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2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2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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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영 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
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p.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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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8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자림 2006-10-2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시어요. 굽이굽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들이 엮어내는 풍경은 다 다르지만 걸어가는 것 자체가 가끔 축복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살아있다는 것, 숨쉬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아름다운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 어제 안 해 본 무언가를 내가 오늘 해 볼 수 있다는 것...

hnine 2006-10-3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를 읽고 또 읽고 있노라면, 좋은 시인이 되려면, 슬픈 추억이나 기억이 많아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해봅니다. 아름다움은 슬픔과 통한다고, 누가 그랬더라...학교 다닐때 미학 시간에 배웠는데 또 가물가물...

비자림 2006-10-3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의 양보다는 시인의 감수성이 문제가 되리라고 저는 봅니다.
어머 근데 미학 시간에 배운 것도 생각이 나시나요? 대단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