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이라는 사회 - 어른들은 절대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
이세이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어린이라는 사회](이세이, 포레스트북스)
-[어린이라는 세계] 아님 주의
이 책은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모은 책이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도, 이세이 선생님이라서 글이 되고, 책이 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나도 이런 경험 있었는데, 이세이 선생님처럼 맛깔나게 잘 쓰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아무리 반박해도 내 말이 맞다‘(148쪽) 같은.). 내 친구 생각도 났다. 중학교 친구면서 대학교 친구인, 어쩌다 보니 초임지도 같았던 내 친구. 사이다 발언으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던 내 친구. 동학년도 여러 번 하며, (손에 꼽을 정도로) 시간이 있을 때 나는 피아노를 치고, 그 친구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민하며 슬쩍 내보였던 내 마음에, ˝음악은 애인으로 남겨 둬.˝라고 조언했던 친구. 지역을 옮기고, 내가 결혼을 하면서 연락이 뜸해졌는데, 아직도 이세이 선생님처럼 맛깔나는 말을 잘하는지, 사이다 같은 청량함으로 학교 공기를 물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친구야, 잘 지내고 있니.
지나간 아이들도 생각이 많이 났다. 십수 년 전 담임했던 한 아이는 중학교 올라가면서 경찰서를 가게 돼 무서운 마음에 나한테 전화했는데, 그 아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몇년도에 담임했다고 하면 추정할 것 같아서 연도는 생략.). 지금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만, 커서 못된 짓 하고 지내면서 내가 너네 담임이었단 이야기 절대 하지 말라고도 말했던 시절이었는데. T라고 말하시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감성이 있는 선생님이시라, 나처럼 직설적으로 언어를 구사하시진 않으신다. 나는 얼마나 사랑이 부족한 사람인지.
그러면 나는 다정하게 아이들의 어깨를 붙잡고, ˝잘봐. 저건 자기들보다 약한 잎을 잘 키우려고 스스로 찢어진 거란다˝ 하고 그들의 눈물겨운 희생을 일러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악문 후에, ˝너희들을 잘 가르치려다 선생님 목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지˝라고 말해줘야지.
사실, 이 말 하려고 키우는 거다.(79쪽)
교실에서 몬스테라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귀엽기도(?) 하고 이 말에 묻은 사랑을 알 것 같아서 짠하기도(?) 했다. 나는 직설적으로 1절만 했을 거다. 내가 너네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다는 것까지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요즘에는 아이들 마음에 깊이 박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가, 새로운 가정이 생겨서 그런가(1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는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너희들을 잘 가르치려다 선생님 목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지˝라는 말도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실제로는 이렇게 말씀 안 하셨을 것 같다.
고소와 결혼, 임신과 출산, 휴직에 복직을 연이어 치뤄내며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저 그런 선생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랑도 없고, 수업도 의존하고, 다른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거 좋아하고, 싫어하는 거 싫어하는. 그래도 하나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쥐어짜내며 하고 있는데, 해마다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놓고 그 다음해에 전년도 자료를 뒤져보며 ‘내가 이런 것까지 했어? 나름 열심히 했었네.‘ 하고 스스로 놀란다.
지금도 연락을 하는 아이들 중에 반 이상이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연락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유치원,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성인으로 훌쩍 커버린 아이들 중 일부는 아직도 나에 대해 미화된 기억을 갖고 있다. 한 번씩 그 아이들이 감사함을 표할 때마다, 지금 내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싶어 부끄러워진다. 혹은,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애들은 그날, 내가 좋은 선생님이라고 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엉킨 건 그 말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까지 좋은 선생님이었고, 언제부터 그저 그런 선생이 됐을까.
굳이 애써서 더 가르치고, 진심을 담아 잔소리하고, 서툴게 뭔가를 시도하고, 실패하고, 때론 야단치고 다독이면서 뭉텅이진 마음을 내어줬던 그 애들은 내 소멸된 열정의 목격자이자 증인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이 그렇게까지 쓸모없진 않았나 보다, 하고 나는 코를 훌쩍거리면서 남은 밤길을 마저 걸었다.(113쪽)
작년 이맘때의 사건과 몇 번의 집회 참석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냥 넘어갔던 일들도, 이제 할 말은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지냈다. 내가 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게 가신 것 같다는 죄책감이 옥죄었다. 그런데 막상 말하려고 보니 내가 그럴 깜냥이 안 된다. 학교는 여전히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언제나 그랬듯 피해를 본 자들은 말이 없고, 나는 피해를 준 자의 불만과 맞서 싸울 채비를 몇 겹씩이나 한다. 학교는 기어이 무너졌고, 그 파편에 얻어맞는 건 늘 평범한 아이들이다.
어쨌거나 학교는 ‘정상 영업‘ 중이다.(250쪽)
˝그런데 선생님, 책 읽는 걸 안 좋아하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무려 3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내셨네요.^^;˝ 라고 (혹시) 작가님 만나면 전달해 드려야지.
*참쌤스쿨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포레스트북스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