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책, 오 파란 이야기 19
황선애 지음, 모차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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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비밀의 책, 오](황선애, 위즈덤하우스)

책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자가 적혀 있다. 지네 오(蜈)다. 책 제목에서 ‘오‘는 감탄사가 아니라, 지네를 뜻하는 말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네에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청소년기에 내가 살던 시골에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 살았던 시골 집에서 지네가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지네는 닭과 천적이지만 집에서 닭을 키우지 않으니 천적이라고는 없고, 지네가 출몰하면 나는 밟아 죽이지를 못해서 바퀴벌레 약을 뿌리는 게 다였다. 엄마도 시골에서 자라서 지네의 습성을 잘 아시고 있었는데, 지네가 나올 때마다 한두 마디씩 말해주셔서 지네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지네는 축축한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밤나무나 대나무가 많은 곳에 산다. 또, 항상 쌍으로 다닌다. 한 마리가 출몰하면 곧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난다.-이건 실제로 경험했다. 시골에 있는 원룸에 살 때였는데, 방충망만 열어두었는데도 지네가 방에서 나타나서 기겁한 적이 있었다. 아빠를 불러 그 지네를 잡았지만, 엄마가 지네는 항상 쌍으로 다닌다고 했던 그 말을 기억하고 또 나타나지나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지네가 나타나서 소름 돋았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기억이다.
지네는 가을에 독이 가장 세고, 지네에게 물리면 이빨 자국이 남는다. 실제로 본 적도 있다. 내 동생은 자다가 물리기도 했고. 지네 물린 곳에 소변을 담그면 붓기가 가라앉는다고 해서 급한 대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나는 귀가 예민한 편인데, 지네가 그 많은 발로 기어다니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귀가 예민하기로서니 지네가 기어다니는 소리까지 들을 건 뭔가. 이 책을 보면서 지네에 대한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지네에 대한 책인 걸 알았더라면 보겠다고 선택했을까.

선오는 천 년 묵은 지네를 우연히 본다. 선오나 지네나 서로 놀랐다. 지네는 서책을 잃어버리고, 서책을 열 수 있는 열쇠도 잃어버렸다. 지네는 서책을 찾기 위해 오승천이라는 이름으로 선오 반에 전학 온 여학생 행세를 하며 선오 주변을 맴돈다.
선오는 천 년 묵은 구렁이도 우연히 본다. 꾀죄죄한 구씨 아저씨로 변신하여 동정심을 산다. 그리고 지네의 서책을 뺏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지네와 구렁이는 천 년 전부터 앙숙이었다. 구렁이는 잔꾀를 부려 지네의 서책을 빼앗아 승천할 궁리를 했다. 지네는 자신과 서책을 보호하기 위해 구렁이를 물었고, 서로를 모함하고 해를 끼친 대가로 둘 다 천 년 동안 저주를 받아야 했다. 지네를 싫어하긴 하지만 너무 억울한 일이다. 인간 세계에서도 정당방위는 허용되는 건데, 지네도 나름의 정당방위였지 않았나.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안 되는 것이라 말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한 대라도 때리면 쌍방폭행이 된다는 말도 떠오른다. 내가 맞고 있어도, 피해를 받아도, 계속 참고 인내해야 하나? 죽음에 이르더라도? 기다리는 마음은, 인내하는 마음은 어디까지여야할까.

🏷부모님을 기다리는 이우일의 몇 달, 가족이 함께 지내기를 기다렸던 나의 몇 년, 그리고 하늘을 오르길 기다린 오승천의 천 년. 시간이 짧다고 해서 기다리는 마음이 작은 건 아닐 거다. 외로운 마음 또한.(93쪽)

선오는 승천이의 책을 구해주는 과정에서 친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법,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법 등을 배운다.

🏷나는 오승천을 멍하니 바라봤다. 긴 시간 동안 운명을 받아들이며 따랐지만, 이제는 오직 자기를 위해 선택하겠다고 한다.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이혼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끼어들 수도, 말릴 수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95쪽)

🏷˝비를 맞아도 해를 향해 나아가기를 선택한다면, 그렇게 꾸준히 나아가기를 선택한다면 언젠가 비는 그쳐 있을 것이다.˝(101쪽)

삶의 사소한 갈림길에서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위즈덤하우스 ‘나는 교사다 4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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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문이 열리면 마음이 자라는 나무 44
범유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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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도서관 문이 열리면](범유진, 푸른숲주니어)
-스포일러 주의

이 책은 네 명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민을 도서관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이다. 말, 친구관계, 정체성, 가족(특히 형제).

‘소문을 낳는 아메바‘는 은솔이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은솔이는 다른 사람의 고민을 쉽게 얘기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점차 바뀌었다고 했다. 사서 선생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소문을 내는 사람-미스 마플이 있다며, 은솔이에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움직이는 손가락]을 추천해 주셨다.

🏷˝......종이접기랑 소문이 무슨 상관이에요?˝
˝종이를 접을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접어 보는 상상을 했대. 그렇게 계속 접어서 남는 말만 하기로 정한 거야.˝
˝남는 말만 한다.˝
˝미스 마플이 뜨개질하는 것도 같은 이유는 아닐까? 뜨개질을 하면서 할 말을 정리하는 거야. 하면 안 되는 말은 뜨개질을 하면서 코와 코 사이에 묻어 버리는 거지. 그러니깐 미스 마플의 수다는 좋은 수다가 된 거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수다.˝(35쪽)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도 은솔이처럼 소문을 무척 좋아한다. 나도 소문을 함부로 이야기한 적은 없나, 생각해본다. 말은 실수하기 쉬워서 ‘침묵은 금‘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신중하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움직이는 손가락]에 답이 있을 것 같다. 말이 안 될 것 같은, ‘좋은 수다‘가 있을 수 있구나, ‘다른 사람을 위한 소문‘이 있을 수 있구나(‘다른 사람을 위한‘이라는 결정 주체가 본인이 되면 안 될 것 같지만.). 책을 읽고 싶어졌다.

수빈이는 ‘혼자 있을 곳이 필요‘하다. 원래의 성격은 그렇지 않지만,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잘 지내보고자 자신의 성격을 바꾸어 나갔다. 가벼운 것처럼 보이는 아이로. 그러나 그 모습은 수빈이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고, 자기 옷을 입은 게 아닌 것처럼 불편했다. 수빈이에게 다가온 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다. 수빈이는 모모에게서 친구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힘을 얻는다.

🏷모모가 원형 극장을 좋아하는 만큼, 나만의 휴식처인 이 도서관이 좋았다. 하지만 모모의 원형 극장이 정말 멋진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건, 모모를 찾아오는 친구들 때문이었다.(80쪽)

‘네가 되고 싶은 나‘의 단아는 🏷‘아영이가 좋다.‘(82쪽) 아영이의 모든 것을 따라 한다.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단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친구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할까봐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을 싫어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영이를 선망한다. 그러나 아영이는 단아에게 부담스럽다고 하고 단아는 충격을 받는다. 단아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도서관에 간다. 청소년 시기에는 친구들이 삶의 기준이 되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친구들과 멀어질까 두려워할 때도 있다(<인사이드 아웃2>에도 이런 현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단아는 도서관에서 만난 선후배를 통해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되고, 사서 선생님은 단아에게 성인도 (유치할 것 같은) 동화 [마녀 위니의 겨울]을 본다며 단아에게추천해 준다.
삶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래서 자신을 싫어한다면 단아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X의 비밀‘의 주인공은 범준이다. 범준이는 연극을 하고 싶지만 집에서는 반대한다. 게다가 집안 사정마저 좋지 않다. 형이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고, 부모님은 형만 챙긴다. 범준이는 부모님의 사랑, 인정을 받지 못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도서관 책을 훼손한다. 그런 범준이에게 사서 선생님은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추천해주신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려 있다. 그래서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책에 마음이 닫힌 사람이 많지만, 사람에 경계하는 만큼 책에도 경계하는 것 같지만, 책에게만큼은 경계를 풀어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숲주니어 @psoopjr

🔎푸른숲주니어에서 가제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202505 #2025독서기록 #25독서기록 #독서기록 #서평 #북리뷰 #책리뷰 #청소년소설 #도서관문이열리면 #범유진 #푸른숲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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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갯벌의 다정한 친구가 되기로 했다 - 35년 동안 갯벌에서 만난 생물과 사람들 최고의 선생님 2
김준 지음, 맹하나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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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갯벌의 다정한 친구가 되기로 했다](김준, 위즈덤하우스)
-부제: 35년 동안 갯벌에서 만난 생물과 사람들

어릴 때는 갯벌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자연히 나 아닌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평생 갯벌에 관심을 안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교육과정이 바뀌기 전 3학년 국어 교과서에 갯벌이 나왔다. 작년에 3학년 담임을 하면서 갯벌에 사는 생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보여주었는데, 갯벌에 관심 있는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을 소개해줘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펼치면 차례 옆에 우리나라 갯벌의 위치가 잘 나와 있다(사진 참고).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어떤 갯벌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기회가 되면 아이와 같이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제일 신기했던 것은, 갯벌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과, 갯벌에 사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집 모양이 다르고 구멍의 크기나 길이가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구멍만 보고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 알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갯벌을 탐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렁이들은 땅에서나 갯벌에서나 정화시키는 활동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갯벌에 사는 생물을 잡아먹는 새들의 부리 모양을 본떠 만든 도구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갯벌을 매립해 새만금 지대와 인천국제공항을 지은 사례들을 보며, 인간의 편의를 위해 지어지는 시설들이 생기는 건 좋지만 거기 사는 동식물들은 다 어디로 가나, 하는 생각도 하고, 글을 쓰는 지금은 [형제의 숲]을 읽을 때 집을 크게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 동물이 도망가게 만든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갯벌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관심이 있으면 보이는 것들이 진짜 많다.

🔎위즈덤하우스 ‘나는 교사다 4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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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끝동의 비밀 - 약초꾼 소년, 폐위된 왕후를 만나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45
지혜진 지음 / 다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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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끝동의 비밀](지혜진, 다른)
-스포일러 주의

이 책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인물들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매료되었다. 밑줄을 얼마나 그었던지.

표지에 나오는 인물은 단종(노산군)의 아내인 정순왕후다. 책에서는 군부인으로 나온다. 자줏빛 끝동에 수놓인 소나무와 자줏빛 수건에 수놓인 씨앗이 눈에 띈다.

주인공 단오는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다. 치료가 되지 않는 시기에 살아, ‘짓무르고 곪아가는‘ 상태에 있었다.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 아버지는 아무에게나 돈을 빌렸고, 노름을 했으며, 그나마 일을 하게 해주는 막수 아저씨네 밑에서 일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단오는 늘 아버지가 친 사고 수습에 앞장서야 했다. 단오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사고 친 대가가 퉁쳐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단오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버지를 불러들인 혜민원 관리는 짓무르고 곪아 가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시절 집에 불이 나 이리 되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 아픔은 왜 누군가의 핑계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모욕을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그 불이 내 목숨을 앗아갔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45쪽)

단오는 어릴 때의 비밀을 알고 더 비참해진다. 아버지는 집에 불을 질렀고, 어머니는 불길에 휩싸인 단오를 구하지 않았다. 단오를 구한 건 막수 아저씨였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단오는 내 생각보다 더 큰 아픔을 느꼈다.

🏷좁은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마주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내가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22쪽)

얼굴 때문에 일하기도 쉽지 않지만, 막수 아저씨의 딸 영초와 친하게 지내며 약초꾼이 되어간다. 막수 아저씨는 단종 복위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자연히 영초도 단종을 복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단종(노산군)은 죽임을 당하고, 군부인은 동네 사람들에게마저 희롱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복위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먼저 가신 노산군뿐만 아니라 군부인께서도 조금은 더 편안하게 지내셨을 수도 있잖아.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더라도 결국 누군가를 망쳐 놓았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을 수도 있어.˝
옳은 일은 그저 옳다고 믿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옳다고 믿고 행한 일들은 나에겐 옳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단오 너, 설마 왕위를 빼앗은 사람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
이건 왕권이라든지, 왕위의 정통성이라든지 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가난한 집 어딘가에서 일어난 비극도 이리 버거운데, 어린 왕이 감당해야 했던 비극은 도대체 얼마나 벅차고 무거웠을까?(39쪽)

이 시대의 수많은 ‘옳은 일은 그저 옳다고 믿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부분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치일 것이다. 정의는 행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과 옳고 그름이 섞여 있다. 행복한 것이 곧 옳은 것일까.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모두 정당화되거나,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그 도움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종은 도움을 받았으나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감정이 과연 순수하고 맑기만 할까?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저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마음은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지금까지 사람들의 숱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으며 자란 나조차도 정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38쪽)

단오의 아버지는 또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막수 아버지와 친구이면서 적으로 돌아선 청파다. 청파는 단오에게 일거리를 주었고, 군부인이 만든 자줏빛 천을 몰래 가져오면 아버지가 진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청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독서토론 질문으로 좋은 것 같다.

🏷˝자. 여기 옳은 일이 있고, 꼭 필요한 일이 있다. 딱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너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92쪽)

청파의 말을 들어보면, 청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너도 잘 알 것이다. 나는 본디 천한 출신이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를 얻기까지 많은 고비와 위험이 있었다. 나는 동생이 아파 의원에 가야 했고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돈을 빌렸는데 갚질 못했지. 돈을 벌려면 내 양심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두들겨 맞아 한쪽 눈을 못 쓰게 됐고, 내 동생도 목숨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난 후 옳고 그름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필요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93쪽)

단오는 멋졌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얻게 되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고 필요한 것을 얻고 싶었다. 옳지 못한 방법을 배워 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117쪽) 요즘은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는 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을 사람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면 누군가가 곤경에 빠진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오는 군부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 것 같다. 🏷˝단오야, 누군가의 수단이 되어 살면 언젠가 세상 모두를 미워하게 된단다. 너는 네 자신의 씨앗이 되어야 해. 너의 싹을 스스로 틔워야 해.˝(118쪽)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씨앗의 모습처럼, 불행의 씨앗을 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또다른 불행의 씨앗이었다. 살아남은 나를 보는 일이 어머니에게 그랬을 것이고, 위험에 빠진 영초와 군부인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그랬다. 소중한 누군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했다. 변덕스러운 계절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끝내 싹을 피워 내는 씨앗처럼 그래야 했다.(143쪽) 그리고 결국, 모두를 지켜낸다. 🏷부모님은 나를 지켜 주지 못했어도 나는 부모님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가끔은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동생들이지만, 그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영초 역시 나에게 가족과도 같은 아이였다. 그러니 나도 영초를 지켜야 했다.(120쪽) 너무 가슴 아픈 말이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어도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그 말이.

단오가 이렇게 단단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씨앗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씨앗의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갔다. 홍화 씨앗을 심으면 홍화가 되고, 지초 씨앗을 심으면 지초가 된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씨앗은 자기 운명을 따라 자랐다. 그 작은 씨앗도 그럴진대, 나 역시 어떤 이유가 있어 이 땅에 발을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진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81쪽)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까지 이어진 것 같다.

단오는 흔들렸지만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심지를 굳게 세웠다. 나에게도 그 단단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뿌리가 뽑힐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줏빛 끝동의 비밀]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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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하루 머나먼 길 뒹굴며 읽는 책 51
게리 D. 슈미트 지음, 유진 옐친 그림, 장미란 옮김 / 다산기획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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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하루 머나먼 길](게리 D. 슈미트, 엘리자베스 스티크니/장미란 옮김, 다산기획)

🏷한줄요약: 좁쌀 한 톨

슈미트와 엘리자베스 스티크니는 부부다. 엘리자베스 스티크니가 슈미트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고 한다.

올해는 슈미트 책을 다 읽을 계획을 갖고 있다. [수요일의 전쟁]을 매우 감명깊게 읽었고, [너의 궤도를 맴돌며]에서 살짝 실망했고, 이번 책은 우리나라 전래동화 ‘좁쌀 한 톨‘이 생각났다.

이 시대는 물물교환의 시대인 것 같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에게 우유를 줄 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주머니칼을 들고 암소를 구하기 위해 떠난다. 아빠는 아들과 길을 나서면서 ˝날은 짧고 길은 멀단다.˝(7쪽)라고 말한다. 아들에게 미리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미리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와 다니면서 ˝저 물병과 이 책을 교환하는 것이 공정한 거래 같으냐?˝(25쪽) 이런 식으로 거래가 공정한지 아이에게 물어본다. 앞으로 아이가 혼자서 물물교환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모든 거래에 ˝좋은 거래인 것 같아요.˝(10쪽)라고 말하며, 암소와 바꿔지지 않을 때마다 가끔씩 ‘어머니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갈색 눈의 암소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10쪽)라는 말로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암소를 얻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아이는 양철 등 두 개, 파란색 시집, 커다란 물병, 메리노 양, 금 회중시계, 조랑말과 마차를 거쳐 결국 암소와 양치기 강아지를 얻게 된다. 주머니칼이 암소로 변하는 데 일곱 번의 물물교환을 거치는데, 주머니칼이 암소로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암소를 얻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농부와 아들을 잘 돌보아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간절하게 바라면 얻게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내가 너무 낮은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높은 목표를 갖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목표를 바라고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좋아해서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경지에 닿는 게 나은가 싶고. 둘 다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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