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과하는 일 - 비전, 사람, 돈을 둘러싼 어느 창업자의 기록
박소령 지음 / 북스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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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을 둘러보던 중 저자가 퍼블리의 창업자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퍼블리는 서비스 초기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유료 구독형 지식 콘텐츠를 제공했다(위키백과 출처). 멤버십이 막 런칭되었을 때 두 달 정도 구독한 적이 있어서 반가움과 동시에, 퍼블리가 망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공이 아닌 실패의 기록을 기록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김겨울의 신간 리뷰 영상을 봤지만, 영상을 보기에 앞서 책을 읽고 싶어서 책을 폈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기대만큼 흥미롭진 않았다. 당장 창업을 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타인 - 창업자뿐만 아니라 같이 일한 사람들이 겪은 뼈아픈 실패담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 재미가 없어서 책을 덮었다. 일이 주 뒤에, 미뤄뒀던 김겨울의 리뷰 영상과, 다른 팟캐스트들의 리뷰 컨텐츠를 접한 후 흥미가 생겨 다시 책을 집었다.

다시 읽어보니 다른 시각으로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창업은 취업과는 다르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아주 적은 인원이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네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처럼... 이런 관점으로 책을 읽으니, 뭐든 미리 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점이나 함께 시작한 동료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인생의 은유 같았다.

자기계발서나 경제 서적까지는 읽어도 경영 서적은 단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성공 신화도 아니고 실패를 다룬 책이라니, 내 독서 인생에서 꽤 이례적인 책 선택이었다. 많은 경영 도서에서 문장을 인용했는데, 이전에 관심이 없었던 분야지만 흥미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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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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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해 마지않는 김애란 작가, 의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었다. 2017년 <바깥은 여름> 이후 무려 8년만에 출간된 단편집이다. 중간에 중편 소설이 발표됐지만 그건 미뤄두고... 내가 좋아하는 김애란 특유의 단편의 미학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날카롭고 서늘하면서, 뭉클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홈파티‘와 ‘숲속 작은 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혹은 꺼내기엔 뭔가 애매해서 묵인해버리는 불편한 지점을 포착해낸다. 나와 다름에서 기인하는 묘한 감정들, 그 속에 숨겨진 계급적 멸시와 부끄러움이 아무렇지 않게 묘사될 때마다 내 치부를 들킨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숲속 작은 집‘을 읽을 때 더욱 그런데, 소설을 읽는 나는 인물들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할테지만, 현실에서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분명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이면에 도사린 은근한 추함과 이질감을 짚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탁월하다.

현실적 메시지가 가장 직설적인 작품은 ‘좋은 이웃‘이다. 부동산 폭등과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개인의 이상이, 자본과 돈이라는 거대한 현실적 장벽 앞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과거에 사회 구조의 모순을 비판했던 화자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욕망과 질투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타인의 욕구는 욕망이라 치부하며 스스로 무너져가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단절된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공동체 의식을 바라보며, 과연 현실 앞에서 이상을 지키려는 태도가 위선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물감‘과 ‘레몬케이크‘는 늙어감에 대한 회한과 성찰을 담고 있다. 젊을 적에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씁쓸함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계급적 우월감과 그로 인한 찜찜함이 이물감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되었다. ‘레몬케이크‘ 속 어머니의 모순적인 문장 - 인생은 즐겁지 않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기쁘다는 고백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듯했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화 환희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씁쓸한 이야기만 있지는 않다. 표제작인 ‘안녕이라 그랬어‘와 ‘빗방울처럼‘은 현실에는 비루함만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인물들은 과거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안고서도 서로에게 안녕을 빌어준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평안을 비는 마음이 담긴 그 인사는 인간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빗방울처럼‘에서 서툰 한국어로 ˝무슨 일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외국인 노동자의 너무나 정직한 위로는, 언어로 전하지 못하는 진심을 단순하면서도 절절하게 전달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우리는 투박하지만 진심을 담아 묻는 법을 잊어간다고. 씁쓸한 뒷맛을 선사하는 작품들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김애란은 돈과 계급, 세월의 흐름에서 오는 불행과 자책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인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불행히 횡행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과 따뜻한 시선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을 피워내는 데 문학의 힘이 클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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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2024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 소설상 수상작
탐낌 지음, 우디 옮김 / 엘릭시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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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다. 책을 펴기 전에는 가벼운 킬링타임용 추리소설인줄 알았건만, 홍콩의 역사와 관습 같은 내용을 다뤘다. 그래서 약간 사회파 추리소설의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홍콩의 유력 가문인 쓰우 가문의 가족 모임에서 시작된다. 만찬에서 쓰우 가문의 대부분이 식중독으로 사망하고, 단 여섯 명의 쓰우 씨만이 살아남는다. 초반부인 1부는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 화자인 쓰우즈신을 포함해 생존자 모두가 가문을 몰살시킬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 인물이 가진 복잡한 사연과 살해 동기가 한데 뒤섞여서 1부는 순수한 재미로 슥슥 페이지가 넘어간다.

하지만 2부에 들어서며 과거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1부에 비해 재미가 확 떨어진다. 작가는 홍콩의 과거와 사회적 불평등 같은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려 했지만 이러한 시도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역사적 사실과 사회 비판적 요소들이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흥미를 일으키기보다는, 단순히 서사를 끌어가기 위한 기능적인 장치로서만 존재하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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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맨
스티븐 킹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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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독서 팟캐스트 ‘책걸상‘에서 다룬 도서를 많이 읽는다. 이 책도 역시 책걸상에서 재밌다고 추천한 책, <러닝 맨>.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무려 1982년에 쓴 소설이다.

소설 속 세상은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빈부격차가 극에 달한 ‘2025년‘이다. 지도자들은 자극적인 리얼리티 쇼를 끝없이 방송함으로써 대중의 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예를 들어,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러닝머신 위에서 뛰게 한다든가. 주인공 리처즈는 독감으로 죽어가는 딸을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30일 동안 추격자들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러닝 맨 게임. 리처즈는 필사의 힘을 다해서 도망쳐야만 한다.

출근해서 짬날 때나 잠들기 전에 틈틈이 읽었음에도 스티븐 킹다운 막힘없는 서사와 전개 덕분에 단숨에 읽었다. 중간에 불필요한 회상이나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팔이 같은 것이 없이 지면을 낭비하지 않는다. 오직 도망자인 리처즈의 간절함과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분노를 동력삼아 결말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스티븐 킹의 초기작답게 장면이나 행동묘사가 무척 세세하다. 주인공이 이동하는 경로나 그가 느끼는 고통이 활자를 넘어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고통에 대한 묘사는 스티븐 킹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데, 필명으로 쓴 작품이라 그런지 원래 그의 작품들보다 더 상세하게 묘사된듯한 느낌이다.

결말은 더할 나위 없는 스티븐 킹다운 마무리. 어떻게 끝날지 얼추 예상했지만 실망보다는 짜릿함이 가득하다. 물론 그 안에는 사회를 향한 정망적인 요소도 짙게 깔려 있지만 말이다. 소재는 무거운 편이지만 잘 읽힌다. 재밌게 읽히는 책을 찾는다면 추천한다. 특히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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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에필로그를 쓴 폴 칼라니티의 아내 루시의 말처럼, 이 책은 미완성이다. 그가 책을 완성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미완성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리라.

저자는 젊은 시절 문학에서 답을 찾지 못해 과학으로 눈을 돌렸으나, 결국 과학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다.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미완성인 우리 인생과 똑 닮았기에, 우리는 폴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것일테다.

출간된지 거의 10년만에 읽게 됐다. 책장에 꽂아둔 채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를 앞두고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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