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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 - 21세기, 희망의 미래 만들기, 개정판 ㅣ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2월
평점 :
왜 교과서 앞에 '살아있는' 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지 알겠다. 진짜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컬러 화보, 다양한 자료, 도표, 지도, 이런 것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내가 세계사를 배우던 20년 전의 교과서에 비하면 당연히 저런 비주얼들이 빛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금 내 딸이 보고 있는 중1 사회 교과서를 보면
요즘 교과서는 옛날과 달리 올컬러에 도표와 그림도 무지 많다.
(물론 제대로 된 그림, 사진을 필요한 곳에 딱 맞게 집어넣었느냐는 별문제다.
현재의 교과서와 비교해도 훌륭하다는 칭찬이 바람돌이님의 리뷰에 있으니 참고하시길.)
여기서 '살아있다' 함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의미'를 이 책이 놓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읽고 나서, 각각의 사건과 시대를 따로 따로 기억하며
오지선다 문제의 해답으로서만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는 무엇을 위해 싸워왔고
어디를 보고 가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자유, 권리, 평등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피땀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인지를,
그리하여 우리가 여기에 일점 땀방울을 보태지 않는다면 너무도 미안한 노릇이라는 것을
이 책은 정확한 사실 기술만으로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문명,
무슨 선언, 무슨 조약, 몇년도에 무슨 전쟁.......
이런 거 달달 외워 수능에 만점 맞는 것도 좋다.
그러나 '세계사'라는 이름의 교과서로 인류의 역사를 다 훑고도
이 세상에 굶주리는 어린이가 아직도 많다는 것,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 배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계가 정말 하나의 마을이고 그 마을 사람인 내가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있을 때 옆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 마을 사람 모두가 마시는 우물물에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릴 수 있을까?.........다양하고 과거와 미래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지구라는 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한다는 점에서는 별로 다른 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갈 우리들은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을까?
위와 같은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교과서는 자연스럽게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로 기술하는 역사 서술을 벗어나, 인류의 역사는 부당한 힘에 대항한 저항의 역사였으며 이 세상의 주인은 몇몇 강대국이 아니라 그들의 수탈에 온몸으로 저항해 온 약자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힘겨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20년 전에 배웠던 교과서를 보면 근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정책에 대해 기술한 부분은 정말 모호하다. 우리가 피해자이니 일본만 죽일놈이고, 나머지 유럽국가들과 미국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적당히 얼버무려 놓았다. 그런 교과서를 보면 식민지 국가들은 그냥 어찌저찌 하다가 식민지가 되어 그냥저냥 있다가 맘씨좋고 양심적인 미, 영, 프 등등의 나라가 그냥 독립을 시켜준 걸로 보인다. 그런 교과서로 배운 우리는 아직도 내전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들을 보고 '저 나라는 왜 저래? 민족성이 안 좋은가.....'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된다.(내가 철모르던 어린 시절 그랬으며, 나 말고도 그런 발언하는 사람 많이 보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괜히 차별하겠는가 )
그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 수탈을 당했으며, 얼마나 끈질기게 저항했으며, 마침내 승리하여 강대국들이 할 수 없이 물러났으며, 물러나 놓고도 오만가지 공작으로 내정에 간섭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우려고 들었는지, 그래서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얼마나 왜곡되고 뒤틀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전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식민지 조선이 있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가 강자의 논리로 무장된 세계사를 배우고 있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책에서 내가 높이 사고 싶은 것은 1. 위와 같이 서양사, 유럽사 중심을 벗어나 우리의 시각에서 세계사를 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과 2. 근현대사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점이다.
20년 전에 내가 배운 교과서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면(지금의 교과서를 본 적이 없으니 자꾸 옛날과 비교를 하게 된다. 요즘 교과서와의 비교는 바람돌이님 리뷰에 있다. 그런데 바람돌이님 리뷰 읽어보면 옛날과 그다지 다른 점도 없는 듯 ㅡ..ㅡ;;) 세계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네 챕터로 나누었고(근현대사를 붙여서 세개로 했던가? 아무튼) 고대사에서 4대문명 발상지 배운 거 제외하면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 중세 유럽, 르네상스, 산업혁명.....다 유럽사다. 중간에 중국이 잠깐 등장한다. 이 세상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거기다 실제 배울 때는 한술 더 뜬다. 고대, 중세 한참 배우다 보면 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고, 그럼 허겁지겁 근대를 나가고 현대사는 건들지도 않는다.(시험에 안 나온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내가 세계사를 배울 무렵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아저씨가 땡전뉴스로 9시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시기였는데 도대체 이놈의 현대사를(사실은 근대사부터) 건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는 현대사를 진실 그대로 기술하고 가르치기 어려운 나라이다. 이라크 파병국이지 않은가. '살아있는' 이 교과서에서조차 미국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다.(안 조심스럽다, 무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미국을 원래 싫어해서 말입니다. 좀더 쎄게 나가주었어도 난 상관없는데, 그럼 빨갱이라고 하려나ㅡ..ㅡ;;)
어쨌든
세계사에서 약자의 저항을 확인할 수 있는 교과서
여운형과 김산과 체게바라를 만날 수 있는 교과서
개발, 성장, 경쟁을 말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삶'을 말하는 교과서가 나와서 다행이다.
이게 당장 진짜 교과서가 되진 않겠지만
전국의 교사들이 이 책을 읽고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건 꼭 역사선생님에게만 필요한 고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