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귀 - 레제르 만화 컬렉션
장 마르크 레제르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덮고 나서 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빨간 귀>란 이상한 아이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것이다. 난 얘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왜 그런걸까?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거지, 왜 이렇게 마음을 못 정하는 걸까?

자, 이제 난 알았다. 왜 그랬는지. 나는 빨간귀였다. 그래서 내가 빨간귀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애의 부모이고 선생이었다. 그래서 난 그애가 싫었던 거다.

빨간 귀는 어린 소년이다. 그러나 귀엽고 순진한 소년은 절대 아니다. 부모님의 벗은 몸을 엿보고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어른들을 당황시키고, 수업시간엔 선생님의 설명보다는 배꼽티를 입은 선생님의 몸매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며 야한 그림을 보고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만일 현실에서 만난다면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소년이다. 어른들은 이 소년을 좋아할 수 없다. 그래서 빨간 귀는 끊임없이 맞는다.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지나가는 어른에게. 하도 따귀를 얻어맞아서 귀가 빨개졌다. 그래서 빨간 귀다. 그런데 이 소년은 절대 굴하지 않는다. 빌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고, 대꾸도 않는다. 다만 줄기차게 계속할 뿐. 어른들이 못하게 하는 바로 그것을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리 맞아도 굴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나는 그애의 부모이고 선생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내가 머릿속으로 아무리 반항적인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런 녀석과 부딪히면 나는 마음의 평정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기존질서고 기성세대인 것이다.

그러나 난 빨간귀이기도 하다.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 내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것에 대해 나는 머릿속으로 찢어발기고 때려부순다. 단지 머릿속으로만. 그런데 책속의 빨간귀가 내가 하고 싶은 걸 대신 해주는 것이다. 굴하지 않고 전진하기. 누가 뭐래든 하고 싶은 것 하기.

넌 빨간귀였어. 지금도 빨간귀고. 그러니까 네가 만나는 어린 빨간귀들에게 잘해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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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2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악, 추천!!!

깍두기 2004-09-1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가 아아악입니까? 깜짝 놀랐어요^^

진/우맘 2004-09-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악!! 나도 추천!!! 그리고 다음에 도서관 가면 꼭 빌릴 책 목록에 찜!!!!

2004-09-12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4-09-1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인들의 비명이 낭자하군요. 귀신 나올라~~^^
속삭이신 님/요즘 서재에 뜸하신 것 같아요. 님의 글이 올라오면 전 꼭 가보는데....바쁘신가봐요^^

바람구두 2004-09-1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아하는 빨간귀....물론, 추천을...

깍두기 2004-09-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