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킬만 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때로는 가장 작은 것들이 네 마음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해.
-위니 더 푸
이 책의 제목은 『습관이 영성이다』. 제목을 보고서 책이 나왔을때 호기심에 구입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욕망의 존재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믿느냐?’라고 하시지 않고,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고 집착하고 갈구하고 갈망하는 그 무엇이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다. 우리는 욕망이란 텔로스(목표, 지향점 telos)를 가진다.
저자는 17세기의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처럼, 인간은 ‘내가 생각하는 바가 내 자신이다’라는 착각을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내 생각=내 자신’이란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공식을 깬다.
‘내가 사랑하는 것=내 자신’
이라고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렌즈를 집어던지고, 우리는 사랑의 렌즈를 걸쳐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밝힌 “하나님 한분 외에는 나의 마음의 구멍(맨홀)을 메울 존재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안식의 전부입니다”(나의 고의적인 의역임)라는 말을 너무나 익숙하게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텔로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이다. 이레나이우스는 “복음은 우리가 인간의 되는 법을 배우는 길이다.”(23p)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욕망의 텔로스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텔로스로 맞춰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 마음의 나침반이 죄로 인해 삐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가 다 텔로스를 가지고 있다. 다 자기만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을 제어하는 데 데카르트의 생각의 렌즈로는 어림없다. 2장에서 이 주제를 다룬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생각, 지성만으로 바른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내 몸무게는 내 사랑이다. 내가 어디로 움직여 가든지,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나의 사랑이다.’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욕망적인 냄새가 자욱하다. 저자는 바울이 골로새서 3장에서 말한 ‘긍휼과 자비와 온유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의 옷을 입으려면, 그리고 그 위에 우리가 다루는 ‘사랑’의 옷을 입으려면 생각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각, 지성으로 우리의 인생을 혁신하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칼뱅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thinking으로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낼 수 없다. 이것이 기독교의 인간론이다. 인간은 ‘우상제조공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 문제의 대안을 ‘우상숭배는 신학보다는 예전의 문제다’(45p)라고 말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욕망의 존재이고, 그 욕망은 죄가 가득한 실체이다. 그 욕망의 텔로스를 가진 인간은 과연 사랑하는 것이 참될 수 있는가? 생각의 패러다임으로 영성의 변화가 가능한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바로 ‘습관’이다. 이 부분이 굉장히 신선했다.
나는 30대 중반에 테니스 레슨을 1년 동안 받았다. 테니스 레슨을 시작하면, 코치와 수강생인 내가 1:1로 지도받는다. 자세, 즉 폼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레슨을 받았다. 반복, 반복...지겹다.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테니스도 빠지면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건 게임을 했을 때이고. 레슨은 끊임없는 반복이다. 지겹고 힘들고 억지로 한다....구력이 몇 년 되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자세와 폼을 항상 재조정하기 위해 간간이 레슨을 받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오래 스포츠를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자신의 몸에 배여 체내화 되기까지는 반복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원래 편안하고 안락한 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반복하고 반복한다. 재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바가 우리 자신이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 바른 사랑을 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반복의 힘이 필요하다. 그 반복은 바로 습관이다. 우리는 교회 밖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일날 몇 시간 안 되는 스케줄을 교회당에서 보낸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또 예배를 드리는가? 정말 지겹다. 아까 드린 예배인데, 또 예배드릴 필요가 있는가?’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드리는 예배도 지겨운(?) 반복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심각하게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세상의 때와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노출되어 일주일동안 살아온 그 모든 것을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반복’, 즉 ‘습관’이다. 저자는 <예전>(예배)을 강조한다.
책 서두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 미국인에게는 의식儀式이 필요해. 이게 바로 내가 쓴 글의 핵심 주장이야.’
-존 업다이크, “다져진 땅, 교회 다니기, 죽어가는 고양이, 중고차 보상 판매”
우리는 어떤 의식적인 예전(예배)을 formal한 형식적 절차로 치부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저자는 <예전>의 가치는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적용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청소년들이나 다가오는 미래의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신앙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무언가 흥미로운 기독교적 상상력을 발휘해 커리큘럼을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의 필드에서 헤매는 욕망의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가 탁월하게 지적하는 부분은, 오늘날 대형마트나 메가마트를 하나의 신전으로 비유한 대목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의 대형마트에서 우리는 ‘소비신’을 숭배한다. 수많은 진열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자유롭게 선택한다. 소비한다. 그리고서 집에 돌아오면, 사지 말아야 할 것은 샀을 때의 헛헛함, 아무리 만족한 소비를 했다고 해도 소비 이후의 헛헛함을 가슴에 안는다. 우리는 은연중에 ‘소비의 신’을 숭배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처럼. 반대로 그런 자본주의의 마트는 교회보다도 더 절기나 행사에, 이벤트에 강하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명절기간이라도 더 준비가 철저하다. 더 많은 소비, 더 과감한 소비를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준비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자본주의의 동선 가운데 흐르는 영적인 흐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유를 구가하던 무리들이 교회에 들어왔을 때, 모든 것이 자신의 자유와 입장대로 되지 않을 때 불만과 불평이 누적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본주의의 식민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바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는 대목에는 사랑하는 주체자인 우리란 존재가 얼마나 오류가 가득한 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란 신학자는 거듭나고 회심한 그리스도인을 ‘죄인적 의인’이라고 했다. 여기서 ‘의인’이란 말은 우리의 신분이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본질적인 구원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말이지만, 앞에 있는 ‘죄인적’이란 말은 여전히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그릇이란 의미이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간에 모두가 죄인적이고, 죄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우리가 과연 우리가 섬기고 공경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바로 <예전의 반복>이다.
기독교인은 매주마다 예배의 자리로 나아간다. 물론, 우리의 생각의 포커싱이 예배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제임스 스미스, 저자가 이야기한 ‘습관이 영성이다’란 이 부분을 숙고해보면 좋겠다 싶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반복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 영적 습관을 얼마나 잘 길러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음 한다.
습관은 영성이다!
목차를 참고해시길!
1장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 예배하는 인간
2장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세속’ 예전을 읽는 법
3장 성령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을 만나 주신다 ― 포스트모던 시대를 위한 역사적 예배
4장 당신은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는가? ― 형성적 기독교 예배의 서사 구조
5장 마음을 지키라 ― 가정의 예전
6장 자녀를 잘 가르치라 ― 신앙 교육의 예전
7장 당신은 원하는 바를 만든다 ― 소명의 예전
여담: 이 책을 읽을 때 좀 속도감을 내고자 줄을 긋지 않고 읽다가 낭패를 봤다. 줄을 긋지 않으니 내용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도전과 감동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다시는 책을 이렇게 접지 않으리!!! 접힌 부분을 펴는 것도 힘들다 ㅠㅠ
제임스. 스미스의 글이 너무 좋아 다른 책들도 주문해놓고 숙성시키고 있다...
책이 너무 좋아서, 지인에게 추천한 톡내용을 캡쳐해 올려본다.
오늘도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