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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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캠프에서 구호가 시작된다. 의료진은 난민의 상태를 보고 그들이 살아날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구분한다. 무자비한 행동이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한정된 자원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가망이 없는 이들에게 간호사는 그들의 아이는 너무 약하고 배급이 빠듯하니 손목밴드를 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이 강하게 부딪혀 모순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구호현장에 장 지글러가 서 있다.

장 지글러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우석훈은 그를 학자이면서 활동가이며 전문가라고 평한다. 학자로서 제네바 대학 교수와 제 3연구소 소장으로 역임했다. 활동가로서는 스위스 사회당원으로 일하고, 2000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다. 국제적 기아문제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시각이 뛰어나고 저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여준다.

책은 저자의 아들 카림과 대화하는 형식을 취한다. 선진국은 먹을 것이 넘쳐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음식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아이들이 왜 굶어가냐고 아들이 질문하고 저자가 이에 답을 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질답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기아 지역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가 겪은 일화뿐만 아니라 UN에서 발표한 통계를 소개하면서 객관적인 지표를 말하기도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기아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한다. 전자는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한다. 후자는 더딘 경제발전, 인프라의 미정비로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저자는 FAO와 다른 구분을 한다. 인간이 개입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저자가 묘사한 기아의 예시를 살펴보면 자연재해를 제외하고 모두 인간이 관련된다. 앞에서 경제적 기아의 예시로 든 전쟁, 자기 민족을 망치는 군벌 우두머리, 나라를 지배하는 사회구조,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거물급 곡물상이 결정하는 농산물 가격 등 인간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하는 일들이 세계의 기아를 키운다. 저자가 세계 기아의 주범으로 꼽은 신자유주의도 이와 궤가 같다. 일부 자연재해도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욕심이 들었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아마존 삼림을 해치는 산업도 자본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를 통해 희망을 보기도 했다. 이 젊은 개혁가는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에 취임하자 비효율적인 행정조직을 정비하고 인두세를 폐지했다. 철도사업을 진행하고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했다. 그는 부패가 심한 정치권, 턱없이 낮은 국내 생산량, 매년 적자를 보이는 무역수지를 타파하고 나라를 차차 개혁해나갔다. 외국세력에 의해 살해되어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저자가 언급한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 방법의 실례이기도 하다.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인프라 정비)

일부 사람들은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한다는 엉터리 논리를 믿기도 한다. 심지어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조차 이렇게 믿는다. 기아의 원인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려는 선진국의 비겁한 변명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논리를 믿는다. 학교에서 기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아에는 구체적인 원인이 있음에도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만을 갖고 사회에 나오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 대응을 하기 일쑤다. 우리가 사회와 경제 시스템에 대해 더 공부하고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깊게 사고할 필요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7년 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그동안 나아진 점이 없어 보인다. 1999년 8억 명이었던 영양실조 사람의 숫자는 2010년에 이르러 10억에 이른다. 태동하던 신자유주의는 이미 전세계에 위력을 과시하고 있고 광풍에 휩쓸려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전세계가 나서서 구호활동을 진행한 지 몇십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세계의 기아는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는다. 그 소를 소비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책은 기아를 없앨 방법을 명시하면서 독자에게 우리의 행동과 사고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자고 설득한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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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1-2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전에 읽었던 책인데, 기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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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남자로서 모자라지만 조언 한 조각

페미니즘, 관련해서는 나도 남자고 잘 모르니까 말을 길게 못하겠지만, 하나만 말할게요. 세상은 변해가고 있어요. 작년의 화두는 단연 페미니즘의 득세였구요. 사회의 포커스가 왜 페미니즘으로 갔을까, 생각은 해봤나요? 과거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지금 보면 여전히 그들의 삶은 저열해요. 적어도 흑인이 느끼기에는 말이죠. 우리가 남성과 여성은 이제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여성의 여러 권리가 신장되지 못했다는 점이 똑같아요. 말은 평등을 이야기 하지만 안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보이죠.

솔직히, 나도 남자이기에 페미니즘에서 언급하는 말과 문장이 버거울 때가 많아요. 그럴 때 회피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해봅시다. 과격해보이는 의견도 잘 생각해보면 맞는 말일 때가 많거든요. (가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긴 해요. 그건 의식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요) 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무조건 피하는 건 성숙한 자세가 아니지요. 불편하더라도 머릿속에서 다루는 것, 그게 진짜 공부입니다. 나도 미숙한 면이 많지만. 공부는 무슨 공부냐 이대로 살아도 편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살면 돼요. 단,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말이죠. 거기서 말하면 알아서 공감해줄텐데 뭐하러 밖에다가 말해서 욕 먹고 찡찡대나요.

책 한 권 소개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100쪽도 안되는 적은 분량이면서도 전세계적으로 대두하는 페미니즘을 간명히 보여줘요. 거창하게 이론을 설명하지 않고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공감을 줘요. 그래요, 공감, 그거 하나면 됩니다. 공감과 긍정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약간 격하게 느껴지는 실천 운동이 보기 싫으면 먼저 이론을 접해 생각의 기초를 만들어봐요.

여자편 들어주는 책 읽으면 남자로서 쪽팔리고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다고요? 원래 그래요. 그게 변화고, 진보입니다. 지금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개념을 접하려는 노력 자체가 당신을 인간적으로 발전, 성장시켜줄 거예요.

쓰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시간이 너무 늦어 안 보겠지만, 여하튼, 세상을 보는 눈을 길렀으면 좋겠네요. 공부를 충분히 한 후 비판하는 것마저 뭐라고 할 수 없으니까, 우선 공부합시다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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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은 결국 여성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평등을 다루는 영역이라는 사실에 절감하게 됩니다..

양손잡이 2017-01-22 14:4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혼자 생각하는 능력이 모자라서 남에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많은데요, 이론을 말한 것도 꽤 괜찮은 인터넷 기사에서 언급한 거거든요 ㅠ 역시 저는 아직 많이 모자르네요... 더 공부하겠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cyrus 2017-01-22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말씀을 살짝 빌리자면, 남성이 페미니즘을 여성을 다루는 학문으로 생각해서 접근하면, 아무리 여성차별을 인정해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소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면 전혀 도움 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공감에 그칠 뿐입니다. 왜 세상이 페미니즘을 주목하는지, 그리고 왜 공부해야하는지 기초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양손잡이 2017-01-22 14:52   좋아요 1 | URL
위에 언급했듯이 공부가 일천하여 많이 부족합니다. 써주신 덧글처럼 생각해본 적은 없네요... 공감부터 시작이라는데 실천과는 다른 영역이었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cyrus 2017-01-22 14:56   좋아요 1 | URL
저도 한창 공부해야 합니다. 간혹 하면 안 될 말을 꺼내서 여성이 기분 나빠할 수 있고, 여성차별 관련 문제를 바라볼 때 남성중심주의 시각에 갇혀서 문제의 본질을 못 보기도 합니다. ^^;;
 

이번주 일요일에 떠나는 제주도 힐링 여행에 어떤 책을 가져가야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어제는 문학, 과학, 철학, 사회, 인문... 분야를 나눠서 골랐는데, 막상 어떤 책을 주문할지 고민하니 이 고민이 무한루프에 빠진다.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어. 사놓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인터넷 서점에는 왜 이리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은지. 이 책을 사면 뭔가 문학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식인인 척 하려면 저 책 정도는 사야 하지 않을까. 들고다니면서 자랑하고 인스타그램에 나 이런 책 읽는 멋지고 똑똑한 사람이오, 라고 자랑해야지, 하는 허세만 가득한 독서. 이런 태도가 벌써 7년째다. 겸손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책읽기 방법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 고민해본다. 다독이 아니라 정독으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싫어했던 이유가, 세상에는 수많은 읽기 방법이 있는데 그의 방법만이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이라고 설파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권을 읽더라도 끊임없이 사색하면서 읽어라.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 끝없이 파고들어라. 초등학교 때부터 즐기는 독서로 해온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독서법이다. 이 세상에 재미난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책 한권에만 머무른단 말인가?


그런데 남는 게 없네. 그저 읽기만 하는 지금의 독서로는 몸과 마음과 머리에 체득되는 지식이 없다. 지금은 그저 읽어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가끔 멋들어져보이는 글귀에 포스트잇을 붙히지만 그걸로 끝이다. 책을 덮고 표시해둔 부분을 다시 펼치면 그것끼리 아무 공통점이 없다. 그 문장들이 한데 모여 서로 상응하고 영감을 줘야 하는데,  애초에 읽는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내게 책은 단순히 시간을 떼우는 도구에 불과하다. 불과했다, 가 아닌 이유는 일기를 쓰기 직전까지 손에 들었던 책마저도 위와 똑같은 생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독을 통해서도 충분히 책이 주는 감정에 감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속독가들은 다들 의미가 없어진다. 허나 속독은 그들의 능력이고 무기인 것 같다. 빠르게 읽는다 해도 책이 주는 반짝이는 지점을 잘 캐치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것이다.

텍스트를 빠르게 소화시지 못하는 능력도 없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꾸역꾸역 뒤로 넘어가기만 바빠, 책 읽기가 과제인 마냥 마지막 장을 얼른 닿고 싶어 조바심만 내,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주변 사람에게 책을 많이 읽는다, 1년에 몇 권씩 읽는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까지 내 독서는 아무 효용가치가 없었으니까. 독서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무가치한 독서를 지향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름 지식의 틀을 갖춰야 소용이 있는가도 싶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을 읽고 다독이 무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으면 배경이 되는 역사(또는 작가의 연대기나 평전), 그 시절의 철학을 같이 읽는 게 문사철 독서법의 요지다. 내가 여태까지 읽은 대부분의 책은 앞뒤로 읽은 그것과 관련이 없었다. 지금의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학 서적을 읽다가 뜬금없이 25세기의 우주활극을 읽고, 19세기 프랑스로 갔다가 고대 아테네의 광장으로 향했다. 앞뒤로 전혀 맥락없는 독서를 하니 책을 아무리 읽어봐야 세상이 세상이 전혀 넓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문사철 독서법이란 개념을 접했으니 글자를 읽기 시작한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과연 진짜 읽기를 한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이런 것이 진짜 다독이라면 나는 다독을 할 짬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깨닫고 나니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천천히 깊게 읽으면 되잖아?


오늘부터는 책 읽기 속도를 조금 줄여보려 한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 이해하지 못하고 글씨를 훑는 읽기에서 글씨 한 자 한 자를 탐독하는 읽기로 바꿔야겠다. 300권 가까이 쌓인 책의 탑을,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지낼 친구로 생각하면서.



결국 오늘의 일기도 끝은 허망하게 끝난다. 고민은 많고 자책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상, 진리는 단순한 법이다.


그리고 결론은? 알라딘 장바구니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담았다. 2013년 1월에 읽었으니 정확히 4년만이다. 그러고보니 공부한다고 해놓고 신나게 자기계발서를 사고, 독후감 쓰기 연습한다고 독서와 서평에 관한 책을 사고, 이제 독서 방법을 바꾼다고 그에 관한 책을 산다. 실제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하려고 티내는 이런 모습부터 버려야 하는데 잘 안된다. 천성이 게으름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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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의 흐름으로 썼습니다. 일기를 쓰다가 푸념을 쓰다가 대충 책 이야기로 끝이 났습니다. 내 안의 잉여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여태껏 책을 읽고 어떤 형태로든 감상을 적어왔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발췌문으로 가득해 겉으로는 참 멋있어 보이지만 - 작가의 문장이기 때문에 정제되고 깊은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다 -  실제로 내 생각은 거의 없거나, 아니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재작년에 한참 허세 가득찬 글쓰기에 취한 동안, 그 허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알라딘에서 몇번의 이달의 마이리뷰나 마이페이퍼로 선정해주기도 했다. 그저, 멋있어 보이는 글을 길게만 썼다. 그러면 있어 보이고, 진짜 같으니까.

똑같은 발췌문을 옮겨적더라도 단순히 멋있는 장식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발판삼아 더 넓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뻗어나갈 것인가. 나는 항상 전자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담은 글쓰기를 진득히 바랐다. 바라기만 했고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면서도 바뀌려고 노력조차 안했다는 말이냐, 하는 말에 나는, 지금도 잘나보이는데 뭐하러 칙칙하고 끈적거리는 속마음을 내비춰 못나보이는 것도 싫다, 고 답했다.

마음 안이 고통으로 범벅된 지금, 이렇게 힘든 지금이야말로 나를 바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전부터 고민이었던 단순한 감상에 그치던 독후 활동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1월부터 서평 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서평에 관한 책을 읽고서도 독후감과 서평은 별 다를 게 없고 비평을 해봐야 뭐가 바뀌겠냐는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이왕에 마음먹은 거 대차게 해보자. 끝에 쪽박을 차더라도 이때만큼은 열심히 해보는 거야. 다짐했다.

새해를 맞이해 모두들 신년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3일을 가지 못하고 무너진다. 작심삼일.

나도 다른 사람과 별 다를 건 없었다. 공들여 노력하겠다던 글쓰기 연습은, 일기를 40일 넘게 짤막하게나마 쓰고 있다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과 정성이 점점 줄어간다. 1월이 7할 정도 지난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독후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줄 평도 남기지 않고 단순한 감상에 별점만 주고 땡. 심지어 서평 수업의 첫 과제는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기한을 넘겨버렸다.

아아, 이 구제불능을 어찌 할꼬. 올해부터는 새로운 내가 된다고 온라인에 그렇게 홍보해대고 실상은 밀린 책을 보며 빨리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저 ‘읽기’에만 정신이 팔렸다. 책을 다 읽었으면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런 행동 없이 그저 다음 책 다음 책, 다독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헬렐레 거린다. 다독도 나름이지, 남은 게 하나 없는, 무의미한 행동들. 몇 년 전에는 책을 많이 읽으면 무의식에 암묵지가 생기리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다.

독서는 독후 활동을 위한 단순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후 활동은 독후감 쓰기로 계속 해왔는데 심화된 과정으로서 서평을 연습하려고 했다. 하지만 독후감과 서평은 단어에서 풍기는 냄새부터 뭔가 다르다. 전자가 주관적 감상 위주라면 후자는 객관적인 비평이 중심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실질적으로 서평 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선호하는 출판사인 ‘유유’에서 작년 12월에 막 <서평 쓰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보았다. 서평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이런 책이 나오다니 참으로 행운이었다. 굿즈(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책을 잔뜩 사면서 이 책도 함께 주문했다.

제목이 서평 쓰는 법이라고 해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나 팁을 전수해주는줄 알았건만, 그런 면에서는 말짱 꽝이다. 책을 읽고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김민영, 황선애 공저의 <서평 글쓰기 특강>이 실용서적에 가깝다면 <서평 쓰는 법>은 ‘서평 쓰기’에 대한 전체적인 안내서다. 서평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목적, 전개, 요소, 방법 등 서평 자체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무엇을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천천히 읽기를 강조한다. 직전에 읽은 윤성근의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는 저자의 속독법에 대한 꼭지와는 정반대다. 그런 면에서 김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평하는 상반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한 권을 읽어도 깊게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많이 읽다보면 그 가운데서 나름의 사유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베스트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도 상반된 의견이 있다. 지대넓얕은 제목 그대로 얕더라도 넓은 지식을 갖추자고 말하지만 <서평 쓰는 법>은 폭보다는 깊이의 독서를 권한다.

다만, 이 세 권의 책과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까지 모두 맥락에 의한 독서를 권한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는 문사철 독서를 통해 문학 작품이 쓰인 시대의 역사와 당시의 철학까지 공부하라고 말한다. <지대넓얕>은 수없이 넓은 지식의 세계를 몇 가닥의 맥락으로 구분해 세계를 조금은 단순히 파악하는 연습을 말한다.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맥락을 읽어내는 일종의 교양을 위한 독서와 공부에 대한 책이다. <서평 쓰는 법>도 책의 맥락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훌륭한 저작은 성실한 독자의 머릿속에 느낌표와 물음표를 남긴다.(146쪽) 이 문구 그대로 <서평 쓰는 법>에 적용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서평이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배운 느낌표와, 그렇다면 대체 서평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물음표가 머리에 마구 맴돈다. 좋은 서평을 쓰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실용적인 팁은 부족하지만 뒷표지에 쓰인 말대로 본질부터 기술까지, 서평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양이 적어 실질적인 예시가 적지만 충분히 꺠우침을 주는 책이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을 다시 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이 많다. 다시 읽어야겠다.

다음 주 제주도로 힐링 여행을 떠난다. 며칠은 책을 읽을 예정이어서 어떤 책을 가져갈까 생각했는데 <서평 쓰는 법>이 추천해준 서평집이나 몇 권 들고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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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0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고, 한 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양손잡이님 덕분에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할 생각입니다. 유유출판사를 위해서.. ㅎㅎㅎ


양손잡이 2017-01-20 12:07   좋아요 1 | URL
사실 독후감을 쓰려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이상한 짬뽕이 되었네요. 책 소개는 5%도 못한 것 같습니다. 중요한 줄기는 천천히 읽기와 맥락으로 쓰기였지만요. 어제 책을 다시 읽으니 내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계속 소장하면서 몇번이고 다시 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유 출판사 사랑해주세요. ㅎㅎㅎㅎ
 
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지음, 김현수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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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한빛비즈, 2016

0. 허허. 이런 책을 빌릴 줄이야. 새벽 두 시가 돼야 잠에 드는 철저히 야생형 인간인 내가, 아침형 인간에 대한 책을 보다니 개과천선을 뛰어넘어 천지개벽 수준이다.

1. 저자는 스무 살에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걷지 못하는 수준, 아니 생명을 겨우 이어갈 정도로 큰 상해를 입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에도 꾸준히 노력해서 재기한다. 그뒤 영업직으로 일하며 개인 최고 실적, 팀 판매 실적 1위를 달성하며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성공적인 삶은 2007년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무너진다. 명성도 돈도 모두 잃는다. 친구에게 자신의 좋지 않은 상황을 털어놓았다가 이런 말을 듣는다.

>친구 : 운동은 하고 있니?
>나 : 아침에 침대에서도 겨우 일어나. 근데 운동을 하겠니?

3. 달리기를 시작하라는 친구의 조언에 한걸음씩 내딛는 날이 이어지면서 저자는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때 고안한 게 ‘미라클 모닝’이다.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저자가 아침에 실행했던 간단한 일이 마치 기적같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4. 보통 아침에 느끼는 감정은 ‘귀찮음’, ‘바쁜’, ‘정신없는’, ‘게으른’, ‘늦은’ 등등이 있다. 허둥지둥대는 아침을 보내고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머릿속은 그날 해야 할 일로 잔뜩 헝크러져 부산해진다. 아침과 하루가 망가지는 소리가 들린다.
5. <원칙있는 삶>의 저자 스티브 파브리나는 잠에서 깨어나 맞는 첫 한 시간은 하루의 방향키라고 말한다. 저자도 이에 동의하며 아침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면 하루가 차분해지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한다. 아침에 자기계발을 하면 하루 종일 쌓이는 피곤함과 시간 부족 같은 핑계를 대기도 힘들기에 낮이나 저녁의 자기계발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6.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행동으로 저자가 권하는 것은 크게 여섯 가지. 천천히 호흡하며 명상하기, 큰 소리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자신의 꿈을 상상하기, 운동하기, 책 읽기, 그리고 기록하기이다. 단 1분씩이라도 여섯 가지 일을 하면 아침의 단 6분만으로 하루가 바뀐다고 한다. 또한 미라클 모닝은 철저히 개인 맞춤형이기 때문에 독자가 하고 싶은 행동을 원하는 때에 하면 된다.
7. 아침형 인간을 다룬 여타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른 면모는 없는 책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찾는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기 때문이리라. 아침 6분이면 당신의 하루가 바뀌고 일주일이 바뀌고 결국 삶이 바뀐다니. 저자가 소개한 것들도 어려운 일이 없다. 알람이 울려도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고 싶고 적극적으로 하루를 준비하겠다는 건 말뿐이라는, 의식 저편 부정의 메시지를 지워버리자. 하루 6분만 투자해 아주 간단하고 혁명적인 여섯 개의 작은 습관을 준비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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