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하려고
짧게 출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짧았다지만 그것도 십여개월
아무 서류없이 당장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는
짐을 싸서 내려와 길을 건넜다
짐을 쌌지만 커다란 쇼핑백 하나
하필이면 길 한가운데서 쇼핑백이 툭 터져
잡다한 모든 것들이 좌르르 한 가운데로 쏟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주섬주섬 길가로 옮겨놓고는
다니던 회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겨우 그만두기나 하는 내가 벌레 같았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지금까지도 벌레일 것이나
기어이 도착한 곳이 아직 없으며
고작 비를 피하려 거기로부터 멀지 않은데서
기웃거리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뿐
회사를 그만두었다
짐을 챙겨 나왔다
짐을 담은 쇼핑백이 길 한가운데서 터져버렸다 어쩔...그때 하필이면 내 시선이 내가 다니던 회사 건물을 올려다 본다 어쩔....왜 하필이면 그때 내 두 눈동자가 그쪽으로 핸들을 꺾은건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내려다보며” 반대로, 나는 “올려다 보았다”고 시인은 말한다 내 이야기가 아니고 시의 이야기이다
그때 느낀 시인의 느낌은 “겨우 그만두기나 하는 내가 벌레 같”았다고 한다 아 이 느낌을 이병률 시인은 이렇게 표현을 했구나!
요즘 제2의 전성기가 왔다는 개그맨 박성광, 그 친구보다 더 인기가 있는 애는 바로 매니저다 그 매니저는 여자이다 그리고 사회초년생이고 이름은 임송이다 근데 얘가 가진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이 흔든다 한번 본 프로그램인데, 그 사회초년생의 초짜의 마음이 너무 순수하게 느껴지더라 감동도 있고 마음씨가 참 곱더라
우리가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느끼던 그 설레임과 두려움, 불안이 임송에게 느껴지는 거다 상사로 여겨지는 개그맨 박성광을 옆에서 보좌하려는 초보 매니저의 진심...어쩔줄 몰라하는 마음! 그게 너무 시청자의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취업을 하게되면 아랫직원은 상사를 ‘올려다봐야’하고, 윗 상사는 ‘내려다 볼 수 밖에’ 없다 그런 구조 가운데 이런 끈적끈적한 정이 느껴지는 관계가 새삼 시청율에 영향을 주는게 아닐까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연예인이 자살을 했다 근데 그의 매니저는 자신의 주인(?)과도 같은 고인의 모든 유품들을 챙겨 도망을 쳤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액션을 취하진 않더라도 ‘처음 마음’이 참 필요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드라마 <미생>은 조직사회의 계약직의 서러움과 아픔을 담아내 신선한 인기몰이를 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윤태호가 <미생>인세만 20억이 된다고 하던데...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직장생활인들의 생리를 잘 투영해 냈기 때문에 대박이 났다고 볼 수 있다
다시 시의 자리로 오면, 10개월동안 일한 직장을 아무 서류없이, 사직서도 내지 않았다는, 구두로 그만두겠다고 했단 말인데 순간적으로 쌓인 게 터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데 쇼핑백이 터지다니...아! 자존심 몰락의 순간이다 ‘벌레’처럼 내가 모욕하고 사람들이 모욕한 느낌...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눈빛, 표정,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그걸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침묵만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회사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시인은 ‘벌레’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뛰쳐나왔으면 쇼핑백도 터지지 말았어야 하고 보란듯이 잘 나가야 하는데 우리의 인생이 어찌 그런가!
‘고작 비를 피하려 거기로부터 멀지 않은데서 기웃거리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뿐’...그게 우리의 모습이라 이 시가 더 다가온다
젊은날이라, 경험이 부족하니 멘탈도 약하다 게다가 회사 때려치웠는데 쇼핑백 터지면......그런데 그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니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이병률 시인 참 좋다...오늘 도서관에서 보낸 오전은 이 시를 갖고 놀고 있다...
우리-,
쇼핑백 터져도 웃을 수 있도록!
*이병률 시집엔 마침표가 없다 갑자기 모든 시집의 시가 그런가 의문이 들었다 이병률 시만 그런가? 이 시집만 그런가? 내 글도 종종 마침표 없을 때가 있는데 내 글도....어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