
취함으로써 목숨을 구한 일 등과 같은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소설의 흥미를
더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3
권은 이용후 박사의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가운데 남.북한 간의 합작으로 핵무기
개발이 추진된다. 소설의 말미에선 시간적 배경이 1999년으로 이동되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략행위에 대해 남북한간의 합작 핵탄두 미사일로 대응한다. 결국은 일본에 대한
'
거룩한 용서'를 마지막 장(
)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3
권에서도 급진적인 스토리 전개에 따른 구성상의 무리가 없지 않다. 이러한 오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독특함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픽션을 읽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종의 찰나적인 독서행위에만 그친다고 한다면
이 소설의 성과를 과소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 주는 유익-무언가 교훈적인 의미를 강하게 어필하는-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편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 주위의 주변 강대국이 가지고 있는 시각, 일본의 독도
침공 시 우리나라 국민들의 분노함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민족적 공감대, 일본에
대응하고자 핵탄두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하는 우리 대통령의 발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 등과 같은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의식부재 경향이 짙은 젊은 세대들에게 김진명의 소설은 이런 긍정적인
영향도 끼쳤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부정적 영향,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소설이 이 시대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고
미약한 우리 세대에게 주는 역사의식(인식)인 것이다. ,  소설의 픽션화된 60년대,
70
년대, 80년대의 역사의 정보-단지 우리에겐 역사에 대한 안목의 결여로 인해 그것이
단지 정보에 그칠 뿐이다-가 우리 세대에게 그것의 정제되어짐이 없이 그대로 주입된다면
역사에 대한 심한 왜곡과 곡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한 경계 없이 '픽션'
그 자체를 역사인양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소설이
줄 수 없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 소설만이 가지는 영향력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적 영향이라 명명하고 싶다.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서 오는 유한성(한계)-소설이라는 장르 그
자체가 허구성을 동반하기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다소 희박하다는 성질-
을 과감하게 탈피하면서 독자들에게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역사의식을
제공하는 영향력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만이 가지는 '독특함'이며 '탁월함' 이다. 제목에 대한 해석을 붙이자면,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 계획의 암호명인 동시에 남.북한
간의 합작 핵무기 개발 계획의 암호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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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대구제일서적 독서감상문대회에서 입상한 글입니다~ㅎ
 
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로리타 Lolita>

어떤 소설가는 충동(inspiration)에 의해서 소설을 쓴다. Vladimir Nabokov도 그것이 ‘Lolita'의 창작의 서곡이었다. <로리타>는 1953년 쓰여져, 1955년 논란 끝에 프랑스에서 첫 출간되었고, 영국에서는 아예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졌으며, 미국에서는 1958년에야 출간 될 수 있었던 문제작!

 

줄거리

슬픈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중년 남자 - 험버트의 회고록식의 이야기이다.

유럽인이며 무정부주의자인 험버트는 뜨거운 여름, 강의차 미국 뉴잉글랜드에 들른다. 샬로트라는 미모의 미망인의 집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그녀의 딸 -로리타를 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10대 소녀와 중년 남자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안 험버트는 결국 ‘로리타와 함께 하고자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샬로트(로리타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험버트는 샬로트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생물학적으로 이것이 로리타에게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다 라고 했다. 하지만 샬로트는 험버트의 병적인 로리타에 대한 집착과 애정을 알고 너무 격분한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이때부터 로리타-아무런 혈육도 없는 ‘고아’-와 험버트의 정처없는 여행이 시작되면서 ‘근친상간’의 비극이 시작된다. 처음에 조숙한 로리타는 험버트를 향하여 애로틱한 유혹을 발산하지 않지만 점차적으로 그를 유혹하는 태도가 명백해진다. 일단 금기가 무너지자 험버트의 깊게 가려졌던 성애의 폭발은 로리타를 자신의 변태적인 성적충동의 목표로 삼게되고 그녀를 독차지하려는 몸부림과 함께 타락의 행각을 만들어간다. 자동차를 타고 미국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모텔과 호텔과 여관에서 지내며 여행한다.(1947년 8월부터 1948년 8월까지)...

의붓아버지인 험버트는 로리타를 ‘비어드슬리의 사립학교’에 보내어 교육에 신경 쓰기도 하지만 로리타의 정서적인 공백은 더해지고 결국 학교도 그만 두게된다. 둘의 여행은 다시 또 시작된다. 그러다가 로리타는 험버트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여기엔 이들을 미행하던 Q라는 인물이 개입된다. 로리타를 찾아 나서다 결국 포기한 험버트는 자신의 나이의 3/4인 리타를 만나 1950.여름-1952.여름 동안 떠돌아다니게 된다. 후에 로리타의 편지를 받은 험버트는 로리타를 만나러 가는데 이때 그녀는 딕의 아내였고,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로리타를 통해 Q(퀼티)가 자신에게서 로리타를 강탈해간 인물임을 알고 그를 권총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험버트는 감옥에서 회고록을 두고서 자신의 강렬한 카르멘, 사랑이었던 로리타를 예찬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에 대하여

1956년 소설가인 그래함 그린이 그 해 세 권의 베스트 소설의 하나로 선정하면서 관심을 끌 게 된 <로리타>는 극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이 가운데 하비 브레이튼이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평을 통해 놀랄 만치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며 극찬했는가 하면 런던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편집자는 <내가 읽은 소설 중 가장 외설적인 작품>이라는 비난을 보냈다. 이같은 논쟁의 와중에 독자들은 빈정거리면서도 아름다우며 독창적인 문체와 삼류 소설을 읽는 듯한 자세한 성 묘사,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후에도 계속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는 황폐한 인간의 쓸쓸함을 환기시키는 이 작품에 대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고 한다.

 

“어린 아메리카를 유혹하여 더립히는 늙은 유럽”이라는 평론가도 있는가 하면 “나보코프의 연애사건을 낭만적인 소설로 기록한 것”으로 치부하는 이도 있다. 나의 조촐한 생각을 이야기해보자면 볼세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Nabokov는 비록 미국시민이긴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인의 혈통이 흐르고 있다. 그의 외국인에 관점에 바라본 아메리카 대륙의 demoralized된 상황을 구석구석에 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그림자도 스며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행도중에 둘이서 본 영화와 상업광고, 숙박업소의 풍경 속에서 유독 그러하다.

Nabokov는 ‘“로리타”에는 아무런 구속적 모럴도 없다. 나에게서 있어 소설작품은 내가 무뚝뚝하게 ‘미학적인 기쁨’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에게 제공해 줄 때만 존재한다.‘라고 했다.

“defeat time and destroy reality"가 그의 예술론이었듯이 ”Lolita"도 그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여담

"로리콘". 10대 미만 또는 10대 초반의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고 이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소아에 대한 이상 성욕을 가지는 것으로 "로리타 컴플렉스" 라고도 하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로리타" 라고 부른다. 이미 일본의 로리콘 산업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근대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70년대부터이다. 이 당시에는 유럽에서도 어린이 포르노가 합법적으로 제작, 유통되었으며 모방하기 좋아하는 일본은 이를 사진 예술이라는 거창한 거짓말로 포장해서 어린이 누드 사진집을 만들어 냈다. 당시의 일본은 유럽을 모방하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청출어람이라고 할 만한 경지에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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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뱀을 찾아서 - 1993 제1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남상순 지음 / 민음사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남상순의 이 작품은 나로 하여금 잦은 웃음과 소박한 기쁨에 젖어들게 한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주 솔직담백하게 내어놓음으로써 독자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글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어린 아이의 눈에서 바라 본 시골의 풍경과 사건과 이야기들이 아주 감칠맛나게 어우러져 있다. 이렇게 즐거운 책을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강력히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읽으면서 손을 놓기가 싫은 ‘너무나 즐거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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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 1992 제1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일문 지음 / 민음사 / 1992년 6월
평점 :
품절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살아남은 자의 치유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의 시에서는 죽어버린 자와 살아남은 자가 나온다. 살아남은 자는 죽어버린
자에게 애석애함과 동시에 미안해함을 지우지 못하는 풍경이 나온다.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발췌하면서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고 있다. 80년대의
민중을 위한 리볼루션, 운동을 했던 죽어버린 세대와 변해가는 시대와 탈색되어지는
시대정신에 대해 90년대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치유

 박일문의 산발적이면서도 도발적인 글쓰기의 작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리트머스
종이에 물이 흡수되는 것처럼 강한 흡인력으로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끔 한다. 아무리
뛰어난 고전이라도 한 번 완독 후에는 책을 덮어버리는 나에게, 두세 번 책을 다시
읽게끔 한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라라와의 이별 그리고 디디의 죽음, 이 두 가지의
큰 이야기의 맥을 이어가면서 작자는 운동권의 이념과 생각과 관념들을 곁들이고 있다.
90년대 학번인 나로서 솔직히 80년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운동을 하는
자들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조차 완독치 못하고 운동한다는 저자의 말에 이끌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자 책을 구입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모든 그
시대의 아들들은 그 나름대로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다. 그 슬픔, 그 울분,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나가면서 생을 어떠한 방향으로 건설해 나갈지가 바로 또 하나의
딜레마(dilemma)일 것이다.  
 

 이율배반적인 세상, 이율배반적인 생의 구도

 

 시대니 민중이니 하는 모든 운동의 주체자들이 인간인 이상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계속적으로 반복되지 않겠는가? 그 이율배반은 단순한 운동권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와 인간관계, 심지어 사랑에서도 나타난다. 그 가운데 늘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체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로써 그런 80년대의 삶의 작풍을 드러내
놓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한 시대를 보냈다'라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이
90년대로 연장되는 현재의 삶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이율배반적>인 구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진정한 리벌루션은 바로 '한 인간' 각자에게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80년대는 이른바 민중이니 대중이니
사회니 하면서 공동체적인 노래를 불렀다면 90년대, 더 나아가 2000년대는 보다 더
개인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큰 차별점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대충 뭉쳐서 부른 노래가 이제는 더 개체적인 노래로 불려져야 할 것이다. 마치 뭉쳐지지
않는 모래알 같은 우리 시대에 리벌루션은, 운동은 각 개개인에게서 퍼져 나와야 할
것이다. 한 인간, 한 존재로부터 말이다. 그리고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함께 나란히

놓여져야 할 것은 '살아남은 자의 치유, 재생, 회복'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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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AND PREJUDICE - Tape 3개 포함
JANE AUSTEN / Oxford(옥스포드)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제인 오스틴 당시의 문학이 추구하던 주된 테마가 일종의 Outside적인 것들이 소재였다면,

이 소설의 테마는 특이하게도 Inside적 인 것이었다.

 당대의 분위기를 역류하면서 자기만의 소리를 높인,

<오만과 편견>은 남녀관계의 본질과 결혼을 위한 진정한 조건을 정확하게 파헤친,

Inside적의 소설의 걸작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작자는 남자주인공 다르시가 가진 오만함-다르시는 재산, 집안, 가문, 성격, 지성,

외모 그 어떤 면에서도 나무랄데 없는 탁월한 신랑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 영특한 엘리자베스의 이성(Sense)적 판단-리즈는 가문의 열악함, 재산의 빈궁함,

거기에다 가족들의 변덕스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지성과 탁월한 통찰력을 지닌

여인이다-의 벽에 부딪혀 청혼이 거절되는 장면부터 ‘살 떨리고 가슴 졸이는’

애정의 명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다르시의 천성적인 오만함은 엘리자베스에게 편견이라는 장벽을 더 쌓게 만들고 만다.

제인 오스틴은 이 두 남녀의 오만과 편견의 실타래를 풀어헤치면서



 

“애정의 좋은 토대는 단지 호의를 느끼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성적인 자각이 뒷받침된 감사와 존경”

 

 

 

임을 말해 주고 있다.

 

 엘리자베스를 위한 다르시의 사랑과 헌신은 단지 격정적인 몸부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충만함에 기반된 이성적인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에서 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감수성만 넘치는 어린 리즈의 여동생 리디아와 불량끼가 넘치는 바람둥이 죠지 위컴의

도피행각에 대해서 다르시가 베푸는 선처와 위컴의 성격에 대해 경고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부분은 독자들로 하여금 남자로서의 자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용과 책임의 크기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사람들에게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다르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의 각질이 차츰 떼어지고 둘은 진정한 애정의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애정의 좋은 토대가 이미 구축된 이 커플에게는 양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이 엄청난 지성의 산물을 10대 후반에 썼던 저자, 제인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는 사실은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은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녀가 삶과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정신적인 무장을 했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자신에게 적합한 배우자를 결국 찾지 못했다는 결론을

독자인 나로서 스스로 내리면서 쓴 웃음(?)을 지어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후 적은 글이다...벌써 몇 년이 흘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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