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인생이 담긴 한 편의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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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물리학의 시간은 세상에 대한 우리 무지의 표현이다. 시간은 무지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회전이 우주의 특징일니까? 아니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우주를 연구했고, 결국 하늘의 순환에 대해 알게 되었다. 회전하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이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주의 신비로운 역동성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의 독특한 이동 방식에서 기인한 관점 효과 때문이다.
시간의 화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는 우리가 우주와 상호 작용을 하는 특별한 방식(우리가 속한 물리 체계)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양상들 가운데 일부의 특별한 집합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집합’이 시간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까 시간의 흐름은 우주의 특징이 아닐 수 있다. 하늘의 회전처럼, 우주의 한 모퉁이에 박혀 있는 우리가 갖고 있는 특별한 관점에 기인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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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는 근본 ‘실체‘의 관점에서 세상을 파악하려했다. 아마 그 어떤 학문보다 물리학이 이러한 근본 실체를가장 많이 연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세상이 존재하는 사물들로써 그다지 잘 이해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훨씬 더 잘 이해된 듯하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을 어떠한지가 아니라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로 설명한다. 뉴턴 역학과 맥스웰 방정식, 양자역학 등도 ‘사물‘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는가를 설명한다. 우리는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하고 살아가는지’ 연구하면서 생물학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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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현재‘의 개념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곳엔 과거(우리가 볼 수 있는 사건 이전에 일어난 일들)가 있다. 그리고 미래(지금 여기서 볼 수 있는 순간 이후에 일어나게 될 일)도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시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이 간격은 화성은 15분, 프록시마는 8년, 안드로메다 은하는 수백만 년에 이른다. 이 간격은 현재의 확장이다. 아마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들 중 가장 거대하고 이상한 발견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우주 곳곳에 잘 정의된 ‘지금‘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환상이자 우리 경험의 부적절한 외삽이다. 비유하자면 무지개가 닿은 숲의 한 지점처럼, 직접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보러 가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시간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문제 처음으로 문제 삼은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BC 322는 시간이 변화의 척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사물은 계속 변화하고,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측정하고 계산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
.......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없이 ‘진짜‘ 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진짜‘ 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른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시간과 반대인 것이다.

시가의 ‘양자화‘는 시간 t의 거의 모든 값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정확한 시계로 시간 간격을 측정한다면, 측정된 시간은 오직 몇몇의 분리된 특정한 값만을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간격은 연속적이라 생각할 수 없다. 균일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캥거루처럼 한 값에서 다른 값으로 껑충 뛰어넘는, 불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시간의 ‘최소‘ 간격이 존재하는데 이 간격 이하로 내려가면,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보더라도 시간으로서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하이데거 Heidegger, 1889~1976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연속‘의 특성을 논하기 위해 학자들이 낭비한 잉크의 양은 상당할 것이다. 연속은 사물을 아주 세밀하고 고운 형태에 가깝게 하기 위한 수학 기법일 뿐이다. 세계는 미묘하게 분리돼 있으며 연속적이지 않다. 신은 이 세상을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지 않았다. 쇠라 Seurat, 1859~1891처럼 가벼운 손놀림으로 작은 점을 찍어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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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을 가진 물질들에 대한 지식은 초기의 화학자들도 제법 가지고 있었는데, 이 물질들이 수소 원자를 가지고 있는 화합물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소수 원자를 가지고 있는 화합물 중에 이 원자의 촐싹거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분자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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