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카이에 소바주 5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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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욕망에 정확히 부합되는 이미지를 만난다는 것은 매일 있는 일은 아니다

written by 자크 라캉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 책의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원화된 비대칭적 사고로 형성된, 오늘날의 현대문명은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국가질서와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적이며, 무분별한 개발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대칭적 사고(유동성 지성)로 제 2의 형이상학 혁명을 이루어 내어 현대문명의 이런 문제점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제시한 유동적 지성이 과연 현대문명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의 백신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접기로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사상의 논거로 제시한 예들에서 발생합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합한 사실 데이터(Fact Data)의 제시에 있다고 봅니다. 사상의 논거로 제시한 예시가 사실이 아닌 가설이거나 불확실한 정보만을 담고 있다면 신뢰성을 갖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가 제시한 몇 가지 실례들을 살펴보면,


첫째>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적 증거

 

저자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진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네안데르탈인 보다 훨씬 더 긴 미숙아의 단계를 거침으로써 상징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진화경쟁에 있어서 생물학적 우위가 반드시 진화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입니다. 진화에는 어느 정도의 ‘운’이 작용하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라는 법칙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극히 소수이며, 완전한 모습이 갖추어진 채 발견된 적도 없습니다. 하물며 이런 극소량의 화석화된 해부학적 증거만으로 네안데르탈인의 마음의 구조를 밝힌다는 것은 다소 무모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둘째> 행복론

 

저자는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대칭성의 원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담당하고 있다고 저술하고, 성(性)적 체험이나 종교적 체험, 예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고양감등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적 체험이나 종교적 체험 같은 경우는 너무나 개인적이며, 그것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증언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논거로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저자는 “성녀 테레사”의 종교적 체험을 몇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괴담이야기에나 어울릴 듯한 것이지 전문적인 학술서나 사상서에서 다룰만한 것은 아닙니다.

예술이 주는 열락과 같은 행복감도 개인의 환경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그리 적합한 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저자는 모네의 <수련>을 보고 행복의 파편들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저자를 제외한 60억 인구 모두가 수련을 보고 마냥 행복감만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저자가 제시하는 교환/증여론의 논거들도 엄밀하지 못하며 때로는 어설프기 까지 합니다. 물론 이 책이 대학교 1,2학년을 상대로 하여 매우 쉽게 쓰인 교양서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학술서나 사상서의 이름을 달고 있다면 그 학문적 논거는 엄밀하고 단단한 사실만을 다루어야 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나 소수의 개인적 증언에만 의지하여 논증을 펼친다면 그 누구도 신뢰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장점이라면, 대부분의 인문교양서들이 흔히 가지는 지루함이나 따분함 등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흥미를 끄는 재미있는 사례들이 많고, 저자의 알기 쉬운 친절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인류학의 입문서로는 적당한 듯싶습니다.

저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루고만 있었던,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대양으로 나아가는 좋은 길잡이를 구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책의 제본이 충실하지 못하고 해제나 각주가 불충분하여 읽어나가는 동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원초적 억압> 같은 자주 등장하는 개념들은 알기 쉽게 밑에 각주를 달아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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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2-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레사성녀의 종교적 신비체험을 괴담이야기에나 어울릴만한 이야기라고 한말은 무척 잘못된 시각입니다. 님은 어떤 체험의 진위여부를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로서 판단하시는가요? 역사적으로 테레사성녀와 같은 신비체험을 했던 사람은 꽤 많습니다..단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없을 뿐이지요. 님말대로라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신비체험은 다 믿을수없는 괴담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지..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가 적어서라는 얼토당토한 논리로 말이죠. 예술적/종교적 체험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질적으로 체험할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카자와 신이치가 이야기하듯..대칭적 체험/사유가 되는 것이지요..님이 그것을 "괴담"이다라고 이야기하는것 자체가 님이 바로 비대칭적 사유에 매몰되어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보르헤스 2006-02-2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빌라의 테레사"의 종교체험을 단지 종교체험만으로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테레사는 아주 부유한 귀족출신이었으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당시 사회적 필요에 의해 12살에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수녀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병이 났고, 그로 인해 환속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아빌라에 돌아온 테레사는 곧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아버지 반대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해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테레사가 살던 시기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유별난 종교체험"들을 많이 하였고, 그 중에서도 테레사의 종교체험이 역사적 사료로 남게 된 것은 테레사의 아버지가 수도원에 한 막대한 기부에도 적지않은 영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테레사는 그냥 수녀가 아니었습니다. 귀족에다 부유한 출신의 수녀입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보자면 테레사의 증언은 일반 민중이 아무렇게나 지껄인 신비체험과는 다른 강도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또한 그녀의 체험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사실 억압된 성적충동의 발현이라고 보는 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증언만으로 학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것이고, 그래서 정신분석학도 '과학의 이름을 빌은 문학'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yoonta 2006-02-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아빌라의 테레사의 체험이 단순한 종교체험이냐 아니냐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저는 종교적 체험/신비체험/무의식 체험등과 같은 합리적으로는 설명불가능한 불가해한 체험/사유가 실제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리고 위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그 체험자가 극히 소수이고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체험이기 때문에 님처럼 괴담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실제성은 부인하기 힘들죠..정신분석에서의 무의식분석도 이러한 인간의 심리속에 잠재되어있는 불가해한 실체를 밝혀내려는 시도이고 그렇기 때문에 님의 표현처럼 '과학의 이름을 빌은 문학'이라는 평가도 받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을 모두 괴담이다라고 보는 시선은 지극히 편협하고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러한 편협한 시선이나 논리야말로 비대칭적인 것이라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 인류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보르헤스 2006-02-2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체험/신비체험/무의식체험 등의 사유가 있나 없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기에 저로서는 그것의 실재성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오늘날 현대문명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는 여러 문제들이 대칭적 사고로의 전환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칭적 논리가 지배하던 고대사회에는 오늘날의 현대문명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점이 없었을까요? 설사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는 또다른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했을거라고 봅니다. 고대사회에서도 인간/동물에 대한 대량학살은 쭉 있어왔고, 여러 역사적 사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나카자와 신이치가 이른바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대칭적 사고로의 전환을 설명함에 있어서, 과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사실 데이터의 제시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예시가 불충분하였고, 자신의 전제를 입증하기 위한 논리 또한 엄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단순히 이론이나 가설을 소개하는데에서 그쳤다면, 테레사의 성녀의 예도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하였고, 그 주장을 뒷바침하기 위한 논지로 테레사의 성녀를 예로 들었습니다. 테레사의 성녀의 증언은 사실 검증하기도 검증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증언을 예시로 삼는 것은 논제를 전개하기에는 불충분하다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