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힘 - 끊임없는 자극이 만드는 극적인 성장, 개정판
켈리 맥고니걸 지음, 신예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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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힘](켈리 맥고니걸/신예경 옮김, 21세기북스)

‘스트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비 오는 날의 사람‘ 그림이다. 비 오는 날의 사람 그림은 자신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헤쳐나가기 위한 자원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심리검사이다. 요즘은 잘 안 그리지만, 예전엔 종종 그리고 놀았다. 또, 지금껏 살아오면서 스트레스를 겪을 때마다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크게 반응하는 것 같달까. 스트레스를 잘 못 견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에 잘 대응하고 싶어서 이 책을 샀던 것 같다.
‘들어가며‘에서부터 생각지 못한 말을 꺼낸다. ‘우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결국 인생이 의미 있으려면 반드시 스트레스를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20쪽)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학기말, 학년말 평어 쓰는 시간을 매우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평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겠다. 왜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1부에서 글쓴이는 스트레스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위해 많은 사례를 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트레스는 독이 아니라 약이라는 것이다.
나는 스트레스 받을 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몸이 굳는다. 그 이상 몸의 반응, 마음의 반응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내가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몸의 반응은 무시한다. ‘여러분의 몸은 더 많은 에너지를 내려고 했는가? 그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몸에서 어떤 감각을 느꼈는가? 사회적 접촉을 구하거나 인맥을 쌓으려고 했는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다는 충동은 어떤 기분인가? 행동하려는 동기가 생겼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대상을 보호하거나 지키고 싶은 의욕이 솟았는가? 그 동기나 의욕은 어떻게 표현됐는가? 어떤 사건이 끝난 뒤에 마음속으로 그것을 다시 떠올려보거나 누군가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가?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은 어떤 기분이 드는가?‘(98쪽)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거의 없다. ‘빨리 이 상황이 지나갔으면‘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빨리 무마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과정을 다 생략한다. 스트레스를 여유 있게 바라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롭다고 생각하지만 고도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 즉 사랑과 건강 그리고 삶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오는 듯하다.‘(108쪽) 그리고 이 소제목이 등장한다. ‘스트레스가 없으면 목표도 없다.‘(108쪽) ‘그 일‘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중요한 까닭은 뭘까? 다음 스트레스 상황이 온다면 글을 적어봐야겠다. ‘만약 가치가 있는 동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뭔가가 우리 인생에 존재한다면, 잠시 시간을 내서 이 역할, 관계, 활동, 또는 목적이 자신에게 왜 그토록 중요한지 글로 적어보자. 그리고 이 가치의 원천을 갑자기 잃어버린다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 성싶은지도 적어보기 바란다. 그런 상실을 겪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잃어버린 것을 자신의 인생으로 다시 돌려놓고 싶어지겠는가?‘(112쪽) 이렇게 글을 써봐야 하는 까닭은 ‘사람들은 가치관과 면밀히 연결됐을 때 자신의 노력과 타인의 도움을 통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크‘(117쪽)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긍정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커지고 지연과 부정 같은 회피성 대응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적다.‘(117쪽) 118-119쪽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여러 가지 가치들이 나열되어 있고, 이 가치들 중 세 가지를 선택하고 왜 선택했는지 설명하라고 제안한다. 매우 흥미있고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세 가지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선택하는 가치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실제 스트레스 상황에 닥쳤을 때 선택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눈여겨보고 이 책의 가치들과 비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는 주로 회피성 전략을 취하는데, 135쪽에 스트레스를 회피한 대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질문들이 스트레스를 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이나 경험, 활동, 역할 또는 기타 기회들을 너무 스트레스를 준다거나 줄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자신의 삶에서 차단했는가?‘(나는 대학 2학년 때 전과하지 않았던 게 이 이유였다.), ‘삶의 스트레스와 관계 있는 생각과 느낌을 피하거나 제거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들고 싶을 때 어떤 활동이나 도피처로 눈을 돌리는가?‘, ‘스트레스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있다면, 여러분이 실행하거나 경험하거나 수용하거나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있는가?‘의 세 가지 질문과 부수적 질문이 있다.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성장이 어려운 것 같다.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노력의 가장 큰 문제는 스트레스가 인생과 자신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꿔버리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인생에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것은 무엇이든 문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137쪽) 이 글에서는 이 말이 생각났다. ‘하고 싶으면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으면 핑계가 보인다.‘
2부에서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세 장에 걸쳐서 여섯 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첫째, 스트레스 받을 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을 흥분, 설렘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신기하게도 생각이 바뀌면 그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한 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두려움, 스트레스, 불안감이 사라질 때까지 반드시 기다릴 필요는 없다.‘(192쪽) 둘째, ‘위압감이 느껴질 때면 일상적인 책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줄 방법을 찾아보자.‘(203쪽) 셋째, ‘자기 중심적 목표를 공익적 목표로 전환시킨다.‘(211쪽) 넷째, ‘나의 고통은 모든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다.‘(239쪽) 이 방법은 많이 사용했던 방법인데, [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다섯째, 역경을 자원으로 전환시킨다.(272쪽) ‘즉,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된 장점이나 혜택은 스트레스성 사건이나 외상성 사건 그 자체로 인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비롯됐다. 역경을 통해 깨어난 정신력과 고통을 의미로 전환시키는 인간의 타고난 능력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인다˝라는 말 속에는 고통스럽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조차 이 능력을 신뢰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255쪽) 여섯째, ‘역경의 밝은 이면을 바라본다.‘(288쪽) ‘긍정적인 면을 본다고 해서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괴로움과 희망 사이에 균형을 잡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286쪽)

나의 기도는 이렇게 변해왔다.
1단계. 힘든 길을 가지 않게 해주세요.
2단계. 힘든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3단계. 힘든 길을 잘 통과하게 해주세요.
4단계는 아마도 ‘힘든 길을 기쁘게 가게 해주세요.‘가 될 것 같다. 힘든 길을 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어차피 힘든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걸을 수 있기만을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도전에는 어두운 밤들이 계속해서 따라올 것이다.‘(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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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사는 이유
에버하르트 아놀드 지음, 김순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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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사는 이유](에버하르트 아놀드 글/토머스 머튼 해설/김순현 옮김, 비아토르)

성서교육회 독서모임에서 권일한선생님 책 다섯 권을 읽고 권일한선생님 서재(?!) ‘책뜰안애‘에 방문했다. 이른바 ‘작가와의 만남‘을 했다. 그리고 책뜰안애에서 이 책을 받아왔다. 특별히(?) 권해주시는 책 네 권 중에 이 책이 와닿았던 것은, 요즘 내가 공동체에 대해 생각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동체 생활을 한다. 제일 처음 접하는 공동체인 가정, 그리고 학교, 직장, 교회까지. 크게 보면 사회, 국가도 포함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진정한 공동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교회와 믿는 자들의 가정이 진정한 공동체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미 그 역할을 잃은지 오래다. 교회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라고 정의한다면 오늘날의 한국교회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과연 몇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공동체에 대한 내 기준이 너무 높을 수도 있다. 이 땅에서의 완전한 공동체는 없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같은 신앙을 고백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계속 의문이 든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적 용어로는 ‘섬김‘, ‘봉사‘라고도 한다. 섬김, 봉사, 희생은 자의적이기도, 타의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섬김과 희생은 보이는 것으로는 구원의 열매인지 자기의의 발로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교회에서의 봉사는 쉽게 구원의 열매로 둔갑한다.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테레사 수녀, 간디, 마틴 루터킹. 이 사람들은 다 구원의 열매로써 자기희생을 보여준 사람들인가? 끊임없이 생각해왔던 질문이었고,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의문이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각 부마다 쓴 사람이 다르다. 머리글부터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이자 사제인 배질 페닝턴이 썼다. 그리고 본문은 에버하르트의 아내인 에미 아놀드가 쓴 에버하르트의 생애, 에버하르트가 쓴 ‘공동체로 사는 이유‘, 토머스 머튼이 에버하르트에의 글에 대해 쓴 해설, 공동체 모습이 사진으로 실려 있는 후기로 나뉘어져 있다.
이 책의 책날개에서 옮긴 이에 대한 설명을 본 순간,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와 오순절, 순복음, 기장, 감리와는 잘 맞지 않아서였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방향의 책만 읽으면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맥락은 본 회퍼, 판넨베르크, [인간발달]을 쓴 로더, 필립 얀시, 루이스와 비슷하다. 이 글에도 나와 있지만 아나뱁티스트에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는 아나뱁티스트에 대해 잘 모른다. 아나뱁티스트 출신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나뱁티스트가 제세례파의 영향을 받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 재세례파는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깐(?) 적이 있다.
이 사람들과 내가 어떤 점에서 다른 색깔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 같다. ‘갈등 한가운데서 우리가 던져야 할 물음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가?˝이다. ˝믿음이 첫째이고, 옳은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18쪽) 페닝턴이 머리글에서 말한 이 문장에는 공감을 했다. 다만, ˝우리가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믿음은 공동체에서 검증됩니다. 누가 옳으냐를 검증하기보다는 우리가 믿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입니다.‘(115쪽) 머튼이 쓴 해설에서 내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좀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우리가 믿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믿는가?‘가 중요하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가 중요하다. 이 책은 ‘행위로 믿음을 증명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믿음을 통해서 행하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위로 믿음을 증명하는 주체가 사람이 될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그렇다. 물론 책에서 ‘공동체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100쪽)라고 말하고는 있다. 어쨌든, 이 분들의 신앙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행위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하나님을 절대 선으로 여기고, 선을 행하는 데 중점이 있는 듯하다. ˝선의 궁극적 신비에 대한 믿음,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114쪽) 선의 궁극적 신비가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루이스가 생각났다. 나니아연대기 7권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 ‘선의 궁극적 신비‘로 묘사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의 선과 하나님의 선이 같지 않다는 점에서(세상의 선이 하나님께는 선이 아닐 수 있다.), 무조건 선을 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는 한, 그리스도인은 협력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병사, 사형 집행인, 또는 경찰청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33쪽) 에버하르트는 비폭력주의자임이 틀림없다. 하나님나라는 비폭력이 중심인 나라인가?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분들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하나님나라에 가까운 것 같다.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는 참으로 중대하다... (중략)... 우리는 그날 자체, 도래할 그날, 해방하여 일치시키는 그날이 오기를 열렬히 고대하며 기다려야 한다.‘(52쪽)
선에 대해서만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성령님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랐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우리를 찾아온 힘이었습니다.‘(37쪽), ‘그러나 우리에게 자금이 꼭 필요할 때면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49쪽), ‘수고하는 사랑은 사랑이 있는 수고처럼 성령의 일이다. 사랑의 수고는 성령에서 비롯된다.‘(63쪽) 성령님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요즘 공부하고 있는 교리문답서를 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과연 사랑의 수고는 성령에서 비롯되는가?
왠지 서평에서 에버하르트의 공동체에 대해 헤집어놓은 느낌이다. 신앙 색깔이 다른 부분이 눈에 보여서일 것이다. 신앙 색깔이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렇게 헤집는 게 아닐 텐데, 그릇이 작은 게 여실히 드러난다.
개혁신앙의 단점(?)이 신앙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일 테다. 물론, 실제 개혁신앙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개혁신앙인으로 사는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성경 해석을 위해 적용된 교리는 삶의 구체적인 지침이 되기‘([이것이 개혁신앙이다] 79쪽) 때문이다. 바라건대, 에버하르트가 자신의 신앙으로 공동체를 이룬 것처럼 개혁신앙인으로 살면서 공동체를 잘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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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 : 자꾸 미루는 버릇을 이기는 7단계 훈련법
스티브 스콧 지음, 신예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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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스티브 스콧/신예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요즘 계속 내가 게으르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도 게을렀다. 책 제목과 연관지어 말하자면 나는 이미 게으름이 습관으로 자리잡은 사람이다. 글로 보기에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행합일이 안 되는 사람이다. 요즘 아는 것과 선택하는 것(행동하는 것)이 다른 것에 대해 새삼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나는 자기계발서 사는 것을 싫어한다. 동화나 소설류를 사는 것보다 더 돈 아깝다고 생각하는 게 자기계발서를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행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서 시작에 대한 책을 볼까 했는데 근본 원인은 아무래도 게으름 같았다. 그래서 결국은 게으름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는 교과서적인 말만 쭉 써놓은 데 비해 이 책은 방법적인 면을 적어놓았다는 점에 끌렸다. 교과서적인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겉만 번지르르한 말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권하는 제일 처음 할 일은 내가 일을 미루는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다. 제일 처음 챕터에 일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다 내 얘기 같았다. 완벽주의자라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아서,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주의를 빼앗는 것들이 많아서, 시간이 늘 부족해서, 진실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즉각적인 보상을 얻으려고 해서, 일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라는 이유인데, 내가 하나라도 안 썼던 이유들이 없다. 특히 요즘은 즉각적인 보상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꽤 커져서(요즘 유행하는 욜로도 즉각적인 보상의 한 유형인 것 같다.) 미래의 보상은 생각하지 않으려는, 마주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가 미래가 의미 없으니 현재의 자기 감정에 충실하라는 말은 아닐 텐데 요즘은 감정과 이성의 싸움에서 감정이 늘 승리하는 모양새다. ‘당장 편한 것부터 찾고 힘든 일을 미루려는 태도는, 달리 말해 감정적인 뇌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44쪽)
게으름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았으면, 그 다음은 할 일들을 다 펼쳐 놓는다. 스물다섯 가지 정도. 그리고 그 중에서 다섯 가지만 고른다. 나머지는 빈 시간에 끼워넣나? 놉. 스무 가지 일들은 하지 않는다. 이걸 이 책에서는 25-5 법칙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섯 가지를 고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핵심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이 책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에게 진정 중요한 가치관이 신앙이라면 신앙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실제 모습은 내 생각과는 다름을 볼 때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게으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3개월마다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목표는 3개월마다 세우되, 점검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 목표를 3개월마다 세우면서 평가도 같이 한다. 그러면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은 일들은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지혜롭게 거절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매번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둘 다 상생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주간계획표를 세우는 단계이다. 주간계획표를 세울 때에는 덩어리 시간으로 넣는다. 그리고 게으름이 파고들 틈을 메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천 의지일 텐데, 내가 요즘 의지가 많이 부족하다. 의지의 부족은 인간의 죄성일까(의지가 강한 것도 인간의 죄성과 상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금만 안 되면 안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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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공주처럼 사계절 저학년문고 67
이금이 지음, 고정순 그림 / 사계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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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공주처럼](이금이 글/고정순 그림, 사계절)

이번 달 독서모임 때 책놀이를 위해서 읽은 책이다. 두 번째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와 다르게 읽혔다. 처음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두 번째 읽을 때 보였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책놀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꼼꼼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이야기 흐름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금세 관뒀다.
˝...그런데 왜 평생 쓸 자기 이름을 다른 사람이 짓는 건지 모르겠어....˝(32쪽)라는 자두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아기가 자기의 이름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인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느낌이 매우 이상할 것 같다. 그동안 길러왔던 내 아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이야기의 분위기상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37쪽에 자두가 앵두를 데리고 할머니에게 가서 망나니 공주 이야기를 들으려는 장면이었다. 자두가 할머니한테 공주님 대신 앵두라고 호칭을 했음에도 할머니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간 게 이상했다. 존댓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앵두도,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이상했다.
43쪽에 털보 왕이 찔레 가시들 탓, 찔레 덤불 탓, 찔레 덤불 주인(작은 왕국) 탓을 하는 것을 보며 무조건 남 탓만 하는 사회를 생각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난의 화살을 그 책임자에게 돌린다. 나에게는 그 책임이 없다고 여기며.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잘해내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사회는 공정하지 않아서, 내가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잘하는 분야도 아닌 일을 세세하게 살피는 일은 힘들 것이다. 물론 그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남 탓이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홀쭉이 왕은 계속 울기만 하며 국정도 돌보지 않고 딸도 돌보지 않다가 딸이 결혼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웃는다. 홀쭉이 왕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내게는 내 감정보다 옳고 그름, 책임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잘 살피지 않아 슬픔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혹은, 내가 홀쭉이 왕만큼 큰 슬픔을 당한 적이 없기에 홀쭉이 왕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1위가 사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왜 홀쭉이 왕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왕이기 때문이겠지.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책놀이를 했는데, ‘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라고 하셨다. 이 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다움‘이 주제라고 생각했다. 나다움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인생‘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선생님이 이야기한 표현 중에서는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삽화에서 앵두는 흰바람을, 자두는 검은새를 타고 달린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자유를 누리는 것, 참 멋진 것 같다.
40이 다 되어가는 지금, 뭔가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조한 마음이 많다. 뭔가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와서 그 말이 내 생각인 양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진짜 나다움은 뭘까? 주관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는 것이 주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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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 - 재미있으면 절로 읽는다 행복한 독서교육 6
권일한 지음 / 행복한아침독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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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권일한, 행복한아침독서)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이다. 이 책은 권일한 선생님 책 중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다(권일한 선생님 책 중 안 읽은 책이 아직 세 권 있다. ). 제일 최근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곧 독서모임이 있기 때문에 독서모임 전에 서평을 끝내기 위해서 정리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글로 쓰려고 하니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책 읽는 것만큼이나 글 쓰는 것에도 곱씹는 시간이 필요한데 체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난 말은,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 도서관에 큰 글씨로 찍혀 있던 문구였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정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말도 생각이 났다. ‘내가 책을 읽고, 책이 나를 읽는다.‘ 이 책에서 나오는 책놀이가 ‘책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책이 나를 읽는 경험‘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책을 열고 깜짝 놀랐다. 여백의 미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ㅋㅋㅋㅋㅋㅋㅋ). 지금껏 읽었던 선생님의 책 쪽수와 비슷한 것 같은데, 여백의 미가 없다는 말은 활자가 그만큼 많다는 말! 적은 쪽수로 책값의 부담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시려는 것이었을까? 이 책이 나올 무렵 페이스북에서 이것과 관련한 글을 읽은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난다.
‘들어가며‘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글의 맨 마지막 문장, ‘아이가 책을 읽게 하려면 책으로 추억을 선물하라‘에서는 생떽쥐베리의 말이 생각났다.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이 책을 읽는 동안 ‘책으로 추억을 선물하라‘는 글은 잊은 채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책으로 함께 만드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앞부분을 펼쳐 이 글을 보니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 기억과 추억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글쓰기의 목적이 기억이라고 했는데,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쓴 글을 읽으며 기억을 추억한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제안하신 책놀이는 흥미 위주로 시작한다. 책 읽는 아이, 안 읽는 아이 모두가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들이 많았다. 책을 쌓아 길이를 재거나, 책의 무게를 어림하게 하는 놀이가 흥미로웠다. 나는 공간만 허락한다면 책을 길게 펼쳐 놓아 길이를 재는 것으로 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놀이가 깊어지려면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다. 같이 책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책과 친해지는 활동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내가 던진 발제문은 ‘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면?‘이었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은 ‘같이의 가치‘로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서모임 당일, 운영자님께서 발제문을 주셨다. ‘나를 나타내는 책‘. 뭘 골라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제일 처음 떠오른 책이 레이놀즈의 ‘점‘, 그리고 ‘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 ‘창가의 토토‘였다. 베티가, 토토가, 밉스가 나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베티의 미술 선생님, 토토의 교장선생님, 밉스를 좋아하는 윌을 염두에 두었나? 왜 이 책일까? 계속 고민했다. 이 책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베티나 밉스, 토토가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베티와 밉스, 토토가 들었던 말이 마음에 와닿아서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티에게 미술 선생님이 했던 말,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밉스에게 윌이 했던 말, ˝말해 줘, 밉스. 너희 버몬트 식구는 왜 그렇게 특별한지.˝(96쪽), 토토에게 교장선생님이 했던 말, ˝제자리에 두거라.˝(책이 친정에 있어서 정확하게 몇 쪽인지 잘 모르겠다.)
이 말의 공통점은 베티, 밉스, 토토가 엉뚱한(?) 행동을 해도 전혀 비난하지 않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따뜻한 말이 필요한가? 나에게 늘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 신랑이다.ㅋㅋㅋㅋㅋㅋ 그렇다면 내가 이 책들을 고른 이유는? ‘엉뚱한 따뜻함‘. 난 그 매력을 가지고 싶다. 독서모임 때는 이렇게 정리된 생각으로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중에서 가장 닮은 캐릭터를 꼽으라면 베티를 꼽겠다. 아직 전시를 열 만큼 점을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 저기 점을 찍어보고 있는 것 같다.
독서모임에서는 책의 내용을 나누기보다 책에 나온 책놀이를 직접 해보았다. 나를 나타내는 책을 소개하고, [망나니 공주처럼]을 가지고 책놀이를 했다. 핑퐁게임(등장인물, 왕자가 한 일), 내가 제시했던 발제문(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면?), 지워내기 빙고, 초성게임(책에 나오는 문장), 우리끼리 독서퀴즈를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른인 나도 재미있었는데 아이들은 더 재미있어 할 것 같다. 꼭 해보면 좋겠다(핑퐁게임은 얼마나 쪼잔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도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9월에 과학 단원평가 때 시험으로 평가하지 말고 책놀이처럼(과학책을 읽고 하는 놀이) 해볼까 싶기도 하다. 비문학도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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