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월드 1 - 마법의 색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책 뒷표지에 보면 큰 글씨로 이렇게 써 있다. "판타지 마니아라면 안 웃을 수 없다" 이 말은 즉, 판타지 마니아가 아니라면 안 웃을 수도 있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난 좀 안도했다. 내가 파안대소할 수 없었던 것은(가끔 얼굴을 실룩이긴 했지만) 내가 판타지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이야. 내 죄는 아니라고.

또 책날개엔 이렇게 써 있다. "정말로 재미있다. 위트가 넘치고 아주 해학적이다. 프래쳇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패러디한다" 이 말은 날 슬프게 만들었다. 뭘 패러디했는지 원본을 알아야 웃든가 말든가 하지, 나처럼 밑천이 딸리는 사람은 어느 대목에서 뭘 패러디했다는 자세한 설명이나 있으면 모를까 웃기 힘들다는 말 아닌가.

그러나 나같은 사람에게도 이 책은 상당히, 꽤 재미있다. 비록 "분명히 이거보다 더 재미있는 내용인데 내가 몰라서 못 웃는거야" 라는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 간간히 나를 괴롭혔지만 말이다.

일단 캐릭터가 기상천외하다. 마법이라곤 쓸 줄 모르는 마법사가 있다. 최강 마법 딱 하나를 알고 있긴 하나 그 주문은 자기가 원한다고 내뱉을 수 있는 주문이 전혀 아니며, 그 주문을 외웠다간 뭔 일이 벌어질 지 그 자신도 모른다. 마법사가 마법도 모르고, 겁은 또 겁나게 많고, 알고 있는 최상의 작전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나 주인공인 고로 절대 죽지 않고 요리조리 잘도 피해 나간다.

또 너무나 순진무구한 관광객이 있다. 순진무구한 탓에 두려움이라곤 없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피투성이 혈투를 그는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즐긴다. 까딱하다간 서로의 목을 겨누고 있는 용사들 사이를 파고 들어가 "싸인 좀 해주세요" 할 판이다. 이 사람의 단순명료한 상황판단을 우리는 좀 배워야 한다.

높은 곳이 무섭지 않아?

두송이꽃은 구름 그림자로 얼룩덜룩한 자그마한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사실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아뇨. 왜 무서워해야 하죠? 10킬로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든 10미터에서 떨어지든 죽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린스윈드는 이 말을 공정하게 생각해보려 했지만, 무슨 논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두송이꽃은 관광객, 린스윈드는 그를 안내하는 마법사이다. 그러나 사실은 시종일관 두송이꽃이 린스윈드를 일촉즉발의 모험으로  안내한다. 마법사는 맘껏 두려워하고, 관광객은 그야말로 모든 상황을 '관광'한다.

온갖 용사와 마법사, 마법검 등등이 등장하는 이 모험담에서 최강자는 관광객이 가져온 '짐짝'이다. 최강 짐짝.......우스우면서도 공포스러운.......하여간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은 이야기가 벌어지는 새로운 세상, 디스크 월드에 대한 묘사이다. 이 세상은 커다란 원판(디스크)이고, 이 원판은 커다란 네 마리 코끼리가 받치고 있으며 그 코끼리들은 거대한 거북이의 등짝 위에 올라타고 있다. 이 세계의 우주관은 둘로 대립되고 있는데, 이 거대한 거북이는 한 걸음 한 걸음 우주공간을 쉼 없이 나아갈 뿐이라는 '정상우주론'과 세상을 짊어지고 있는 여러마리의 거북이들이 한 곳을 향해 모여들어 짝짓기를 위한 빅뱅이 일어난다는 '빅뱅설'이 그것이다. (우하하하, 정상우주론과 빅뱅설, 기가 찰 노릇이로고^^)

다소 산만한 슬랩스틱 코미디식의 이야기 전개가 정신없을 수도 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외국인이 본다면 100% 공감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우리가 100% 즐길 수는 없다. 그래도 새로운 세상과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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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3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30권이나 나오고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요, 저도 1,2권 사 놓긴 했는데, 1권 앞에 좀 읽다가 말았어요. 열심히 잡고 읽으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이 작가 영국인들이 굉장히 아끼는 작가라 BBC에서 무슨 리스트 만들면,헤밍웨이, 셰익스피어 이런 작가들과 함께 3-4작품씩 넣는 저력을 보이더라구요.

깍두기 2005-05-3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저는 이 책과 또 그 <히치하이커>같은 책을 보면 말이죠, 아주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답니다. 분명 미치게 웃긴 얘기일 텐데, 우리가 그들 문화를 이해 못하고 그 시절, 그 장소에 있지 않아서 모르는 유머여서 조금밖에 웃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러나 뭐, 우리에게는 <프란체스카>가 있잖아요^^;;

하이드 2005-05-3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회 연장한대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