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비록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신다14)고 말하는 관습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미한 구별이다. 죄인 안에 죄말고 무엇이 있는가? 그의 "머리 전체가 병들었고 그의 "마음 전체가 쇠약해"졌으며,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닌가? 하나님은 성자를 경멸하고 거부하고 있는 자를 사랑한다는 말이 맞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빛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그의 양심을 마비시키는 것이며 죄 중에 머물러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진리인 것이다.  - P302

오늘날 (건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죄인들에게그리스도를 너무나 지나치게 제시하고 있으며 죄인들에게 그리스도가필요하다는 사실을 즉, 죄인들이 절대적으로 파탄된 상태에 있으며 죄인들은 다가올 진노를 겪게될 무서운 위험이 임박하며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책을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적게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적도 없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제시한다는 것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주는 죄를 짓는 것과 같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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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의 허구성
정태홍 지음 / RPTMINISTRIES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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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의 허구성](정태홍, RPTMINISTRIES]

12월 마지막에 읽을 종이책으로 어떤 책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낙찰한 책이었다. 왜 골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원래 신랑 책이다. 내가 산 책 중에도 안 읽은 책이 많아서 신랑 책까지 넘볼 생각을 못했는데, 요즘 교회들이 워낙 심리상담과 교리를 섞어 가르치는 게(교리를 가르친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꼴보기 싫은 단계까지 도달해서 집어들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표지가 아무런 디자인 없이 새빨갛기만 한 게 좀 부담스럽긴 한데 의도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용적 편집이나 맞춤법 부분에 있어서도 조금은 아쉬웠다. 또, 굳이 주서택목사의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분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주서택목사의 교재를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의 시작은 제이 아담스였다. 대학원에서 ‘기독교 상담의 이론과 실제‘ 강의를 들을 때 심리학 위에 신학을 쌓은 사람이 게리 콜린스, 심리학과 신학을 섞은 사람이 로렌스 크랩, 신학 위에 심리학-신학이 심리학에 우선한다-을 쌓은 사람이 제이 아담스라고 했었다. 게리 콜린스는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서 워낙 비판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참고 문헌에 로렌스 크랩과 제이 아담스는 등장조차 하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했다.). 또, 처음에 내가 좋아했던 로렌스 크랩은 상담을 배울수록 성경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제이 아담스로 옮겨 가게 되었던 건데, 이 책에서는 제이 아담스도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1차 충격을 받았다(내가 서평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지점이다.).-(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제이 아담스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제이 아담스의 상담 이론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본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인본주의에 물들어 있었던 것은 잘 몰랐다. 내가 힘들었던 상처에만 집중하고 상담을 배울 생각을 했지, 내 문제의 답을 성경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물론 성경은 심리학 책이 아니고, 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상담을 공부하려 했다는 것도 한참 뒤에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았던 게 2012년 1월 말씀묵상캠프였는데, 말씀묵상캠프를 담당하신 목사님의 성경 묵상을 통한 질문과 통찰력이 상담을 통한 질문, 통찰력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상담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내 속의 어리석음을 발견했다. ‘아, 나는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담을 공부해서 채우려고 했던 거구나!‘ 그런데 이 책에서 똑같이 말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성경만으로 부족한 목사와 성도‘(24쪽)).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에서조차) 심리학을 외치는 교회들이 많다. ‘아무리 개혁주의 신앙을 외치는 분이라 할지라도, 심리학에서만큼은 너무나 관대하고 자상하고 포용력이 한이 없습니다. 심리학을 비판하는 사람을 광신자로 몰아세웁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가장 개혁주의적인 목사라고 자부하며 개혁주의 모임을 주도합니다.‘(27쪽) ‘결국 설교는 성경으로 하고, 가정사역은 심리학으로 하겠다는 생각입니다.‘(36쪽) 내가 제일 싫은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개혁주의라고 한다면 칼빈의 5대 강령(칼빈이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에 따라 ‘오직 성경으로‘여야 하는 건데, 도대체 왜 심리학적 기술과 방법들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심리학적 기술과 방법을 동원하면서 개혁주의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는 대학교 4학년 때 읽었던 책이다. 그 책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통곡(?)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성령님의 인도라고 볼 수 있을까?(주서택목사는 그것을 성령님의 인도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건, 주서택목사가 하는 이 방법 ‘시간여행‘은 브래드쇼의 명상 방법과 똑같았다(167~183쪽). 그렇다면 명상은 성령님의 인도인가?
또 다른 문제점은 성경이 말하는 ‘속사람‘과 주서택목사가 말하는 ‘속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속사람‘이 두 번 나오는데, 두 번의 내용 다 주서택목사의 ‘속사람‘(내면아이)과는 다른 의미이다(78쪽 참조). 비단 ‘속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 의미의 낱말과 성경에 나오는 낱말이 같은 뜻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잘못된 용어 사용은 ‘속사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 가지는 구상화(Visualization)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꿈은 이루어진다‘를 뜻한다. 내가 지난 여름에 [미라클모닝]을 읽으면서 찝찝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자신이 되고 싶은 바를 상상하고 소리내어 말해보라는 단계가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적이지는 않아서 그 단계를 뺐더랬다. 그게 아마 ‘구상화‘를 말하는 것 같다. 대학원에서 심리검사 수업을 들을 때도 이상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 그림이 답(미래)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 오는 날의 사람‘ 그림을 공부할 때 교수님이 했던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구상화‘인 것 같다. 그 교수님이 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융이 영지주의를 끌어왔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인가 싶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관상기도도 구상화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방언도 그렇지 않을까?(방언 유경험자임을 밝힘) 신앙이 약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방언‘으로 보여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언의 유익은 거기서 끝이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방언은 아무 유익이 없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뜻도 모르는 소리를 계속 기도로 하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방언을 하나의 이적으로 본다면, 이적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에게서도 가능한 것이다.
‘구상화‘에서의 핵심은 ‘영적인 안내자‘이다(93쪽 참고). 나는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영적인 안내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 상상을 해서 떠오르는 대상, 그게 바로 ‘영적인 안내자‘이다. 기독교와 혼합이 되는 순간 그 ‘영적인 안내자‘는 예수님, 하나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주서택목사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또, 기독교상담에서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성령님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는데, 기독교상담을 하면서 마음이 변하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일까? 일반 상담을 하면서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상담 아닌 것으로도 가능하다. 생각, 습관, 행동이 바뀌는 것을 전부 성령님의 역사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일반은총의 영역이 아닐까? ‘영적인 안내자‘는 예수님일까?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범신론을 인정하는 셈일 거다. 그렇다고 일반은총으로 보기에도 살짝 찝찝하다. 사실 나는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7권에서 이런 냄새(?)가 조금 났더랬다. 8년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내 과거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라는 결정론적 생각이 과연 성경적일까? ‘자아실현‘이 과연 성경적일까? 오늘날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행복‘은 ‘자아실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아실현‘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자기부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에 집착하는 것은 나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내 문제를 알아보겠다고 계속 과거를 파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더 집중할 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는 더 멀어진다. 나의 이해와 다른 사람의 이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아도 사랑해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해되어서 사랑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사랑일 테니.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면아이‘로 돌아가서 지금의 나를 바꾸어 보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보겠다는 죄악된 생각이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나의 죄악을 회개하며 돌이키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83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자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일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며 과거가 우리를 이끌어 가지도 않습니다. 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이제는 은혜가 왕노릇하는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 진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과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노예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136쪽)

심리학이 기독교와 대치되는 이유 중 하나는 문제를 죄로 바라보느냐, 병리현상으로 바라보느냐의 관점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있기에 ‘인간은 죄인이다‘로 시작하는 기독교와 대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 나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려 할 테지만,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또, 구상화의 ‘영적인 안내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눈에 직접 보이는 대상만 ‘영적인 안내자‘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릭 워렌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여러 모로 아직 정리는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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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nahoo 2022-04-1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님의 글을 더 자주 접하고 싶네요.

Mulan 2023-04-17 01:03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 독서법 - 10대와 함께 성경에 빠지는
김기현 지음 / 성서유니온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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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경독서법](김기현, 성서유니온)

작년 초에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을 읽었는데, 작년 말에 [성경독서법]을 읽었다. [성경 독서법]은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을 10대 한정으로(?) 풀어 쓴 책이다. 앞의 책에서도, 뒤의 책에서도 다가왔던 부분은 ‘소리내서 읽어라‘였다. 이 부분이 마음에 많이 남았던지, 그 후로는 교회에서 말씀을 소리내어 읽을 때가 언제인지 손에 꼽고는 했다(물론 거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교회를 거의 못 가서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가더라도 예배를 인도하는 분-대개는 목사님-이 말씀을 읽으시지 성도들까지 함께 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혼자 말씀을 묵상할 때 소리내기는 쉽지 않은데, 자고 있는 아기가 깰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괜히 나 때문에 깨서 하루의 리듬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하루의 리듬이 흐트러지면 퇴근 후 아기랑 놀 때의 리듬도 흐트러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신랑이 더 많이 놀아주기는 하지만.). 걱정하고 있는 부분을 글로 적고 보니, 소리 내서 읽어야겠다.
이 책은 챕터 끝부분마다 ‘나눔과 토론을 위한 질문‘이 있다. 10대와 함께 나누면 좋을 질문이지만, 요즘처럼 성경을 멀리하는 시대에 어른들도 함께 나누면 좋을 질문들이다.

반복이 힘이 아니라 말씀이 힘입니다. 반복에 변화의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변화의 비밀이 있습니다. 말씀이 능력이기에 때로 무의미한 반복처럼 보여도 반복을 통해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습관, 행동을 바꿉니다.(31쪽)

말씀이 힘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반복이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어서 말씀도 힘이고 반복도 힘이라고 생각했다. ‘반복은 그저 묵상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31쪽)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다. ‘지금은 반복을 통해 무의미하게 행동하게 되더라도 언젠가 깨닫는 현상은 일반 은혜의 영역인 것 같은데, 생각, 습관, 행동의 변화가 말씀의 힘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라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적치유의 허구성] 서평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요즘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성경을 분절적으로 뚝뚝 떼서 읽는 또 하나의 방식이 가톨릭의 전례독서입니다. 즉 전례주기를 따라 성경을 읽는 방식입니다. ...(중략)... 모름지기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저자가 기록하고, 교회가 정경으로 편찬한 순서대로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상의 방식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통째로 먹어야 합니다.(92쪽)

통째로 읽고 싶다. 교회에서 이런 거 (수련회로) 하면 참 좋을 텐데. 짧은 책부터 시작하면 좋을 텐데. 성경을 통째로 읽는 모임도 있으면 좋겠.......다(생각해보니 나는 아기를 키우는구나... 더 이상 일을 벌리면 안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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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밥 먹다가도 화가 난다 - 청소년 성장소설 십대들의 힐링캠프, 분노 십대들의 힐링캠프 18
이선이 지음 / 행복한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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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밥 먹다가도 화가 난다](이선이, 행복한나무)
-믿고 보는 권일한선생님 픽.

책을 다 읽은 뒤에야 작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 앞면 표지에 ‘중학교 국어선생님‘에서 우와 한 번, 17년차라는 데서 우와 두 번, 사진에서 보이는 동안 외모에서 우와 세 번을 외쳤다(?).
이 책은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한 학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아이의 심리 상태를 매우 세부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이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그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상황에 대해서도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만 서술하는 경향이 많다(그 아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감정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말한다.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조금 더 특화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학생들이 이 책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대변하다니!‘라고 말하는 책일까, 란 궁금증이었다.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만나는 아이들이 당연히 이 책을 보고,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내 마음을 말로 설명하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은 없었다. 특히, 나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울기부터 했다. 대학원에서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해주는 언니를 만났을 때, 신세계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라는 생각에 눈물부터 나왔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의 감격이었던 건지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을 공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이 이 책을 봤을 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감격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알아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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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 개정 양장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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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윤성원 옮김,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어둠의 저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10년도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색채가 너무 너무 어두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알베르 까뮈 같은, 그리고 야시마 타로 같은 사람. 극도의 어둠의 색깔 때문인지 이 책은 오히려 밝게 느껴졌다. ‘아, 어두운 사람이 아니구나.‘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부인과 함께 그리스, 로마,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억나는 장면은 하루키가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섬에 다녀온 것, 로마를 매우 안 좋은 관점으로 바라본 것, 여행지에서 달리고, 공연 보러 다닌 것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하루키 부부의 여행은 1986년부터 3년 동안 지속되었다. 3년 동안 여행을 다닌 삶이 왠지 부러웠다. 바로 옆에서 하루키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1980년대 이야기라니 놀라웠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로마의 모습이 1980년대에나 최근 몇 년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고경진선생님 말씀에 놀라웠고, 1980년대 당시에 자식을 중요하게 여겼을 일본 문화 속에서 딩크로 살아갔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다. 1980년대의 하루키는 나와 비슷한 연배였다는 것도 신기했다(?). 하루키가 만들어낸 소설 속 인물에만 집중했지, 작가 하루키, 인간 하루키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 특유의 여행 색깔이 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이 다니는 곳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다. 도서관만 다니시는 분도 봤고, 책방만 다니시는 분도 봤고, 역사(세계사)여행을 하시는 분도 봤고, 묘지를 다니시는 분(김영하)도 봤다. 나의 여행 색깔은 아직까지는 ‘도장깨기‘이다.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인지 다른 사람이 가보았다고 하는 곳을 가보면서 과연 갔다온 사람들이 평가한 내용과 동일한지(?) 내 눈으로 확인해보겠다는(이 시점에서 베뢰아 사람들이 생각나는 건...) 마음인 것 같다. 주로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데 과장된 곳도 있고, 갈 만한 곳이었던 곳도 있었다. 나는 주로 (레일바이크, 유람선 같은) 무언가를 타면서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건 아마 여행의 목적이 ‘탈출‘(혹은 ‘일탈‘)에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내가 학교를 갑갑하게 여긴다는 방증일까.
하루키가 이탈리아를 매우 안 좋게 얘기했지만, 이탈리아는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신랑이 결혼 전에 가려다 안 간 곳이어서이기 때문이다. 신랑이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던 터라 친퀘첸토, 첸토벤티세이만 듣고도 500, 126이라는 것을 알아서 깜짝 놀랐다(물론 그 전에도 ‘팬텀싱어‘ 들으면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가 나오면 무슨 뜻인지 척척 말해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불편하겠지만, 언제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기독교인의 삶을 나그네의 삶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를 본향으로 삼고,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산다고는 하는데 사실상 안 그런 사람들도 많고, 나도 하나님 나라를 본향으로 살고 있나 싶을 때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객으로서 산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5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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