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 이영표의 에세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제가 뛴 프로 경기와 국가대표 경기를더하면 500경기가 넘습니다. 수많은 경기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나를 발전시킨 경기들은 최고의 결과를얻은 경기도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져서 아쉬움이 남는 경기도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든 경기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에 앉아지켜봤던 경기들이었습니다. 축구 선수는 벤치에 앉아 있을 때 경기장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웁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더 발전하고 더 배우는 것이라면, 더 성장하는 것이라면… 벤치에 앉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선수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무거운마음으로 외로이 앉아 있습니까? 그곳이야말로 더 발전할 수 있는더 겸손해지며 더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벤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선수, 아무것도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선수는 좋은 선수는 물론 좋은 사람도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벤치… 그곳은 분노와 불만, 상심의 장소가 아니라 희망과 겸손, 그리고 노력의 장소여야만 합니다.
경기장에서 가장 소외된 벤치. 여러분은 지금 어떤 벤치에 앉아있습니까?(41p)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칭찬받고 싶은마음에서 자유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 할 때 비로소 비판과 시기, 질투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싫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싫어하는 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75p).
오클랜드 최고의 관광지이자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콘월파크 분화구 정상에는 200여 년 전 백인과 뉴질랜드 원주민이 협정을 맺으며 세운 와이탕이 조약 기념탑이 있습니다.
분화구 정상에는 수년 전까지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었는데, 백인들이 평화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원주민의 인권을 지켜주지 않은 부당함에 항의해 온 원주민 족장이 근 천 년 나이의 나무를 전기톱으로 잘라 버린 것입니다. 그는 20년이 넘는 중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분화구 정상에 서 있던 웅장한 나무가 사라져 버린 그날, 수많은 오클랜드 사람들이 검은 깃발을 내걸고 울었다고 합니다. 오클랜드의 상징적인 나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는 백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사랑하는 나무를 위해, 우는 백인들과 나라를 빼앗겨 버린 원주민들의 눈물, 그 앞에 서 있는 제 기분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눈물은 언제나 우리의 진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심이 언제나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 또한 사랑하는 나무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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