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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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해 마지않는 김애란 작가, 의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었다. 2017년 <바깥은 여름> 이후 무려 8년만에 출간된 단편집이다. 중간에 중편 소설이 발표됐지만 그건 미뤄두고... 내가 좋아하는 김애란 특유의 단편의 미학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날카롭고 서늘하면서, 뭉클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홈파티‘와 ‘숲속 작은 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혹은 꺼내기엔 뭔가 애매해서 묵인해버리는 불편한 지점을 포착해낸다. 나와 다름에서 기인하는 묘한 감정들, 그 속에 숨겨진 계급적 멸시와 부끄러움이 아무렇지 않게 묘사될 때마다 내 치부를 들킨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숲속 작은 집‘을 읽을 때 더욱 그런데, 소설을 읽는 나는 인물들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할테지만, 현실에서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분명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이면에 도사린 은근한 추함과 이질감을 짚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탁월하다.

현실적 메시지가 가장 직설적인 작품은 ‘좋은 이웃‘이다. 부동산 폭등과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개인의 이상이, 자본과 돈이라는 거대한 현실적 장벽 앞에서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과거에 사회 구조의 모순을 비판했던 화자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욕망과 질투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타인의 욕구는 욕망이라 치부하며 스스로 무너져가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단절된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공동체 의식을 바라보며, 과연 현실 앞에서 이상을 지키려는 태도가 위선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물감‘과 ‘레몬케이크‘는 늙어감에 대한 회한과 성찰을 담고 있다. 젊을 적에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씁쓸함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계급적 우월감과 그로 인한 찜찜함이 이물감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되었다. ‘레몬케이크‘ 속 어머니의 모순적인 문장 - 인생은 즐겁지 않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기쁘다는 고백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듯했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화 환희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씁쓸한 이야기만 있지는 않다. 표제작인 ‘안녕이라 그랬어‘와 ‘빗방울처럼‘은 현실에는 비루함만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인물들은 과거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안고서도 서로에게 안녕을 빌어준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평안을 비는 마음이 담긴 그 인사는 인간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빗방울처럼‘에서 서툰 한국어로 ˝무슨 일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외국인 노동자의 너무나 정직한 위로는, 언어로 전하지 못하는 진심을 단순하면서도 절절하게 전달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우리는 투박하지만 진심을 담아 묻는 법을 잊어간다고. 씁쓸한 뒷맛을 선사하는 작품들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김애란은 돈과 계급, 세월의 흐름에서 오는 불행과 자책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인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불행히 횡행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과 따뜻한 시선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을 피워내는 데 문학의 힘이 클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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