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반양장)
전광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링컨’하면 어린 아이들도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위인’에 분류되는 인물이다. 초등학교시절 독서를 이야기하면서 링컨이 책 살 돈이 없어서 책을 빌렸는데 그 책이 밤새 내린 빗방울이 새는 지붕으로 흘러들어 책을 다 젖게 만들었다는 일화, 그렇지만 링컨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책 주인에게 고했다는 일화...이 링컨의 일화는 모든 이들에게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링컨 이야기를 썼다는 것 자체도 그렇고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이라는 제목도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은 링컨, 너무나 유명한 링컨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책장이 쉽게 넘겨지지 않았고, 지갑에서 돈을 끄집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단숨에 읽게 된 계기는 바로 이 책의 저자 ‘전광’목사님과의 만남이다. 우연한 교회 행사관계로 이 분을 초청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 목사님을 섭외하고 픽업하고 그 분의 책을 판매하는 모든 책임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분의 인격을 전화상으로나마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동네아저씨’같이 겸손한 분이셨다. 그리고서 안 것은 그 분이 한국교회 내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이다. 기독교 서적이 60만부 이상 팔렸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다고 했는가? 그 분은 평범한 링컨을 소재로 하여 비범한 스토리를 일구어냈고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링컨’을 재조명해주는 이슈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한 가지에 깊이 매료되면 그 우물에서 퍼낼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전광 목사님의 발언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한 분야에 올인All-in하게 되면 깊이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링컨이란 인물에 대해 매료된 나머지 그 링컨을 파 볼려는 의지가 있었던 전광목사님의 동기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가자마자 링컨연구에 심취하게 되었고 결국 베스트셀러작가로 등극하게 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링컨의 신앙의 십계명을 소개하면,


* 링컨의 신앙의 십계명


제 일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 생활에 힘쓸 것입니다.


제 이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실천할 것입니다.


제 삼은, 나는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입니다.


제 사는,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입니다.


제 오는,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제 육은,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입니다.


제 칠은,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만 영광을 올려 드릴 것입니다.


제 팔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습니다.


제 구는,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입니다.


제 십은,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아멘.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쉽게 그리고 디자인도 알차고 보기 좋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빠져들 정도로, 단숨에 읽게 되었는데, 링컨이 정말 정직한 인간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언들은 자신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의미심장했다.


무엇보다도 링컨은 자신이 ‘영의 식탁에 나아가기 전에는 육의 식탁으로 나아간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경건의 시간을 지키며 자신의 신앙을 가꾸어나간 인물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도전했다. 나라의 모든 국정을 치르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는 어머니의 신앙 교육하에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늘 무장해갔던 위대한 신앙인이라는 것이다. 그가 기도응답으로 받은 남북전쟁에서의 승리, 노예해방 제도의 관철은 그가 기도하고 일어섰을 때 승전보로 전해졌다는 사실과 그가 암살당하는 꿈을 꾼 그 날, 기분전환을 위해 갔던 극장에서 암살당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경이적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조차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것을 링컨의 개인사를 통해 확신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 ‘몸’중심주의의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타인의 영혼을 위해, 노예 해방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 자신을 드렸던 링컨의 일관된 신앙과 가치는 정말 본받을만한 일이다.


이 책은 진짜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단순하게, Clear하게 쓰여졌으며 내용도 복잡하지 않고 명쾌하게 쓰여졌다. 그래서 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도 모른다.


Written By Karl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민길호 지음 / 학고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민길호/ 학고사


이틀만에 ‘고흐의 자서전’을 단숨에 읽어들였다. 그것도 주말과 주일에 걸친 대장정term...

에 말이다. 독서의 쐐기를 이렇게 긴박하고도 강렬하게 당길 수 있을까 싶다.

예술의 문외한인 내가 고흐를 읽고 그의 삶과 인생, 예술사를 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공감했고 즐거워했고 울부짖었으며 애도했는지...당신은 모른다.

가슴, 심장이 벌떡벌떡 뛰어 올랐었다. 그 누구의 만족도 아닌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화가의 길을 숙명적으로 걸어갔고 그길을 위해 어떠한 고통과 슬픔과 상처도 감내해야했던 고흐...진정한 예술의 구도자의 길로 인해서 평생 남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인 빚을 지면서 가난과 싸워가야 했던 고흐. 그러한 경제적인 빈궁함으로 인해 고흐는 결혼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가 조금 더 일찍 세상에 알려졌더라면 그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어쩌면 그렇게 무명시절의 화가로 평생 지냈던 고흐의 삶은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인기와 명예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순수한 예술가의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고흐와 테오는 예술적 동반자였다. 고흐가 정신병으로 인해 결국 권총자살로 목숨을 잃고 난 후 테오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1년 후에 정신병으로 죽게 된다.

그의 비극적인 삶과 예술이 미개봉되어진 채 소각되었다면 얼마나 그의 삶이 아쉬웠을까? 神은 고흐의 진지함과 예술혼에 손을 들어주었고 그로 인해 고흐는 사후에 화가, 『진정한 화가』로 등극하게 된다. 그는 정말 ‘진정한 예술가’였다.

자기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귀를 잘라버릴 정도로 강렬한 피(血)의 소유자였다. 평생 행복해 보지도 못했지만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예술혼’은 나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자신의 소명을 위해 삶을 불태운 고흐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자기 자신만읜 satisfaction을 위해 피를 흘린 그 예술가가 정말 너무나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너무나 종교적인 그가

너무나 세속적인 방탕을 구가하면서도

너무나 자연친화적인 삶 가운데

자기의 그림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삶을 이토록 비극적으로 살아간 화가...예술가...입이 쩍 벌어진다.

그를 읽으면서 나를 보았고 내 삶을 둘러보면서 안정을 되찾았다면 그에 대한 모독일까? 찬사일까?

한 진정한 예술가의 피묻은 절규가 내 삶을 정화시키고 진정한 영혼의 울림에 대해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면 그것 또한 고흐의 예술이 아닌 고흐의 삶이 내게 선사하는 웅장한 울림, 떨림이 아닐까?

고흐...당신을 숭배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멈출 수 없는 시선, 책을 놓을 수 없었던 짤막한 순간!


바리데기를 읽는 순간 속도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나서 이불위에서 상반신만을 내놓은 채 등을 책장에 기대고 읽어댔다. 책을 읽기 시작한 시간은 정말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이건 한 여인 ‘바리’의 인생을 카메라로 들이대도 이렇게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는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탈북자 바리의 인생 이십 몇 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자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분단의 현실이고 이것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바리’는 분단의 현실 가운데 뼈아픈 과거의 이력을 가진 북한의 탈북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삶의 운명적 무게감!


‘아가야 미안하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나는 작가, 황석영의 주는 여운에 압도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니깐 사람들이 달라붙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바리가 자기의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아가야 미안하다’라고 하는 그 순간, 바리의 인생의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운명, 생활고, 생이별, 가족의 죽음, 가족 찾아 삼만리...그리고서 살자고 발버둥치는 바리...그리고 바리의 ‘바리데기’...영국으로의 밀항, 영국에서의 삶의 편린들...


그러한 모든 것들을 경험한 인생이 한 마디 하는 것이다.



‘아가야 미안하다’


바리는 영원한 생명수를 찾지 못했다고 본다. 그것은 이 땅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땅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영원’과는 거리가 먼 존재인 셈이다. 그런 한계 많은 인생이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지만 다른 인생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배려하고 미안하다고 고백한다...



‘아가야 미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윗…흠모할만한 인간적 매력과 신적인 기풍이 우러나는 인물이다.

다윗을 떠올리면 언제나 내 머리 속에 연상되는 것은 ‘로망스Romance’적인 분위기이다. 이 글을 적는 가운데 나는 ‘로망스(로맨스)Romance’라는 단어를 적으면서 나는 ‘로마서Romans’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렸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나의 순간적인 착각이었다. 신학을 오랫동안 공부하니 이런 단어선택에 있어서도 이런 착각을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이 ‘다윗: 현실에 뿌리 박힌 영성’이라는 책의 분위기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성경적인, 신학적인 분위기에 대한 색채가 이 책을 통해 문학적인, 현실적인 분위기로 아주 심도있게 유진 피터슨이 이끈다는 것이다. 푸른 초원 가운데 양 떼들을 방류해놓고 자신은 시냇가 에 앉아 수금을 연주하며 풍류를 즐기는, 시인의 자질과 음악가의 자질들을 충분히 그리고 유감없이 발휘하는 면모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다윗에 대한 상상은 교정이 필요하다. 자연이 펼쳐져 있기에 한 소절의 노래와 시가 노닐만한 구석과 공간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목자(양치기)의 일을 하면서 늘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는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양들을 지켜내야 할 목자의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다윗의 소년시절의 단면은 그의 인생을 다분히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기에 다윗에겐 ‘로망스’적인 요소가 다분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는 ‘유혹자’의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삶은 신적인 여가relax의 축과 인간적인 열병sickness의 축이라는 구도로 잡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두 가지 축에 대한 조망은 어쩌면 우리 인생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한 탐색과 아울러 내 인생에 대한 자잘한 반성들reflections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다윗의 신적인 여가relax의 축을 살펴보자. 다윗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릉도원에 누워 풍요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없이 여유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낭만적인 인물이었고 정열의 사람이었고 믿음의 사람이었다. 삶의 자잘한 기쁨들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다윗의 다윗됨은 모두 신적인 경유를 가진다. 그의 삶은 바로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면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신적theistic’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다윗의 하나님중심적인 삶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목은 바로 ‘골리앗’사건이다. 다윗은  ‘상황적인 광야’로 늘 내몰리지만 그 가운데 그가 더욱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다윗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가 다른 성경의 위인들과는 대별되는 ‘시와 음악’이라는 예술적인, 문학적인 요소를 소유하였다는 것이다. 시편의 무수한 시들이 그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다윗은 ‘시와 음악’은 말 그대로 ‘현실에 뿌리박은 시와 음악’이다. 고통가운데 신음하면서 그는 찬양하였고 시를 적었던 것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시편 57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강력하게 선포하며 찬양하고 있다. 이 모습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살아있는 다윗’의 모습이다. 도망자의 구질구질한 신세 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는’ 송축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또한 다윗의 삶은 인간적인 열병sickness의 축을 가진다. 그는 맹렬한 짐승들의 공격을 육박전으로 벌일만큼 인간적인 두려움과 불안의 열병이 가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소년시절의 경험은 후에 사울로부터의 피난길에서 수없이 앓았고 사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로는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이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사건으로 불거진 왕권문제 등이 그러한 삶의 흔적들이다. 이러한 삶은 ‘일상적earthy’이라 명할 수 있겠다. 말 그대로 다윗의 삶은 ‘역동성’ 그 자체였다.  현실안주와 안락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를 ‘인생은 하나의 모험’임을, 그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 주를 경외하는 법을 혹독하게 가르치신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인 법, 하나님은 다윗을 결코 고인 물처럼 놔두지 않으시고 콸콸 흘러, 굽이 굽이 흘러 시내를 채우고 강을 가로질러 바다를 향해 쭉쭉 뻗어가게끔 인도해가신다. 그것은 다윗의 삶의 생리일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아니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고전 1:24)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패턴이다.


평생 피로 얼룩진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낸 다윗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의 삶은 영적 전쟁터, 정신적인 전쟁터의 전사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영적 전쟁터’이다. 다윗의 인생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유진 피터슨은 문학적인 상상력을 성경적인 텍스트에다 불어넣어 성경의 인물들이 텍스트라는 땅을 딛고 일어서서 움직이게끔 하고 있다.이 책은 삼상, 삼하, 시편 그리고 신. 구약을 넘나들며 다윗의 삶을 테마 별로 조망해가는데, 그 글 솜씨와 글맛이 압권이다. 이전에 다윗을 설교할 일이 있어 이 책을 자주 인용. 참고하면서 얼마나 흥분하였던지…그 감격과 흥분은 이 책을 들추어 볼 때마다 되살아 날 것이다. 다윗의 시적 감각과 문학적 소양과 음악적 기질을 나름대로 음미할 수 있는 특권과 그의 삶의 리얼리티를 묵상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유진 피터슨이라는 영적 거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

오랫동안 부여잡고서 씨름했다. 읽지만 진도가 좀체 나가지 않아서 늘 조급해하다 이 책도 소화해내지 못했던 시간들.
이제서야 ‘다 읽었구나!’
다윗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관찰과 해석과 글은 정말 감동과 지적 해갈함과 다윗에 대한 인간적인 찬사와 신적 경이감을 불러 일으켰다.
탁월한 책, 삼상, 삼하, 시편 그리고 신.구약을 넘나들며 다윗의 삶을 테마별로 조망해가는 작가의 글 솜씨와 글맛이 압권이었다. 깨닫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인지와 도전은 나를 많이 흔들었다. 번역도 참 잘 된듯하다. 다시 이 책을 설교 시에 참고할 것 같다. 몰랐던 사실이 이 책에 많이 수록되어 있기에…. 200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마인이야기 3권은 2권에서 다룬 ‘한니발 전쟁’을 계기로 해서 로마는 이제 ‘팍스 로마나’를 표방하고 나선 자그마한 폴리스가 아니라 엠파이어제국(帝國)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발하는 정치적인 여정에 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이 과정 가운데 여러 가지 거듭된 정치적인 소용돌이들을 경험하게 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라쿠스 형제



그라쿠스 형제의 비극적인 결말

한니발을 물리쳤던 위대한 용사, 스키피오 아프카리누스의 외손자인기도 한 그라쿠스 형제들의 시대로 로마는 나아간다. 이 두 사람은 어머니 코르넬리아의 탁월한 교육을 바탕으로 정직한 정치적 해법을 찾아나가지만 결국 그것은 로마정치의 핵심인 ‘원로원’들을 자극하는 계기로 두 사람 개혁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로마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적인 성숙을 거듭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즉 그라쿠스 형제 가 비극적인 결말로 자신의 품은 뜻을 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더 나아가 그들이 정치판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젊음에서 오는, 순수함에서 오는 그 열정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정치판은 사람들을 달래고 얼러가면서 가야하는 것인데 두 사람은 젊고 패기가 넘쳤고 로마에 대한 개혁의지가 너무나 강했다. 아시다싶이 너무 강한 것은 잘 부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라쿠스 형제가 비극적으로 죽었지만 그의 어머니 코르넬리아의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살롱이 되었다는 것은 그라쿠스 형제의 역사적인 의미와 정치적인 의의를 시대의 정신이 읽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

평범한 평민 출신의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리우스는 군제 개혁을 시행했다. 로마의 의무병 제도를 지원병 제도로 바꿈으로 정치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마리우스는 평민 출신으로서 전쟁터에서 모든 것을 체득하면서 권력의 자리를 꿰찬 인물이다. 로마의 정치가가 될려면 군인으로서의 경험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더군다나 평민출신인 마리우스, 그에게 있어 전장의 경험은 그의 전부였다. 전쟁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전쟁이 없는 시기의 마리우스, 그에겐 정치감각의 결여가 그의 최대 단점이 되고 말았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지만 역사적으로 마리우스를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그가 ‘로마가 낳은 유일한 천재’,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혹은 케사르)와 연결되는 출발선이라고 해도 좋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는 카이사르의 고모부인 셈이다. 마리우스와의 혈육적인 인맥은 과거나 현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인맥으로 나아가게 된다. BC 84년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의 혁명에 참여한 귀족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의 딸 코르넬리아와 결혼함으로써 공공연히 급진파의 입장에 서게 된다. 1년 후에 술라가 동방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와 반혁명의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끌었고, 그후 카이사르에게 코르넬리아와 이혼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이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도망자신세가 된다.

나는 왜 카이사르가 술라의 명령을 거부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술라 진영인 반혁명파와 대립되는 정치적 노선인 마리우스와 킨나의 진영에 서 있기 때문이었을까? 술라는 카이사르가 틴에이저였을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읜 불쌍한 애니깐 그를 살생부에서 지워달라는 주위 많은 사람들의 권유로 어쩔수 없이 '카이사르'의 이름을 지우면서도

'그 청년의 머리 속에는 마리우스가 100명 쯤은 있을 것이다...'

고 말했던 대목에서 비범한 자는 비범한 자의 미래를 내다본다고 가늠하고 싶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관점에 대한 열정의 밀도가 떨어지면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일종의 독서의 열정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동맹시 전쟁

로마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시달릴 때 내부의 힘을 모아 실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승자의 혼미’는 말 그대로 로마 정치의 ‘내장질환’ 을 다루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맹시 전쟁’이다. 로마시민권을 달라는 동맹국들의 반발로 인해, 로마 시민권 획득을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로마는 이제 ‘로마 연합’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국가적인 시스템'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 6세의 도발

로마는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 6세와 3차에 걸친 전쟁을 하기에 이른다. 로마의 내장질환을 틈타 로마 정복의 꾀하는 미트라다테스 6세의 도발 행위는 그리 큰 파장을 불러 오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유명한 독재관이었던 술라와 그의 영원한 보좌관 루쿨루스를 만나게 된다. 로마의 ‘내장질환’을 잠재우고 자신이 생각했던 로마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본질적으로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술라는 자신의 ‘클리엔테스’격인 3만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그는 정치적인 모든 도구를 이용해 자신이 장기적인 독재관에 봉직하기에 이른다.


술라는 굉장히 영민한 정치가, 행정가이다. 그는 로마의 원로원 체제에 대해 업그레이드를 나름대로 만들어나가고서 갑작스럽게 독재관에서 사임한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술라의 정치적인 시스템은 흔들리게 된다. 술라의 이상과 로마의 현실이 불일치, 불균형이 초래한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결과물은 어떻다 하더라도 술라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행운아‘란 뜻)’라고 할 정도로 행운아인셈이다.



폼페이우스



폼페이우스의 시대

반술라파에는 세르토리우스가 있다. 그는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쳤지만 다시 군사를 모아 전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이를 평정한다. 크라수스는 ‘검투사들의 반란’을 진압한다. 모든 것을 갖춘 폼페이우스이지만 신은 폼페이우스 편이 아니었다!


로마정치도 역시 정치의 메스꺼움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영웅들에 대한 굉장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영웅들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들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보고 있는 사람도 마음이 떨릴 정도다. 특히, 여자운도 없었고 부하운을 타고나지 못한 로쿨루스, 하지만 그가 지독스럽게 모은 전쟁터에서의 부로 식사하는 미식가의 습관에 대한 대목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참,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과거나 지금이나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역사가 재미있다! 역사는 사람이야기니깐...

하지만 ‘승자의 혼미’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로마인의 로마인다움을 느끼기 보다는 언제나 정치판은 더럽고 치사하구나 하는 생각이다. 권력의 기득권을 잡기 위해 시대의 영웅과 지도자를 갈아치우고 암살하고 죽이는 이런 모습은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이다.


승자의 혼미, 로마의 정치의 과도기적인 질병보고서

로마인 이야기 ‘승자의 혼미’는 원로원, 집정관, 호민관 이라는 이 3가지의 정치적인 구도로 나아가면서 벌어지는 과도기에서 오는 혼미함 이 화두이다. 특히 로마의 덩치가 커지면서 원로원이라는 정치체제가 가져다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Written By Karl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