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떤 부분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교리가 되었고, 종종 어떤 종파의 식별 표지가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선포하는 것" (행 20:27)은 하나님의 모든 종이 져야 할 의무이다.
- P345

하나님은 우리가 실행할 수 없는 명령을 주신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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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아간다는 사실이 정말 위로가 된다.  - P335

우리 심령이 깨어질 때까지는 즉, 주님이우리를 마음대로 처분하시는 것을 우리가 원하고 기뻐할 때까지는 만족스럽고 실질적인 복종은 존재할 수 없다. - P335

하나님이 악의 모든 활동조차 예정하였다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시는 분임을 즉, 하나님의 의지가 죄의 활동을 결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 한계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37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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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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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신정철, 위즈덤하우스) 전자책 대여/종이책 264쪽(누적 2912쪽)

서평을 제대로 써보려고 이 책을 골랐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답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독서를 하면서 메모를 하면 서평을 잘 쓸 수 있다.‘라고. 실제로 글쓴이가 하는 방법 중 상당수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혹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을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독서 마인드맵‘이었다. 마인드맵을 독서와 접목시켜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글쓴이에게 새로 배웠다. 수업할 때 단원 도입이나 정리에서 마인드맵을 사용하지만(교과서에 그렇게 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내가 직접 한 적은 거의 없어서 솔직히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꼭 적용해보고 싶은 책이 있는데, 조나단 에드워드의 책이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마인드맵으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십자가와 구원] 이런 책들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고. 이미 지나간 책들이라 언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깊게 이해하여 삶에 바로 적용시키는 부분도 배울 부분이었다. 내가 하는 독서는 삶에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서. 그것은 책읽기의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생기는 궁금증 하나. 마인드맵도 만드는 사람마다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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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신민경 지음 / 책구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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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신민경, 책구름) 199쪽(누적 2648쪽)

이소현선생님 픽이다. 삶과 죽음이 한 걸음 차이밖에 안 나는 사람의 글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달 전 갑자기 일찍 갔던 아이도 생각이 났다. 사실,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없다. 오늘 살아있는 사람이 내일은 죽을 수 있다. 죽음 곁에 있는 글쓴이가 내일 살아 있고, 아무런 지병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내일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갑자기 죽는 죽음과 아파서 죽는 죽음이다. 갑자기 죽는 것은 아기가 마음에 걸려서, 그리고 아파서 죽는 것은 내가 워낙 유리멘탈이라서. 그 중 글쓴이는 아파서 죽음을 앞에 놓고 있다. 얼마나 엄청난 정신력으로 생활했을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죽음을 마주할 수 있어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직 마주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는다. 죽음과 마주할 용기를 얻고 싶어서.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성경만으로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앞부분은 울컥하는 지점이 많았다. 이 책 한 권을 내기까지 얼마나 고통 속에 있었어야 했을까.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었던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27쪽) 심지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쓰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게 하자. 거창하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려고 시간이랑 씨름하지 말고.‘(31쪽)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만 따져야 하는 시간이라니. 게다가, 할 수 있는 일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하다니. 가끔, 호호할머니가 되면 뛸 수 없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뛰곤(조깅에 가깝지만) 했다. 열정이 넘치더라도 나이와 건강에 따라 젊고 건강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대신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는 것도 좋지만, 지금 현재의 일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에서도 가치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의미 있는 일을 찾기보다, 현재를 의미 있게 살자.-의미 있는 일을 찾는다는 건, 지금 내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그러니 네가 곧 죽는다 하더라도, 애써 특별한 일을 할 게 아니라 그냥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172쪽) 나는 계속, 현재를 무시하며,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40쪽). 죽음을 앞에 둔 고통의 순간에(아파서 죽는 경우),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랄까, 그냥 고통 없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글쓴이가 읽었던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을 읽다가 말았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생명이 연장되도록 하는 것은 고통을 연장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내용이다. 인간에게 존엄성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전에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원하고 노력하고 기도했는데 이제 큰 바람이 없어졌다. 기적처럼 살게 해 달라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통증이 좀 덜했으면, 오늘 밤 잠결에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면, 하는 정도다.
이마저도 욕심일까?‘(67쪽)

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지금은 별로 없다. 힘든 일을 겪고 좌절하면 소망이 사라진다. 의욕이 없어지는 그 경험을 해보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현재 내 소망(?)은, ‘무너지지 않게 평범함이 지속되는 것‘이다. [전능자의 그늘]이었던가, 지옥을 두려워해서 전능자를 찾는 것 같은 소망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전 3:2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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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이계삼 해제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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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산다는 것](조너선 코졸/이계삼 해제/김명신 옮김, 양철북) 179쪽(누적 2449쪽)

성서교육회 독서모임 4기 첫 번째 책이다. (권일한선생님 픽으로) 내가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책을 선택한 사람이 발제를 해야 했다. 내가 발제한 내용은 1.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시오. 2.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챕터는 어디인가요? 3. 우리나라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였다. 이번 서평은 내 발제에 맞추어서 적어본다.
‘교육은 정치다.‘라고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글쓴이는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솔직히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정치꾼들은 이권만 챙기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 국가가 그렇듯이. 포스트모던이 우리 삶 속에 강하게 뿌리내린 이후로 더욱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기 바빠졌다는 생각이 든다(그냥 내 생각이다.).
교사는 정치와 종교에 중립을 지키라고 했던가. 그게 얼마나 멍청한 말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매우 잘 알겠다. 과연 중립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중립도 또 하나의 관점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립이 진보와 보수 둘 다 편드는 게 아니라는 말이라면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매우 진보적인 책이다. 같이 독서모임하는 선생님 중 한 분이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전교조 가입 필독 도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요약했을 정도이니.

교사는 ˝자, 네가 조금만 양보하면 분위기가 좀 더 좋아질 거야˝라는 식으로 솔직히 말하지 않고, 제3의 입장이 양 극단의 입장보다 더 진실하다-˝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절대적인 암시를 준다.(34쪽)

독서모임에서는 사실 ‘중립‘, ‘중도‘의 의미가 혼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교사에게는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 ‘중립‘이라는 말이어서인지 오히려 ‘중립‘에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중립‘의 길에 서야 할(서도 좋을?) 것이 있고, ‘중립‘의 길에 설 수 없는 것이 있는데 혼재할 수 없는 그 둘이 섞여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교사는 ‘중재‘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중재‘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니까, 갈등은 꼭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한쪽 편에 서는 게 불안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지. (우리나라처럼) 정답으로 교사가 된 사람들에게 둘 다 인정하는 것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가운데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안주하고자 하는 걸까.- 실제로 뒤에서 이계삼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교사들이 중립적인 척, 객관적인 척하면서 드러내는 완곡한 표현들은 인내와 절제의 상징이 아니라 문젯거리를 만들지 않고 그저 무난하게 이 상황을 넘어가려는, 무기력과 안일의 적극적인 표현일 뿐이다.‘(172쪽)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은 더 엉켰다. ‘모든 것에 대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43쪽) 정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담기 어려운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구절은 ‘‘중도‘는 진실하고 ‘양 극단‘은 불온하다?‘라는 세 번째 챕터에서 인용했다. 그 챕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더랬다. 중도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이 멍청하게 되는 데에는 국가의 교육과정도 한몫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업적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이다.‘(59쪽) 누구의 이야기일까? 헬렌 켈러다. 이 문장만 봐서 그녀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가의 입맛에 맞는 책을 선택한다. 그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을 멍청하다고 표현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개돼지‘가 되는 셈이다.-뒤에 나오는 이계삼선생님의 해제를 인용한다. ‘지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의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전략회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조너선 코졸은 지적한다. 그저 학교에 십수 년간 붙잡아놓고, 공부로써 경쟁시켜 놓으면 십수 년 뒤에는 그들의 기대대로 ‘낮은 사고력과 쓸데없는 애국심‘으로 치장한, 절대로 지배자에 맞서 단결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170쪽) 내가 읽어왔던 위인전은 위인들의 좋은 점만 부각했고, 교과서에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따지기에는, 내 정치적 수준이 아쉽다.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진보 정당(도 아닌 것 같지만)의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는 아주 정치적인 교사들은 학교에서 뚜렷한 이념을 펼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지만, 불행하게도 진정한 경쟁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외려 다른 견해에 대해 경멸적이고 공격적이고 불관용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급진적인 견해만을 강요하는 우를 범한다.‘(133쪽) 어느 쪽 편도 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건, 양쪽 모두 타 관점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글쓴이도 진보 쪽의 입장에서만 서술하고 있어서 ‘모든 교사를 ‘진보적‘으로 만들겠다는 건가?‘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꼭 그런 의도로 쓴 책은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학교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간다. 국가가 자신의 입맛대로 선정하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책의 내용을 우리나라 초등학교 현장에 적용한다면? 내가 발제했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스스로에게 적용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고작 학생들의 ‘아니오‘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도 어렵다. 교사로서 십수 년 동안 ‘아니오‘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하루 아침에 될 수는 없을 거다(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왜 그렇게 교육하고 싶은지도 더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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