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도둑 - 고학년문고 3023 베틀북 리딩클럽 24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홍연미 옮김 / 베틀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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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100쪽도 안되는 짧고도 무뚝뚝한 이야기에 정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2.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그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때, 그 성실과 사랑이 체념과 증오로 돌변하는 건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사람은 이전의 그와는 다른 인물이 된다.

거위 가윈은 왕국과 왕과 친구들을 정말 사랑했건만 왕국의 보물을 훔친 혐의로 왕에게 "너는 이 왕국의 수치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진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말이 칼이 된다는 것을. 그 순간  순진무구한 맘으로 왕을 숭배하던 거위의 단순하고 아름답던 세계는 파괴된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저는 생명이 있는 여러분 하나하나를 모두 증오합니다. 진심입니다. 여러분은 제게 원래 없었던 악을 저한테서 보았다고 하고 있는 겁니다. 다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이 세상의 악인들이 원래부터 악인일까. 거듭되는 오해와 불신, 나를 믿어주고 위로해 주는 자 하나 없음, 이런 것들이 악인을 만드는 거다. 20명이나 살해한 연쇄살인범도 초등학교 땐 착했다고 하지 않는가.

거위 가윈은 범죄자의 길이 아닌 도피자의 길을 걷게 되니 그나마 다행인가.

 

3.

양심의 가책. 진짜 도둑이 겪게 되는 괴로움. 처음엔 훔친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잠깐 빌린다는 마음으로, 나중엔 허영에 취해, 훌륭한 보물과 함께 있으면 마치 자기 자신이 훌륭해 질 것처럼. 양심의 소리와 두려움이 스치면 재빨리 도리질쳐서 털어버리며.

진짜 도둑인 생쥐 데릭은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몸소 보여준다. 자기 자신이 아닌 자기가 걸친 것들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얼마나 많은가!), 모래밭에 머리만 숨기는 타조처럼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보지 않으려고 눈 감고 귀막는 사람들. 그러나 데릭이 우리들보다 더 나았던 건 결국 데릭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귀울였단 거다. 그는 해피엔딩을 만들었다.

 

4.

그를 저버렸던 사람들, 그들은 그럼 행복했나? 정의를 실현했으니? 

그들도 불행했다. 자기들이 한 짓이 정의라고 믿었을 때도 불행했고, 그게 오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더 불행했다. 당연할 것이, 이 세상 어느 보석이 신뢰와 우정으로 쌓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보다 소중할 것인가?

 

5.

이 모든 어리석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 동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현실의 우리보다 현명하다. 거위 가윈은 이 세상에 배신당했으나 복수하지 않았고, 그들을 용서했고, 데릭은 자기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제자리에 돌려놓았으며, 왕과 가윈의 친구들은 진심으로 미안해 했다.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현실에서는 서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변명하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6.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들 모두 고통을 받고 있어. 폐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괴로워하고 계시네."

"괴로워하게 내버려 두게. 다들 고통받게 내버려 둬. 난 다시는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가윈은 그들이 몹시 보고 싶었고,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일은 없었다.

데릭은 잘 알고 있었다. 데릭은 가윈의 다리를 살며시 건드렸다. 그랬다 살아 있는 생물의 손길, 그리도 오래도록 목말라 있던 따뜻함을 느끼자 가윈의 언 마음도 누그러졌다.

"그래, 인정하지. 나도 그들이 보고 싶네. 많이 보고 싶어. 아마도 용서해야겠지."

 

윌리엄 스타이그, 당신은 인간에 대해 정말 너무 잘 알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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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적 생각이 많이 났다.

내 어릴적도 제인의 엄마 말씀처럼 <가난에 찌들은 건 아니고, 그냥 가난>했었고

나도 제인처럼 사소한 잘못을 해놓고 경찰이 잡아가지 않을까 마음 졸였었고

남들은 즐거워하고 잘만 하는 무용을 할 때마다 손발이 뻣뻣해졌고(왼손과 왼발이 같이 나갔고)

형제들 몰래 나만 맛있는 걸 먹으면서 아무 맛도 못 느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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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꼬마돼지 베이브>의 원작자라구?  흠.... 어쩐지.

꼬마돼지 베이브와 샬롯의 거미줄을 섞어놓은 것 같더라구.

재미있고, 남과 다르다고 기죽지 말자는 이야기지.(이런 이야기가 많더라)

이름도 별난 '별난 개발이'

형제들 중에 제일 처지는 놈으로 태어나 결국은 하늘을 나는 위업을 달성했다네.

우리모두 자신감을 가집시다.

<컴플렉스는 영혼을 잠식한다>는 유명한 말도 있잖우.(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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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8-2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부터 차근차근 내려왔는데...흑흑흑
전부 다 못 본 책들 뿐인지라 노코멘트이옵니다.
 
엄지 소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1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 시공주니어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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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대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낡은 모자처럼 벗어 놓는다.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전화 번호처럼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 한때는 어린이였지만 이제는 자랐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로 남을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인간이다>

이렇게 멋진 멘트를 날린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렇다. 바로 그가 이 책의 지은이 에리히 캐스트너이다. 이런 말을 남긴 사람답게 그는 진정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 글을 쓸 줄 알았으며, 또한 어린이를 무조건 보호하거나 가르치려는 어른이 아니라 믿고 지켜보아 주는 어른의 입장으로 글을 썼다.

이 글에 나오는 엄지소년 맥스헨은 5cm의 작은 소년이다. 50cm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마술사 요쿠스 선생과 함께 살며 성냥갑 속에서 잠을 잔다. 이 너무도 쬐끄매서 모르고 밟아버릴 것만 같은 소년은 그러나 아주 당차고 씩씩하다. 구체적인 장래계획도 세운다. 요쿠스 아저씨와 티격태격하며 정한 이 소년의 장래계획은 곡예사,조련사를 거켜 마술사의 조수에 이르게 되는데(사실 아저씨는 맥스헨이 안전한 '통역사'의 길을 가길 원했지만) 그 일이야 말로 5cm의 소년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대도와 엄지소년'이란 마술은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물론 나중에 다 돌려준다)

물론 이 소년도 자기가 남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는 없어서, 다른 아이와 똑같은 몸집의 사내아이가 되길 꿈꾸어도 보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개성만점인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씩씩하고 유쾌한 엄지소년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엄지소년이기 때문에 닥친 고난을 엄지소년만이 풀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도 수많은 엄지소년이 있다. 내가 남과 다르다고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엄지소년 맥스헨 처럼, 자기가 뭔가 남과 다른 것을 <약점>이 아닌 <개성>으로 여기고 유쾌하고 낙천적이며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심상하며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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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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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며, 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방금 소개말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본지의 유일한 경쟁지는 썬데이 서울.
기타 어떠한 매체와의 비교도 단호히 거부한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이 유명한 멘트는, 그렇다. 딴지일보의 대문이다.

딴지일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얼마나 황홀한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느꼈던가. 각종 정치사회적 비리와 억압적인 상황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오로지 비분강개할 줄 밖에 몰랐었다. 그건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80년대는 처절한 시기였기에.

그런데 딴지일보는 <우리가 미워하는 것들>에게 웃으면서 똥침을 날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 시원해. 아, 통쾌해. 딴지일보의 글들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던 것이 한 5,6년 전 일인것 같다.(지금의 딴지일보는 뭐랄까, 곁다리가 너무 많이 붙어서.....)

내가 딴지일보에서 뭐 먹은 것도 아닌데 왜 난데 없이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딴지일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웃었던 유머, 그 때 무릎을 쳤던 풍자와 비유, 그런 것들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헐크 등으로 얼굴을 바꿔가며 이 세계를 위험에서 구하고(지맘대로 지배하고), 한국은 겉은 동양인, 속은 백인의 바나나맨이 되어 영웅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며(혹은 마운트 당하며) 옆에서 '포즈'만 취한다.

맞는 말이야. 아주 적절한 비유야. 몇백년 후, 혹시라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오면, 교과서에 실릴지도 몰라.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허전하지 않아? 딴지일보의 풍자패러디랑 비슷하기만 하다면, 소설로서는 2% 부족한게 아니겠어? 플러스 알파가, 뭔가가 더 있어야 하지 않겠냐구. 사실 솔직히 말한다면 풍자의 내용도 작가가 처음 생각해낸 아주 새것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플러스 알파가 아주 없지는 않다. 간혹 신선한 묘사가 눈에 띄고(나는 소설의 가장 첫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 다가 아닐 거라는 느낌을 언뜻언뜻 받게도 하는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호평받는 걸로 봐서 그 느낌이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빨리 <삼미.....>를 읽어 봐야지. 그거 안 읽은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던데. 그리고 지금까지 써 놓은 걸 보니 별로니까 읽지말란 얘기로 들리는데 그건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는데(우리 자신이 바나나맨인데,사실 이걸 재미있게만 읽을 순 없다. 이건 자조적인 이야기다), 나머지 2%도 채워달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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