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 북클럽 운영자의 기쁨과 슬픔
김민영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모임을 다룬 책이다. 방법론이나 개론이 아닌, 저자가 모임을 하면서 겪었던 일화, 특히 사람 이야기를 모았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심도 있는 이야기를 기대한 나로서는 조금 실망했지만, 모임 후에 남는 건 사람과 책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한가지 깨달은 것. 책은 사람에게 추천받는 게 최고라는 점. 요새 베스트셀러와 신간 위주로 읽는데, 구간이어도 좋은 책은 많다. 한 모임에서 툭 튀어나온 책으로 다른 책 모임을 만들듯이, 새로운 항로가 열리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책을 읽고 대화하려고 노력해본다.


술을 못 마시는 나는 책과 글, 운동밖에 모르는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이외의 세계에 난 무능하며, 무관심한 편이다. 술을 마시며 속내를 털어놓거나 사람을 사귀어본 경험이 없는 난 긴 시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다. 자주 통화하는 친구도 없다. 마치 혼잣말을 하듯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빌려 내 이야기를 하는 정도로 살고 있다. 내게 잘 맞는 방식 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모임을 할 수 있다면, 지금 책 친구들과 그때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새로운 책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수 2023-06-06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어... 저도 그래요
책 추천 받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근데 주위에서 저한테 물어는 봐도 추천은 안해줘요 ㅠ
그래서 여기 서재가 너무 좋아요~~
저도 술 못마시고 온리 책!이었다가 전원주택 이사오고 나서 정원가꾸기 추가요~~~
저도 책 읽고 이야기 나눌 친구는 너무 원하는데...그게 참 쉽지않죠

양손잡이 2023-06-06 21:58   좋아요 0 | URL
저도 주변에 책친구가 없어서 알라딘 북플과 서재가 든든한 친구랍니다 ㅎㅎ
정원가꾸기는 너무 어려워 보이던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식물을 사랑할줄 아는 마음을 기르고 싶네요 ><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재택근무의 한계부터 교실의 재발견까지 디지털이 만들지 못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지털 기술은 발전합니다. 10년, 아니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만 하던 일들이 어느새 우리에게 현실의 기술로 다가오게 되죠. 기술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줬습니다. 수천키로미터 떨어져 있는 가족끼리 메시지나 영상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하와이에서도 노트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죠. 클릭 한번이면 물건이 문앞에 배송됩니다.


2020년, 초유의 전염병 사태가 발발하면서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에 더욱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문밖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집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디지털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재택근무는 이제 옵션이 아니라 디폴트가 됐습니다. 배민, 요기요 같은 배달앱은 완전히 생활화되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싸이월드 느낌인데,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많은 서비스들이 흥행했습니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선사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멋진 책을 썼던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데이비드 색스는, 디지털 미래는 완벽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가 미래라고 답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아날로그란 비-디지털을 의미해서 의미가 꽤나 넓긴 하지만요. 책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디지털 시절에 회사, 학교, 쇼핑, 문화생활의 주제로,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도출된 결론 -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몇가지 사례를 가져와보겠습니다. 일에서의 사무실은 소통과 긍정적 관계의 구심점인 동시에, 인간의 잠재력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76쪽). 코로나19 시절, 많은 이들이 원격, 재택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지긋지긋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난, 일만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으로 그러온 재택근무. 처음에는 일의 능률이 오르는가 싶더니, 오히려 피곤하고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오프라인(사무실)이 가졌던 단점은 사라지지 않고 온라인으로 그 장소만 옮겨가게 됐습니다.


학교 교육은 어떨까요. 대학생이 줌으로 강의를 들을 때 단점이 참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실시간 소통이 되지 않고 현장감이 없다는 이유였지요. 대학생도 이럴진대, 초등학교 저학년은 어떨까요. 학교는 단순히 정보를 배우기 위한 곳이 아닙니다. 교사와 학생이 정서적 관계를 통해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아이가 원격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때로 울더라도 선생님이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달래주는 디지털 신호밖에 줄 수 없습니다.


몇 년 동안 오프라인으로 모이던 북클럽 멤버들을 줌으로 만났습니다. 책 이야기를 하는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빠진 느낌입니다. 각자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며 뒷풀이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메타버스에서 주최된 콘서트에 참석했지만 역시나… 뭔가 한참 부족합니다. 허전한 느낌입니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세대여서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요?


저자는 디지털 미래는 디지털로만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디지털에 사는 지금, 비-디지털, 즉 아날로그 현실이 중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었다고 하죠. 동료와의 잡담에서 발생하는 비언어적 표현, 거기서 피어나는 감정과 새로운 아이디어. 마크 주커버그가 말하는 메타버스 - ‘현실처럼 느껴지는’ 공간과 미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디지털처럼 0과 1로 이루어진 2진법의 세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디지털과 아날로그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없는 법이지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디지털 기술을 무작정 찬양하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아날로그 정서로 채우는 노력을 하자, 이것이 색스가 이야기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대되는 개념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이 될 수 있게 통섭적인 사고를 하는 것.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에서, 아날로그가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겠네요.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냐 싶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는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나중에 이 주제로 할 말이 더 많아지는 셈이잖아요.(찡긋)


#디지털이할수없는것들 #데이비스색스 #아날로그의반격 #신간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읽기를 좋아한다. 분야는 가리지 않는다. 소설과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지만 인문, 철학, 과학까지 두루두루 읽는 편이다. 책장에 책을 쌓아두고 읽다 보면 권수에 집착하게 될 때가 있고, 쉽고 얇은 책을 찾는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책을 읽는 게 맞나? 책 내용을 잘 소화하고 있을까? 그저 글자만 훑고는 책 내용을 숙지도 못한 채 많이 읽기에만 집착하지는 않을까?


이럴 때면 항상 독서법에 관한 책을 읽는다. 인생을 허망하게 날려먹는다는, 뭔가 자기개발적인 사고가 스물스물 나를 휩싼다. 그래, 독서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이는 엄청난 일인데 책에서 뭔가 정수를 제대로 뽑아먹어야지! 메모와 독서노트를 통해서 책을 100%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읽기만 하는 피상적인 행위라면 나를 발전시킬 수 없어!


과거의 저는 책을 그저 소비했습니다. 저에게 책이란 가끔 필요에 의해 만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일시적 만남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에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못했죠. 메모 독서를 하면서 저는 비로소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독서 노트에 꾹꾹 눌러서 쓴 문장들이 제 마음속에 새겨져 삶의 방향을 조금씩 틀었습니다. 책을 읽고 삶에서 실천하는 경우가 늘면서 독서가 제 삶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졌습니다.


260쪽의 책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메모 독서법의 정수!


- 책에 메모하면서 읽기(깨끗이 읽기 No!)

- 독서노트 쓰기

- 마인드맵 그리기

- 한 편의 글 완성하기


첫번째부터 난항이다. 책에 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라니! 애서가에게 가장 어려운 항목일 테다. 저자는 책을 깨끗하게 보면 깨끗하게 잊어버린다며 나를 설득한다. 흠, 어느정도 인정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놓는다. 나중에 독서 노트를 쓰려고 보면 이 문장을 왜 남겨두었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문장에 대한 감상과 감정은 그떄그떄 다르다. 하지만 내가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둘 때 그 생각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매번 아쉽다.


으으, 메모 독서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첫 발걸음부터 떼지 못하겠다. 책 표지를 쫙 펴는 것도 못한다. 심지어 표지에 기스가 날까 책을 파우치에 넣어 다닌다. 책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재미없으면 중고서점에 팔 수도 있으니까, 더럽힐 수 없다. 책이 상전이고, 나의 주인인 셈이다. 나는 물질의 노예일까? 사실 책은 그리 비싸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인데 좀 친하게(다르게 말하면 거칠게) 지내면 좀 어떤가... 싶기도 하고.


덕분에 2월에 산 에세이에 연필로 줄을 긋고 종이를 접어서 표시했다. 이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울었다. 엉엉.


저자가 언급한 독서노트와 마인드맵은 요새 많이 퍼진 방법이다. 당장 유튜브에 ‘독서노트’를 검색하면 수많은 결과를 찾을 수 있으니 이 부분은 참고만 하고 넘어갔다. 다 쓴 독서노트를 다시 읽고 또 줄을 친다는 것에 조금 놀라웠다. 아, 이 분은 책을 정말 전투적으로 읽으시는구나. 나는 그럴 깜냥이 못된다.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질라.


방법론적인 면만 보면 중요한 내용은 많지 않다. 차라리 저자가 쓴 독서노트를 예시로 많이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자기가 꾸리는 독서모임 영업하는 분위기도 조금 풍긴다.


열심히 공부하듯 읽으려는 마음가짐을 다지기에는 좋은 책이다. 메모 습관을 다룬 저자의 다른 저서도 읽을만하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니 이렇게까지 읽어야 할까 하는 회의도 든다. 책을 좀 재미로 읽어도 되잖아. 치열하지 않게, 적당히 각잡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읽기. 책의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든 게 다 머리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머리 속 어딘가에 암묵지로 남아서 불현듯 생각날지도 모른다. 떠오르지 않으면 그것도 나름대로의 독서라고 생각한다. 내 필요에 따라 힘을 줬다 뺐다, 잘 운영하는 것도 묘미일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심과 열심 - 나를 지키는 글쓰기
김신회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아무튼, 여름>과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쓴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다. 민음사 유튜브 채널인 민음사TV에서 이 책 출간 소식을 알릴 때부터 장바구니에 담아뒀지만 읽을 책이 쌓이고 쌓여 한켠으로 물러나 있었다.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번뜩 생각나 빌려왔다. 빌려왔는데도 또 한참을 책꽂이에 뒀다. 아내가 먼저 읽고 지금의 내게 딱인 책이라고 해서 폈다. 사흘만에 후루룩 읽었다.

 

 

2.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1부, 쓰기. 사실 이 책이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에세이인줄 알았다. 뒷표지 홍보문구에도 ‘글쓰기를 일상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카피로 홍보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만, 아니 반에 반만 맞는 이야기다. 1부만 글쓰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저자가 글을 쓰는 방법이나 루틴, 그만의 팁을 전한다. 그래도 1부만으로도 꽤나 마음에 드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첫 문장보다 끝 문장’ 장. 저자는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너무 힘을 주면 지나치게 비장한 다짐과 교훈으로 점철된 글을 쓰게 된다고 하는데, 이런 식이다.

 


1. 오늘의 경험을 통해 일상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의 깨달은 밝히기.)


2.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

(되고 싶은 나에 대해 말하기.)


3. 앞으로도 이 같은 열정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

(간직하고 싶은 것 굳이 알려 주기.)


4.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다.

(갑자기 분위기 종교 집회.)


 

비장함에 눈물이 나네. 근데 내가 쓴 일기나 독서노트를 보니 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고 있지 않은가! 다짐과 교훈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글이 이렇게 끝나면 다양성도 없고 반성하고 주장하는 글밖에 되지 않을까? 내 맘을 가볍게 털어놓을 수 있는 마무리도 좋은 것 같다. 그러고보니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비장과 다짐과 교훈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기했

 

 

3.  2부는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다. 아쉽게도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크게 공감을 못했다. 그래도 책을 읽고 글을 써보려는 내게 한가지 팁을 주었는데, 바로 일하는 공간의 분리다. 저자는 일하는 방을 하나 따로 만들었단다. 거기로 출퇴근을 하는 거다. 회사처럼 출퇴근시간도 만든다. 집이라는 걸 잊도록 업무를 제외한 집안일은 작업 전후에 한다. 심지어 일하기 전에 씻기도 한다. 공간이 분리되니 작업 능률이 올라가고 꾸준히 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일상 - 식탁이나 거실 테이블이 아닌 다른 곳에 앉아야 독서/글쓰기 모드가 켜지지 않을까. 퇴근하고 한 시간은 카페에서 작업을 해볼까. 집 근처에 조용하고 근사한 카페는 몇 있으니, 아지트 삼아 주말에 종종 들러보기로 했다. 집에서 새로운 공간을 찾아 작업실로 생각도 해볼까? 봄이 와서 날이 따뜻해지면 우리집에서 최고로 특별한 공간인 발코니에 나가볼 거다. 아내가 멋드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다. 여기서 신나게 놀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4.  3부와 4부는 에세이 모음이다. 3부는 저자 자신, 4부는 타인과의 이야기를 다룬다. 심각한 분위기의 글은 없고 대부분 일상적인 주제, 소재를 다룬다. 무게를 엄청 잡지 않으니 읽기도 편하고, 그와중에 나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무튼, 여름>의 저자로 처음 알게 됐지만 사실 책은 읽지 않았다. 책 후반부를 읽고는 <아무튼, 여름>을 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로 유쾌한 글을 쓰는 작가라면 믿고 볼만 하지.

 

 

5.  유쾌함과 유머로 가득 찬 책이다. 가벼운 소재의 에세이를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아, 글쓰기에 관심이 없다면 1, 2부는 넘기는 게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새겨놓을만한 좋은 문장이 많으나 마음 깊숙히 다가오지는 않는다. 마음이 성장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제 안에선 늘 뭔가 부족하다고 솔살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실수를 저지르는 등 당황하거나 멍청한 짓을 저지를 떄마다 그 목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반면에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는 잠잠해졌고요. 당시에도 저는 그게 저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소산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란 세상에서는 가혹한 내적 비평가의 끊임없는 불평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의도치 않게 지극히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때조차 가차 없이 비난을 던지는 목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이런 환경의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과 언젠가 그 부족함을 남들에게 ‘들킬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살며, 다른 이들이 자기 실체를 알면 경멸당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갖은 요령을 부립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히 주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요.

명상을 진지하게 시도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분별 있고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알고 보면 대부분 사고 과정이 이리저리 날뛰는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제멋대로 오락가락하는 생각들로 이뤄져 있다는 걸 말입니다. 많은 이가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이 금세 고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잠깐 동안은 그럴 수 있지만, 정말 잠깐뿐입니다. 죽은 사람의 마음만이 계속해서 고요할 수 있지요. 살아 숨 쉬는 한 우리는 두뇌를 쓰기 마련인데, 본래 어떤 안을 구상하고 그 안을 다른 안과 비교해서 새로운 안을 재구성한 뒤 그것에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두뇌의 일이니까요.

우리는 인간이 지식에 도달하는 방식이 한 가지 이상있다는 점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이성이 우리의 도구함에 들어 있는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도 자꾸만 간과하게 됩니다. 저는 이성이 별 의미 없는 특성이라거나 덜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은 우리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수없이 제공했습니다. 기술, 과학, 의료, 민주주의, 평등 등 소중한 발상과 체제가 만들어지는 원천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식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바로 영감의 순간입니다. 불교도들은 이를 지혜라고 부릅니다. 아울러 그들은 명상과 지혜는 확고하게 이어진다는 것을 합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훗날 태국을 떠나 영국의 어느 사원으로 옮겼을 때, 저는 누군가와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훌륭한 아잔 수시토 주지 스님이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이 아니라네."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당면한 상황을 의식하려면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상당히 벅찬 일입니다. 인간은 본래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충동이지요. 앞날을 알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면서 행동 또한 경직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면서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척합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과 예상에 집착하고 필사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고대하지요. 물론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삶을 미리 계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이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오래된 종교와 영적인 전통이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기억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도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그리고 내일은 그보다 더 많이.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가 그 점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그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상대를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을 때, 지금 누리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라질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