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02)


매번 말로만 듣고 온갖 영화와 연극, 그리고 각종 사랑 이야기의 모티브로만 접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드디어 희극 형태로 읽었다. 희극은 고등학생 시절 문학 교과서에서 접한 <인형의 집> 이후로 처음이다. 희극은 시 다음으로 어려운 장르이다. 상상력이 부족해 장면을 보여주고 말하는 소설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대사와 지문만으로 무대를 상상해야 하는 희극은 내게 정말 쥐약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체 줄거리는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사실 100% 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어릴적 축약본이나 만화로 이미 접한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렸다. 본래의 작품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라도 들어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다.


작품에는 유치하면서 오글거리나 대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대사들을 문자로 읽으려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려나? 아니면 2019년에 이미 닳을대로 닳은(?) 내 감정이 그런 감정을 불러오는 걸까?


로미오   그렇게 해봤자 절묘한 그녀 미를 더 곱씹게 할 뿐이야.

고운 숙녀 이마에 입 맞추는 행복한 가면은

검기에 뒤에 감춘 흰 살결을 떠올리지.

갑자기 실명한 사람은 잃어버린 보물인

소중한 시력을 잊을 수 없는 거야.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여 줘 봐.

그녀의 미모는 누가 그 빼어난 미녀보다

더 빼어난지를 알리는 주석밖에 더 되겠어?

잘 가, 넌 내게 잊는 법을 못 가르쳐.  _1막 1장 230-238행


줄리엣   수천 번 좋은 밤 보내세요!   (위에서 퇴장)

로미오   그대 빛을 잃고 나니 수천 배나 더 나빠요.  _2막 1장 154, 155행


줄리엣   꼭 그리할게요. 그때까지 이십 년 같아요. 그대를 왜 도로 불렀는지 잊었어요.

로미오   기억날 때까지 서 있게 해 줘요.

줄리엣   그대를 거기 있게 하려고 잊겠어요, 얼마나 같이 있고 싶은지 기억하며.

로미오   이 집 말고 다른 집은 모두 다 잊으면서 그대가 계속 잊게 계속 서 있을게요.  _2막 1장 170-175행


으으, 옮겨적으면서도 내 열 손가락이 펴지지가 않아! 하지만 이 대사를 연극 무대에서 읊는다면, 원본 그대로 영어의 운율을 살려 읽는다면 분명히 느낌이 다를 것이다(연극 전체의 대사가 하나의 시로 읽힐 수 있다고 한다). 또 서로에게 푹 빠진 이들에게는 이 느끼함마저 사랑스러움으로 다가오겠지? 지금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지 못해도 이런 내용을 통해서 메마른 감성을 좀 일깨워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는 아주 질 나쁜 생각을 해본다.


많이 알려졌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초중반이다. 둘의 나이야 16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해할만하다… 라지만 저 나이의 인물들이 서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독약으로 죽음을 위장할 생각까지 하다니. 게다가 캐풀렛 가문의 파티에서 눈이 맞은 후 죽기까지 겨우 5일 남짓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첫눈에 반해 데이트도 거의 안한 것 같은데(적어도 작 중 묘사는 거의 없음) 두 가문 사이의 반목이 둘의 사랑을 더 불붙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참 대단하고 과감하고 불같고 낭만적인 인물들이었구나. 부럽다아-.


군주   이 원수들 어딨느냐? 캐풀렛! 몬터규!

하늘이 당신들의 기쁨을 사랑으로 죽였으니

당신들의 미움에 어떤 천벌 내렸는지 보라.

나 또한 당신들의 불화에 눈 감은 대가로

한 쌍의 친척을 잃었다. 모두가 벌 받았다.  _5막 2장 290-294행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는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반목하는 두 가문 사이에서 유일하게 순수했던 이들의 희생으로 서로 화해하는 이야기로 읽는다면, 세속적인 세상에 저당잡힌 순수한 이들의 존재 자체를 더럽히는 게 될까? 몬터규 가문과 캐풀렛 가문, 베로나의 군주까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이들의 희생 아닌 희생으로 서로의 갈등이 봉합됐으니, 어른의 사정에 휘말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구한 운명에 애도를 표한다. 그래도 둘의 사랑이 한여름의 햇볕처럼 뜨겁고 강렬했음을 알기에, 나는 당신들은 아름다웠다고 감히 이야기를 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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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1. 때로는 그런 책이 있다. 어떤 음악 없이,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카페의 웅성거림이나 화이트 노이즈도 없이, 그냥 텅 빈 공간에 나와 책만 덩그러니 놓여져 묵묵히 읽어내려가고픈 책. 손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감각과 엉덩이에 느껴지는 내 무게,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바닥의 냉기만 고요히 느끼고 싶은 책.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읽다보면 먹먹해져 책을 덮고, 밤에는 괜히 읽기 힘들어 펴지 못하는 책. 오랜만에 그런 책이었다.



2. 


>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_67쪽


>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_77쪽


> 몇 번씩 자다가 깬다. 그사이에 냇물처럼 꿈들이 지나간다. 깨어나면 이미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 꿈들.  _135쪽


글이란 놈은 참 희한해서 같은 내용이어도 누가 썼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르다. 내가 위의 짤막한 문장들을 썼다면 인스타감성 가득한 허세글이 되었을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철학자가 살아감과 사랑을 말할 때마다, 별 내용이 아니어도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삶의 완전한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이렸다.



3. 


>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_12쪽


> 아침에 눈떠서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받기만 했다고, 받은 것들을 쌓아놓기만 했다고,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그것들이 모두 다시 주어지고 갚아져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살아야겠다고……  _94쪽


사랑에 대한 글이 그리 많은데 거의 체크해두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철학을 탐구하는 동안 노 철학자는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을는지. 나는 과연 예정된 죽음을 앞둔 와중에 타인에게 저런 감정을 쏟을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지킬 수 없는 말들이기에 감히 집어두지 못한 부분들이다.



4. 


> 정신이 깊고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 정신은 우렁찬 것이기도 하다.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_35쪽


> 나는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의 몸은 얼마나 묵묵히 많은 일을 해왔던가. 나는 이제야말로 나의 몸을 사랑하고 믿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  _127쪽


> 그의 몸은 나날이 망가졌지만 정신은 나날이 빛난다, 라는 식의 역설은 옳지 않다.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_160쪽


책에서는 유독 육체와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평생 철학자로 살아온 저자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온갖 사유의 집합체인 철학을 공부함에 있어 정신을 앞세우지 않았을까 감히 억측해보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쇠퇴해져가는 정신과 육체를 두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잘 모르겠다.



5. 책은 2017년 7월 86쪽으로 시작해 2018년 8월 9쪽의 글로 마무리된다. 초반에는 한쪽이 거뜬히 넘는 글도 몇 편 등장하나 점점 짧아져 마지막은 두 세줄로 마무리된다. 특히 2018년 8월 9편의 글은 거의 여백이나 마찬가지로 모두 합쳐도 반쪽도 안되는 분량이다. 보통 다른 책들은 글씨가 빽빽하고 여백이 적을수록 읽기 부담이 가기 마련인데, 이 책은 글자가 적을수록 그 무게가 커진다. 고통의 순간에서 끝까지 글을 써내려간 철학자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감히 알 수 없지만, 그 많은 여백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6. “무엇이 문제인가.”. “가고 오고 또 가고.”, “잘 보살피기.”, “적요한 상태.”, “내 마음은 편안하다.”. 마지막 다섯 쪽의 문장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또 울음이 터진다. 이 책이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르고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내가,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쓴 애도일기를 감히 ’좋아한다’ 따위의 감정으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그는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14쪽)라고 말했지만 글쎄, 나는 여전히 슬프다.


7. 마지막으로, 몇번이고 다시 읽은 글 꼭지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한다.


> 바이올렛 우산을 들고 아침산책을 한다. 어제는 비를 기다리며 늦어서야 침대에 들었다. 비는 나를 비켜서 밤사이 내린 모양이다. 비가 지나간 아침은 흐리고 조용하고 물기를 머금고 있다. 어제 내린 비의 추억일까. 다가오는 비의 소식일까. 젖은 대기 안에서 세우가 분말처럼 뿌린다. 문득 말년의 롤랑 바르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가 폴 발레리를 따라서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 했는지, 왜 생의 하류에서 가장 작은 단독자가 된 자기를 통해서 모두의 삶과 진실에 대해 말하는 긴 글 하나를 쓰려고 했는지…… 나 또한 나의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공부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큰 서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여기가 그 서재가 아닐까. 나는 여기서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나와 나의 다정한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내가 하류의 서재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_74,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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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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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

그렇게 인기가 많아서 18쇄까지 찍은 시집인데, 여전히 나는 이해하지 못한 글들만 잔뜩이다. 머리와 가슴에 들어오지 않아도 역시 계속 읽어나가야만 뭐든 되겠지. 생소한 표현과 연결되지 않는 개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무딘 감성으로 꾸역꾸역 읽어내고 있다.

혹자는 박준 시인의 실제 모습과 시집의 괴리가 너무 커서 싫다고 했다. 유행에 편승하고 오글거리는 감성에 올라탄 글이라는 혹평은 덤. 작가가 작품을 쓸 때의 자아는 생활의 자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에, 그가 느낀 괴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달달함보다 헤어짐 뒤에 느껴지는, 과거의 행복과 대비되는 쓸쓸함, 후회, 슬픔,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내는 모습… 글쎄, 난 이 시집에서 오글거리는 감성 따위2 느낄 새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시 몇 편 옮긴다. 옮겨쓰면서도 참 먹먹하다.




창문들은 이미 밤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잠결이 아니라도 나는 너와 사인(死因)이 같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주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요와 홑청 이불 사이에 헤어 드라이어의 더운 바람을 틀어넣으면 눅눅한 가슴을 가진 네가 그립다가 살 만했던 광장(廣場)의 한때는 역시 우리의 본적과 사이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냉장고의 온도를 강냉으로 돌리고 그 방에서 살아 나왔다

내가 번듯한 날들을 모르는 것처럼 이 버튼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맥주나 음료수를 넣어두고 왜 차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낯빛을 여관의 방들은 곧잘 하고 있다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_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廳)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_ ‘환절기’



(전략)
어쨌든 나는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영양식 식단에 딸려 나오는 우유만 있으면 그들은 혼자 밥을 먹는 일에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원재료명들과 공장 주소와 식품의 유형과 이 제품은 재정경제부 소비자 피해보상규정에 의거 교환 또는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떼어 맞춰보면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불러볼 수도 있습니다
(후략)

_ ‘이곳의 회화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에서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_ '마음 한철'



나는 오늘 너를
화구에 밀어넣고

벽제의 긴
언덕을 내려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말을 건네는 친구에게

답 대신 근처 식당가로
차를 돌린 나는 오늘 알았다

기억은 간판들처럼
나를 멀리 데려가는 것이었고

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었다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너는 오늘
내가 밀어넣었던

양평해장국 빛이라서
아니면 우리가 시켜 먹던
할머니보쌈이나 유천칡냉면 같은 색이라서

그걸 색(色)이라고 불러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에

네 짧은 이름처럼
누워 울고 싶은 오늘

달게 자고
일어난 아침
너에게 받은 생일상을 생각하다

이건 미역국이고 이건 건새우볶음
이건 참치계란부침이야

오늘 이 쌀밥은
뼈처럼 희고
김치는 중국산이라

망자의 모발을 마당에 심고
이듬해 봄을 기다린다는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을 생각하는 오늘

바람은
바람이어서
조금 애매한

바람이
바람이 될 때까지
불어서 추운

새들이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지을 것 같지는 않은

나는 오늘

_ ‘오늘의 식단 -영(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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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


유명한 사람의 책은 잘 읽지 않는 성격상 아마 독서모임 아니었으면 꺼내들지도 않았을 책일 거다. 딱히 배우의 팬도 아닌데다가 움직일 때 걷기보다는 자전거와 자동차를 선호하는 나에게 ‘걷는 사람’이라는 제목도 크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하정우가 그저 영화배우, 프로먹방러, 때로 감독으로 활동하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책을 낼 정도로 글을 쓰고 전시회에 내걸 그림도 그리는지는 몰랐다. 무엇보다도 걷기 중독자라고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영화 ‘577 프로젝트’에서 여러 동료와 함께 국토대장정을 하는 건 봤지만 강남에서 마포까지 출근길을 매일 걸어다니고, 강남 집에서 김포공항가지 8시간 동안 걷고, 친구들과 하와이에서 10만보를 꽉 채우고…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담!


> 나는 걸을 때 발바닥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전해지는 단단한 땅의 질감을 좋아한다. 내가 외부의 힘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듯 쿵쿵 딛고 걸어가는 게 좋다.  _43쪽


책을 덮고 나면 당장 밖으로 나가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1일 30분 걸읍시다, 이렇게 걸으면 하정우처럼 성공한다, 처럼 걷자고 설득하지도 종용하지도 않는데 괜히 나가서 대지와 맞닿는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하정우가 손목에 찬 핏빗 뽐뿌가 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책은 걷는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요리하고 먹는 이야기, 배우와 감독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야기, 직업에 대한 생각, 평소에 떠올리던 사유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배우 하정우가 아니라 ‘매력적인 사람’ 하정우를 알게해준 나름 고마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정우의 팬에게는 더 멋있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각인되는 그런 책이겠지.


책은 전체적으로 솔직하고 상큼하나 글이 주는 무게가 다소 가벼워서 아쉽다. 차분하고 진중한 부분이 분명 있지만 전문 작가로 살아오지 않았기에 확실히 문장의 밀도가 떨어지고 같은 문장이라도 다가오는 울림이 다르다. 예를 들면,


> 하와이에서 나는 걷고 먹고 웃는 일에 하루를 다 쓴다. 삶의 곳곳에 놓인 맛있고 즐거운 일들을 잘 느끼는 일. 그게 곧 행복이 아닐까 하고 나는 하와이에서 생각했다.  _129쪽


같은 문장 말이다. 몇 문장만 똑 떼서 보는 건 어찌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치사하게 느낄 수 있는 행위긴 하겠다만, 이런 문장은 어떤 사람이 쓰고 앞뒤 이야기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울림통의 크기가 정해진다. 건강한 작가의 상큼한 이야기이기에 내가 기대한만큼의 무게중심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운 것일 뿐이다. 나 혼자 단단한 글줄을 기대하고 괜스레 실망하면 안되겠지만, 이토록 매력적인 사람이 글까지 유려하게 쓴다면 더 사랑스러울 것 같아서 하는 볼멘 소리다.


그래도 결국 가벼워서 좋았다. 하정우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위트있게 풀어낸다. 책을 읽을 당시 감정적으로 힘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참, 나는 걷기를 싫어하니까 하정우가 말한 ‘발바닥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전해지는 단단한 땅의 질감’은 센터에서 스쿼트할 때나 느낄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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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건강을 위해서 자주 걸으려고 했는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장시간 걸어 다닐 수 없네요. 미세먼지 마시면서 걷다간 건강이 더 나빠질 거예요.. ^^;;

양손잡이 2019-03-11 12: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걷기 좋은 길을 찾기 보다 걷기 좋은 공기를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ㅠㅠ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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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

한 달 전에 읽은 책 간신히 기억 꺼내보기.

알쓸신잡에 출현한 유현준 교수의 두번째 책이다. 방송에 얼굴을 비춘 후 워낙 유명해지셨고(나만 몰랐던 분인가?) 책도 많이 팔리고 했으니 별로 읽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선택됐고,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책의 도입부부터 꽤나 도발적이다. 학교와 교도소가 디자인과 기능, 목적이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입소문을 내고 싶었나 했는데 1장을 읽다보니 또 일정 부분 설득당했다. 전국 8도를 통틀어도 동일한 디자인. 네모난 박스처럼 생긴 건물 외형.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는 창문. 건물 부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쳐둔 담장. 학생들이 보이는 여러 신체, 정신적 문제는 교도소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재밌는 해석이다.

으레 건축이라 하면 그저 도면과 숫자, 콘크리트와 철근, 유리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것만 떠올렸다. 그런데 여는 글의

>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고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나와는 동떨어진 물질로만 건출물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건축이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는 문장을 읽고 새삼 놀랐다. 완전히 나 같은 건축 방면 바보에게 건내는 말이잖아?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로지 건축공학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 다소 편협한 내용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충분히 비판할 만한 점이다. 하지만 건알못인 나에게는 이 시선조차 새로웠다.

우리나라는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땅이 물러져 과거 무거운 돌보다는 가벼운 나무를 주자재로 건물을 만들었다. 빗물에 젖은 나무기둥이 문제없이 마르게 하려면 햇볕의 각도에 맞춰 지붕의 처마를 들어올려야 한다. 해의 입사각은 위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위도마다 처마 곡선의 높이도 달라진다(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베이징은 처마의 곡선이 낮다). 도시와 건축은 주어진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니. 도시와 건축, 디자인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그대로 투영하는 시선이 반영된 하나의 인문학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도시의 성장과 발달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이 걷고 그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벌어져 여러 이벤트가 만들어지는 도시를 꿈꾸는 듯하다. 단적으로, 서울과 뉴욕은 외면적으로는 빽빽한 빌딩숲 같은 비슷한 이미지를 주지만 막상 도심 안으로 들어가 거리를 걸으면 그 경험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뉴욕은 도심 곳곳에 시민들이 걸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 반면 서울은 한참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등의 이동 감각이 끊기는 경험을 하고서야 다른 공원에 다다를 수 있다. 걷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거리는 활발해지고 도시는 자연스레 자라나는 것이다. (사족. 문득 요새 서울의 문제는 공원과 녹지 부족보 미세먼지 뿜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걱정이 드는 건, 그가 제안하는 디자인이 실제로 가능하냐이다. 1장에서 학교 - 교도소를 묶어 도발을 한 후, 학교 건물을 저층 건물 여럿으로 나누고 공원과 학교를 묶어 학생들에게 자연을 되돌려주자는 콘셉트를 보여준다. 자연친화적인 거 좋지. 하지만 넓은 부지와 아이들 학습 시간은 어떻게 보장하지? 숲과 풀밭에서 놀던 학생이 다치면 학부모의 성원은 어떻게 감당할까? 도시 집약적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시도는 커녕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제안이렷다. 문제를 해결해나갈 때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어디에 잡느냐가 가장 어렵다.

사실 여는 글의 건축의 의미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건질거리가 많지 않았다. 잠실 롯데타워(고층형 사옥)와 애플사옥(수평형 사옥)을 비교하며 수직, 수평 권력 이야기를 한다든가, 온갖 상점이 입점한 쇼핑몰의 장단점을 나열하는 등 책 안의 여러 내용은 많은 매체에서 이미 접한 것들이어서 감흥이 덜했다. 게다가 위워크 비즈니스 모델과 탈중심을 언급하면서 tv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의 멀티 MC 진행방식과 비슷하다, 힙합가수가 후드티를 즐겨 입은 이유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유를 들 때, 글쎄, 이건 너무 나가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또한 건축학과 도시공학은 땔래야 땔 수 없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두 내용을 마구 섞어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책의 통일성이 떨어진다. 건축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말하다가 갑자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소 약한 고리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 마지막 12장은 벽과 창문, 기둥 등의 공간의 여러 요소를 설명한다. 급하게 기획된 도서가 아닐까, 분량을 채우기 위한 꼼수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회사 후배는 학창시절 주변 강이나 호수에서 산책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사는 자취방 주변에는 탁 트이고 맘 놓고 걸을 곳이 하나도 없어 근처 호수공원까지 한 시간 반을 걸어갔단다. 어디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샌프란시스코라고 답했다. 재밌게도 나의 뉴욕과 그의 샌프란시스코는 저자가 걷기 좋은 도시로 언급한 도시다. 기술이 발달해 스마트폰만으로도 세계여행을 어렵지 않게 하고 차도에 자율주행차가 다니는 시대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길을 걷고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 익숙한 것 같다. 어디서 살 것이냐는 질문이 참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건축과 도시라는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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