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03)


1. 때로는 그런 책이 있다. 어떤 음악 없이,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카페의 웅성거림이나 화이트 노이즈도 없이, 그냥 텅 빈 공간에 나와 책만 덩그러니 놓여져 묵묵히 읽어내려가고픈 책. 손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감각과 엉덩이에 느껴지는 내 무게,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바닥의 냉기만 고요히 느끼고 싶은 책.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읽다보면 먹먹해져 책을 덮고, 밤에는 괜히 읽기 힘들어 펴지 못하는 책. 오랜만에 그런 책이었다.



2. 


>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것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_67쪽


>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_77쪽


> 몇 번씩 자다가 깬다. 그사이에 냇물처럼 꿈들이 지나간다. 깨어나면 이미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 꿈들.  _135쪽


글이란 놈은 참 희한해서 같은 내용이어도 누가 썼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르다. 내가 위의 짤막한 문장들을 썼다면 인스타감성 가득한 허세글이 되었을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철학자가 살아감과 사랑을 말할 때마다, 별 내용이 아니어도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삶의 완전한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이렸다.



3. 


>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_12쪽


> 아침에 눈떠서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받기만 했다고, 받은 것들을 쌓아놓기만 했다고,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그것들이 모두 다시 주어지고 갚아져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살아야겠다고……  _94쪽


사랑에 대한 글이 그리 많은데 거의 체크해두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철학을 탐구하는 동안 노 철학자는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을는지. 나는 과연 예정된 죽음을 앞둔 와중에 타인에게 저런 감정을 쏟을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지킬 수 없는 말들이기에 감히 집어두지 못한 부분들이다.



4. 


> 정신이 깊고 고요한 것만은 아니다. 정신은 우렁찬 것이기도 하다.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_35쪽


> 나는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의 몸은 얼마나 묵묵히 많은 일을 해왔던가. 나는 이제야말로 나의 몸을 사랑하고 믿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  _127쪽


> 그의 몸은 나날이 망가졌지만 정신은 나날이 빛난다, 라는 식의 역설은 옳지 않다.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_160쪽


책에서는 유독 육체와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평생 철학자로 살아온 저자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온갖 사유의 집합체인 철학을 공부함에 있어 정신을 앞세우지 않았을까 감히 억측해보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쇠퇴해져가는 정신과 육체를 두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잘 모르겠다.



5. 책은 2017년 7월 86쪽으로 시작해 2018년 8월 9쪽의 글로 마무리된다. 초반에는 한쪽이 거뜬히 넘는 글도 몇 편 등장하나 점점 짧아져 마지막은 두 세줄로 마무리된다. 특히 2018년 8월 9편의 글은 거의 여백이나 마찬가지로 모두 합쳐도 반쪽도 안되는 분량이다. 보통 다른 책들은 글씨가 빽빽하고 여백이 적을수록 읽기 부담이 가기 마련인데, 이 책은 글자가 적을수록 그 무게가 커진다. 고통의 순간에서 끝까지 글을 써내려간 철학자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감히 알 수 없지만, 그 많은 여백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6. “무엇이 문제인가.”. “가고 오고 또 가고.”, “잘 보살피기.”, “적요한 상태.”, “내 마음은 편안하다.”. 마지막 다섯 쪽의 문장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또 울음이 터진다. 이 책이 정말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르고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내가,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쓴 애도일기를 감히 ’좋아한다’ 따위의 감정으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그는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14쪽)라고 말했지만 글쎄, 나는 여전히 슬프다.


7. 마지막으로, 몇번이고 다시 읽은 글 꼭지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한다.


> 바이올렛 우산을 들고 아침산책을 한다. 어제는 비를 기다리며 늦어서야 침대에 들었다. 비는 나를 비켜서 밤사이 내린 모양이다. 비가 지나간 아침은 흐리고 조용하고 물기를 머금고 있다. 어제 내린 비의 추억일까. 다가오는 비의 소식일까. 젖은 대기 안에서 세우가 분말처럼 뿌린다. 문득 말년의 롤랑 바르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가 폴 발레리를 따라서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 했는지, 왜 생의 하류에서 가장 작은 단독자가 된 자기를 통해서 모두의 삶과 진실에 대해 말하는 긴 글 하나를 쓰려고 했는지…… 나 또한 나의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공부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큰 서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여기가 그 서재가 아닐까. 나는 여기서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나와 나의 다정한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내가 하류의 서재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_74,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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