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명성은 몇년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남들이 좋다거나, 베스트셀러라거나,무슨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하면 어쩐지 더 안 읽게 되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 탓에 선뜻 집어들지 못하고 있다가 얼마전 이 작가의 '지구영웅 전설'을 읽은 후 '이 사람에게는 뭔가 있다'는 생각에 드디어  이 유명짜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진짜 뭔가 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ㅡ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며(순전히 아빠의 연고에 따른 선택으로, 자식들은 당연한 듯이 그 뒤를 따랐다)  TV앞에 앉아 빼놓지 않고 경기를 관람하던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참 못했고, 그 다음 해에는 어쩐 일인지 잘했으며, 그래서 해설자들이 도깨비팀이니 뭐니 했던 것 같고, 유니폼 촌스러웠고, 장명부는 경이로웠다.

노인이 되면 옛일을 떠올리기를 좋아하여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고 했던가. 슬슬 나이 먹어 가면서 어릴 적 얘기를 소재로 삼은 것들이 참 반갑게 느껴지고, 내가 희미한 색채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분명하고 화려하게 떠올려주면 왜 그리 반갑고 고마운지.........

처음 <삼미.........>를 읽기 시작하면서는 그래서 너무도 반가웠다. 내가 희미하게 기억하던 80년대의 풍경들과 그 때 나도 좋아했던 프로야구의 이모저모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것이 너무도 반가웠고 거기에 내가 미처 부여하지 못했던  의미들과 숨겨진 음모들을 까발려 주는 것이 또한 통쾌했다.  거기다가 작가의 재기발랄한 것 같기도 하고 유치찬란한 것 같기도 한 문장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너무도 유쾌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이 이야기는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가 속고 살아왔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우리 인생을 망쳐왔다는 사실에 대한 폭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얘기하면 난 언제나 좀 뜨끔하며 가슴이 아리는 걸 느끼게 되는데, 그건 아마 내가 진실에 가깝게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프로가 돼! 최선을 다해! 뛰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 이런 말에 이 책은 "왜? 누구 좋으라고?"라고 아주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대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난 이 책이 너무 맘에 든다. 내가 바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거든.

인생의 목표 : 널널한 삶
가장 싫어하는 말 : 야망
이런 사람에게 <삼미....>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책이 아니겠어? 널널한 삶,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기(치기 어려운 공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 잡지 않기) 이런걸 원하면서도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런 류의 말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박민규씨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야.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어.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아름다워. 따라 뛰지마.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이, 우리의 관건이야."

난 이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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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볼 것 까지야...ㅎㅎㅎ
박민규 매력적이죠?

깍두기 2004-08-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해요?...ㅎㅎㅎ
만나도 할 말도 없겠죠?

책읽는나무 2004-10-1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시면...
헤어스타일 죽입니다...
어떻게 관리하시나요?...라고 대신 물어봐주세요..^^

깍두기 2004-10-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옛날 리뷰에 댓글이 달리니 새롭네요. 책읽는 나무님 반갑습니다. 우리 인사는 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