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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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

한 달 전에 읽은 책 간신히 기억 꺼내보기.

알쓸신잡에 출현한 유현준 교수의 두번째 책이다. 방송에 얼굴을 비춘 후 워낙 유명해지셨고(나만 몰랐던 분인가?) 책도 많이 팔리고 했으니 별로 읽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선택됐고,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책의 도입부부터 꽤나 도발적이다. 학교와 교도소가 디자인과 기능, 목적이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입소문을 내고 싶었나 했는데 1장을 읽다보니 또 일정 부분 설득당했다. 전국 8도를 통틀어도 동일한 디자인. 네모난 박스처럼 생긴 건물 외형.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는 창문. 건물 부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쳐둔 담장. 학생들이 보이는 여러 신체, 정신적 문제는 교도소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재밌는 해석이다.

으레 건축이라 하면 그저 도면과 숫자, 콘크리트와 철근, 유리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것만 떠올렸다. 그런데 여는 글의

>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고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나와는 동떨어진 물질로만 건출물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건축이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는 문장을 읽고 새삼 놀랐다. 완전히 나 같은 건축 방면 바보에게 건내는 말이잖아?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로지 건축공학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 다소 편협한 내용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충분히 비판할 만한 점이다. 하지만 건알못인 나에게는 이 시선조차 새로웠다.

우리나라는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땅이 물러져 과거 무거운 돌보다는 가벼운 나무를 주자재로 건물을 만들었다. 빗물에 젖은 나무기둥이 문제없이 마르게 하려면 햇볕의 각도에 맞춰 지붕의 처마를 들어올려야 한다. 해의 입사각은 위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위도마다 처마 곡선의 높이도 달라진다(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베이징은 처마의 곡선이 낮다). 도시와 건축은 주어진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니. 도시와 건축, 디자인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그대로 투영하는 시선이 반영된 하나의 인문학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도시의 성장과 발달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이 걷고 그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벌어져 여러 이벤트가 만들어지는 도시를 꿈꾸는 듯하다. 단적으로, 서울과 뉴욕은 외면적으로는 빽빽한 빌딩숲 같은 비슷한 이미지를 주지만 막상 도심 안으로 들어가 거리를 걸으면 그 경험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뉴욕은 도심 곳곳에 시민들이 걸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 반면 서울은 한참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등의 이동 감각이 끊기는 경험을 하고서야 다른 공원에 다다를 수 있다. 걷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거리는 활발해지고 도시는 자연스레 자라나는 것이다. (사족. 문득 요새 서울의 문제는 공원과 녹지 부족보 미세먼지 뿜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걱정이 드는 건, 그가 제안하는 디자인이 실제로 가능하냐이다. 1장에서 학교 - 교도소를 묶어 도발을 한 후, 학교 건물을 저층 건물 여럿으로 나누고 공원과 학교를 묶어 학생들에게 자연을 되돌려주자는 콘셉트를 보여준다. 자연친화적인 거 좋지. 하지만 넓은 부지와 아이들 학습 시간은 어떻게 보장하지? 숲과 풀밭에서 놀던 학생이 다치면 학부모의 성원은 어떻게 감당할까? 도시 집약적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시도는 커녕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제안이렷다. 문제를 해결해나갈 때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어디에 잡느냐가 가장 어렵다.

사실 여는 글의 건축의 의미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건질거리가 많지 않았다. 잠실 롯데타워(고층형 사옥)와 애플사옥(수평형 사옥)을 비교하며 수직, 수평 권력 이야기를 한다든가, 온갖 상점이 입점한 쇼핑몰의 장단점을 나열하는 등 책 안의 여러 내용은 많은 매체에서 이미 접한 것들이어서 감흥이 덜했다. 게다가 위워크 비즈니스 모델과 탈중심을 언급하면서 tv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의 멀티 MC 진행방식과 비슷하다, 힙합가수가 후드티를 즐겨 입은 이유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유를 들 때, 글쎄, 이건 너무 나가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또한 건축학과 도시공학은 땔래야 땔 수 없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두 내용을 마구 섞어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책의 통일성이 떨어진다. 건축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말하다가 갑자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소 약한 고리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 마지막 12장은 벽과 창문, 기둥 등의 공간의 여러 요소를 설명한다. 급하게 기획된 도서가 아닐까, 분량을 채우기 위한 꼼수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회사 후배는 학창시절 주변 강이나 호수에서 산책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사는 자취방 주변에는 탁 트이고 맘 놓고 걸을 곳이 하나도 없어 근처 호수공원까지 한 시간 반을 걸어갔단다. 어디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샌프란시스코라고 답했다. 재밌게도 나의 뉴욕과 그의 샌프란시스코는 저자가 걷기 좋은 도시로 언급한 도시다. 기술이 발달해 스마트폰만으로도 세계여행을 어렵지 않게 하고 차도에 자율주행차가 다니는 시대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길을 걷고 타인과 함께 하는 삶에 익숙한 것 같다. 어디서 살 것이냐는 질문이 참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건축과 도시라는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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