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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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돌베개)


📚소감(feat. 독서모임)

이 책은 20세기에 일어난 일 중 중요한 사건을 몇 가지 정해서 서술한 책이다. 잘 모르는 분야가 나와서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대공황),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관련 역사는 거의 듣지 못해서(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반공' 시대를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신데다 무조건 '나쁜 것'(혹은 실패한 체제)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영원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체제를 알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오른쪽에 계신 분들은 20세기에 일어난 사건 중 어떤 사건을 중요한 사건으로 꼽을지 궁금하다. 이 작가님의 시선이 아닌 다른 관점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민족주의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세계 정세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에 따르면,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는 체제일 뿐이었다. 민족주의(민족해방운동)를 위해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를 채택했다. 그 과정에서 민중의 호응을 얻으면서, 그 체제의 독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인재가 국가의 체제를 결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맬컴 X는 매우 새로웠다. 누구나 마틴 루터 킹을 생각하지, 맬컴 X를 떠올리지는 않을 테니까. 맬컴 X가 있어서 마틴 루터 킹이 더 돋보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고르바초프에 대해 다시 봤다는 말에도 공감했다. 고르바초프가 자기 나라에서는 이루지 못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는 여러 모로 큰 도움을 주었다. 


제일 인상깊은 에피소드는 히틀러와 팔레스타인이었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가해자'가 됐다.' 어느 모로 보나 '똑같은 놈'이 된 상황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가혹한 행위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도 나왔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민족주의가 없는 것은 아니고, 비기독교인과 별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을 볼 때 그들이 강압적으로 나라를 세우는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에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지난 번 글에도 썼지만, 그 시대를 잘 드러내는 문학작품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아 있는 나날], [자기 앞의 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위대한 개츠비], [앵무새 죽이기], [파수꾼]을 떠올렸다. 요즘 [세피아빛 초상]을 읽으면서 칠레 역사를 조금이나마 엿보고 있는데, 역사와 연결된 다른 소설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사에 참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의 역사에 무지했고, 제3세계나 남미쪽 역사도 거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나 무지할 수가 있나 싶었다.


📚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일까?

과거의 어떤 특정 사건을 먼저 서술하고,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생기는 일련의 과정들을 서술하고 있어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책 제목을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발제

✔민중을 현혹시키는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민족주의의 영향력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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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 : 천로역정 - 포켓용
존 번연 지음,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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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읽은 천로역정, 애니메이션 천로역정]

지난번 글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줄글책 다 읽고 같이 쓰려다보니 늦었다.

<천로역정:천국을 찾아서> 애니메이션이 지금 상영 중이다.-6월 30일까지로 알고 있다.
2주 전쯤, 영화가 개봉하고 하루 뒤에 신랑이랑 보러 다녀왔다.
마침 교회 단체 이벤트에 당첨되어 예매권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생애 최초 이벤트 당첨!
지금에서야 후기를 쓰는 것은, 영화를 보며 몇 년 전에 읽은 <천로역정> 줄글책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줄글책 내용과 대조하며 비교해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어릴 때 만화책으로 <천로역정>을 읽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만화책이 원본을 살리기 위해 엄청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며 만화책 내용은 생각나는데, 줄글책 내용은 생각나지 않아 다시 줄글책을 읽게 되었다.

<천로역정> 줄글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영화 내용은 1부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데(내가 어릴 때 봤던 만화책도 1부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끝에 2부가 있음을 암시하는 듯한 문구가 나왔다.-‘To be continued‘
책에서 1부는 ‘크리스천‘의 순례길, 2부는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의 순례길을 다룬다.
그렇기에 다음 영화가 또 나온다면 2부를 만들게 될 건지 궁금해진다.

먼저 영화이기에 각색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도 원본을 살리려 노력을 많이 했고, 특히 앞부분에 각색된 부분은 나름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단지 전체 내용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 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크리스천‘이 등에 메고 있던 짐이 ‘죄‘라는 언급이 없었고, 죄짐이 십자가에서 해결이 되는데 십자가라는 말이 없이 단순히 이미지로만 처리되어 아쉬웠다.
안 그래도 요즘 교회에서 죄의 문제가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기에 조금 더 무게감 있게 다루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좁은문‘의 문지기가 너무 가볍게 보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석자의 집‘에서 ‘크리스천‘에게 보여주는 세 가지 장면이 나오는데, 줄글책에는 일곱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준 첫 번째 장면은 그 일곱 장면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다.
번역이 조금 다르기도 했고, 인물의 이름이 장소로 나오기도 했지만(예를 들면, ‘경계‘는 ‘아름다운 집‘ 주인이 아니라 문지기 이름이다.) 원글의 맥락을 흐트러뜨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줄글책을 읽다보니 <천로역정>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이야기의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특히, 순례길에서 대화하는 내용), 이런 부분은 어떻게 전달해야 기억에 오래 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천로역정>은 영화이니만큼 전체적인 흐름을 더 강조했던 것 같다.

2부의 내용을 읽다보니 존 번연이 얼마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해석자의 집‘에서 나타나는 비유들도 그렇지만(설교 예화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개인적 생각이 있다.) ‘크리스천‘의 아들 중 한 명이 ‘아름다운 집‘에서 자매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자연, 즉 일반계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데 감동을 받았고,
성도의 교제는 <천로역정>에 나오는 대화들처럼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고 교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2부 끝에서 ‘크리스티아나‘가 하나님이 보내신 우체부로부터 편지를 받고 천국에 갈 준비를 할 때 괜히 소름이 돋았다.
와,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리고 순례길의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어려움이나 나의 어려움을 다를 바 없이 바라보는 관점을 지니고 있는 내가 과연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줄글책을 공부(설명)하는 책이 있다고 하던데 그 책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1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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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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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feat. 고질독 23기)
-스포일러 주의

📚소감
너무 너무 충격적이라 소감 먼저 남긴다. 다른 분 글에 의하면, 이 책이 ‘살인자들의 바이블‘이라고 한다. 이 책 주인공 홀든은 은둔형 외톨이인데 결말을 정신과에서 맞이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나..?
어린이를 이상화하고, 자기 또래와 어른들을 가식적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자기 의도대로만 생각하는 게, (자신을 찾아가는) 철없는 남자아이의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오싹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아, 이건 어린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이상화하고 있다. 어린이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기준을 이상화한다.
‘살인자들의 바이블‘ 한 마디에 톡방이 들썩들썩한다. 어떻게 보면 [아몬드] 주인공 같기도 하고.. [이방인]의 뫼르소 같기도 하고.. 공감이라는 걸 전혀 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 무섭다.
그 흔한 작품해설도 없다. 독자의 의도대로 해석하기 바라는 작가의 의도라던가.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강력범죄가 일어난다면, 작품해설을 붙이는 걸 허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질문 만들기
1. 작가 조사
2. 네 가지 질문
1) 작별의식이 있나요?
2) 나이에 맞게 행동하나요?
3) 전화를 걸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4) 나의 중2병(사춘기)는 어땠나요?
3. 규칙을 어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4. 내가 아니고 싶은 적이 있나요?
5. 잃어버리면 마음이 쓰일 것 같은 물건이 있다면?
6. 상대방의 종교를 알아내고 싶나요?
7. 가식이라고 판단받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8.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9. 홀든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10. 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할 건지 모르나요?

사춘기 시절도 생각했고, 내면에 있는 어두운 부분을 떠올리기도 했다.
내가 고른 질문은 9번 홀든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이다. 나는 처음에 [스토너]를 생각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 홀든이므로 스토너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관심이 가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이방인]의 뫼르소와 너무 닮았지만 알다시피 내용이 범죄로 이어져서 모방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이 책은 패스하고. 독서모임하면서 생각하다보니 결국은 [화장실 벽에 쓴 낙서]나 [기차를 기다리는 소년] 같은 청소년 소설이 남았다. 홀든은 청소년 소설을 좀 많이 읽으면 자신의 욕구를 좀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독서모임

🏷질문
✔️제목이 왜 ‘호밀밭의 파수꾼‘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호밀밭을 어린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홀든이 어린이만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홀든은 ‘미친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고, 그 절벽으로 오는 아이들을 붙잡는(Holden) 역할(파수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절벽 너머의 세상이 어른의 세상(홀든이 가식이라고 말하는)이 아닌가 싶다. 즉, 어린이 세상에서 어른의 세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는 알리의 죽음을 막지 못해서 파수꾼의 역할을 자처한다는 생각을 했다. (알리가 병으로 죽긴 했지만) 절벽 너머 죽음의 세계로 갔지만 자신은 붙잡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어린이 세계를 붙잡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홀든 자신의 무의식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겠고.
✔️끝까지 제인에게 전화를 하지 못한 까닭은?
어릴 때의 순수했던 제인을 붙잡지 못할까봐, 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의 추억을 아름답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제인이 어린 시절에 몹쓸 일을 겪었을 것 같은 상황이 나오는데, 그 상황을 지켜주지 못한(개인적으로는 호밀밭의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마음 때문이라는 다른 분 말씀도 있었다.

🏷인물탐구
📌홀든
1️⃣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사춘기의 전형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지나치게 심한 느낌이다.
2️⃣어린이를 이상화, 자기 또래와 어른들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상화와 평가절하에 관심이 많다. 내가 그랬으므로. 아빠를 이상화하고 엄마를 평가절하했다. 그래서 홀든의 이 행동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3번의 특성이 있다.
3️⃣자신의 기준을 이상화한다. 자기 또래와 어른들은 모두 가식적이다.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의도나 의견은 들어올 여지가 거의 없다(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알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적극 공감했다.
📌피비: 오빠의 말을 잘 들어주는 통찰력 있는 아이
피비는 오빠가 왜 일찍 돌아왔냐고 물었을 때 홀든이 말을 돌리자 바로 ˝쫓겨났구나!˝라고 핵심을 찌른다. 그리고 오빠가 펜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때, ˝오빠는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어떤 학교도 마음에 안 들고. 백만 가지가 마음에 안 들고. 다 안 들잖아.˝(254쪽)라고 정곡을 찌르며, 마음에 드는 것 한 가지만 대 보라고 한다. 아주 똑똑한 아이다.

🤔살인자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사춘기와 은둔형 외톨이의 심리가 비슷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파일러 분 중 한 분이 ‘사회에는 사이코패스가 많지 않은데, 범죄자 중에는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서, 홀든의 마음 같은 상태가 오래 가면 사이코패스(모든 사이코패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홀든이 겪었을 수치심, 혐오감을 은둔형 외톨이들이 똑같이 겪지 않았겠냐는 복쓰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질문픽
복쓰님 질문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어른인가요?˝ [리어왕] 독서모임 때가 떠올랐다. 지혜와 판단력, 늙어서 갖추지 못하면 관계가 파탄나는 것을 보니 어른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역시 지혜와 판단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레이스님 설명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자녀 양육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니) 부모가 자녀에게 너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른(부모)으로서 바른 태도일까, 라고 생각하신다 하셔서 [아이야, 천천히 오렴]에서 룽 잉 타이가 자신의 아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기 위해 검열을 했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났다. 아, 검열은 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말이나 행동에도 충분히 검열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그래도 바르게 자라도록 가르치기는 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부모가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양육을 지원해야 하는지 혼란이 생겼다.

🏷내가 고른 문장
‘하지만 제 말은 많은 경우에 자기한테 관심이 있지 않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가장 관심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거예요.‘(277쪽)
[팡세]에 있는 글이랑 너무 닮았다. 샐린저가 팡세를 읽었나 하고 생각했다. ‘한 작품을 만들 때 최후로 깨닫는 것은 무엇을 제일 먼저 써야 할지를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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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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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연수를 들으면서 독서토론 실습을 했다.
주제는 현수의 엄마는 진짜 엄마로 볼 수 있다이고, 나는 반대편에서 논거를 펼쳤다. 다듬을 곳이 많지만, 일단 올린다.
참, 이 책은 3월에 한 번, 4월에 한 번, 6월에 한 번, 총 세 번을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독서연수에서 쓸 줄 모르고 읽었고, 4월에 읽을 때는 독서연수 질문 만들기를 위해, 6월에는 독서토론 실습을 위해 읽었다.


현대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챗GPT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었고, AI가 이세돌을 이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 ‘로봇에게 감정이 생긴다면?’이라는 질문이 더 이상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 감정을 가진 로봇이나 휴머노이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내게 감정을 가진 AI 엄마가 생긴다면, 그 엄마를 진짜 엄마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엄마는 진짜 엄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현수의 엄마는 현수가(현수 아빠가) 주문하고, 택배 상자를 받아서 집까지 옮겨서 하나 하나 조립해야 했던 생명‘장난감’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방점은 ‘생명’이 아니라 ‘장난감’에 있다. 마지막에 아빠가 데려온 현수의 엄마는,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마음이 생기면 장난감이었던 게 장난감이 아닐 수 있는가? 현수의 엄마는 앞으로 고장날 일이 전혀 없을까? 피를 흘린다면 현수의 엄마는 파란 피를, 현수는 빨간 피를 흘릴 것이다. 사람과 장난감이라는, 다른 종에서 오는 이질감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이 현수의 엄마가 진짜일 수 없는 첫 번째 까닭이다.
이 책에서는 (아마도) 현수의 실수로 엄마에게 마음이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사실은요, 엄마를 조립할 때 손가락을 찔려서 피가 났어요. 핏방울이 엄마 가슴에 떨어졌는데 닦아 내기 전에 스며들었어요. 그래서 엄마가 불량품이 됐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진짜 엄마처럼 안 되는 걸 거예요.”(72~73쪽)
만약 현수의 손가락이 찔리지 않고 조립을 끝냈다면 현수의 엄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마음을 가지지 않은 엄마도 현수의 엄마라고 볼 수 있을까? 현수의 엄마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 ‘마음’이 큰 작용을 한다. 이 우연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엄마가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현수가 엄마라고 생각했을까? 마음을 가진 엄마를 진짜로 볼 수 있다면, 마음을 가지지 않은 엄마는 진짜로 볼 수 없다는 건데, 같은 생명장난감으로서 마음의 유무로 진짜와 가짜를 가린다는 게 과연 합당할까? 이런 예는 현대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학대하는 엄마와 ‘마음’이 있는 선생님. ‘마음’이 있어서 무조건 엄마가 될 수 있다면, 이 시대의 엄마는 누구로 봐야 하는가?
이 책에서는 현수가 직접 조립한 생명장난감(엄마)에만 현수의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현수에게는 더 이상 엄마를 구입할 마음이 없어서 생기지 않은 일이었지만, 만약 다른 엄마를 사오고, 현수가 부품에 손가락을 또 찔려 피가 다른 엄마의 가슴에 스며들어 그 엄마에게도 현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현수의 진짜 엄마는 여러 명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넷째, 생명장난감은 깨어나서 처음 본 사람을 따르게 된다(23쪽). 현수의 피가 스며든 현수의 엄마가 깨어나서 처음 본 사람이 민지였다면, 엄마는 민지에게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때는 민지의 엄마를 진짜로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현수의 엄마는 현수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현수가 책을 읽어주면 책을 읽어줬고, 인사를 하면 인사를 했고, 현수가 웃으면 함께 웃었다. 현수는 가르치고 엄마는 배움으로써, 현수가 원하는 엄마를 가질 방법을 알게 되었다(75쪽). 이 엄마는 현수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 현수가 ‘원하는’ 엄마인 것이다. 만들어낸 엄마였다. 내 입맛에 맞도록 만든 엄마를 진짜라고 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진짜 같은 가짜에 열광한다. 그러나, 진짜는 존재하는 것이고, 가짜는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들어낸 엄마를 진짜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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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항복하다
데이비드 베너 지음, 김성환 옮김 / IVP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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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여유가 생길 일은 잘 없지만,
여유가 생기면 읽으려고 가지고 다니는 얇은 책.
분주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것 같아서 좀 아쉽지만..

의탁이나 순종이 어려울 때 우리는 보통 그것이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드리려고‘ 계속해서 노력한다. 매번 더욱 굳은 결심과 열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순종이 명령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사랑에 먼저 의탁하고 사랑의 의무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의탁과 순종의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 관한 문제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략) 사랑에 의탁하는 것은 절대로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중략) 의탁하라는 요구를 계속 듣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로마서 공부할 때 머리로 깨달았던 ‘사랑해서 순종한다‘는 말. 2010년, 아이들을 통해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그 말. 그럼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사랑해서 순종하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유난히 강조하는 ‘책임‘이 떠올랐다.
책임이라는 말과 순종, 충성, 절제라는 덕목들을 일치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 성경에 책임이라는 말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내가 사용하는 용어로는. 성령의 열매 같은 그런 덕목으로도 책임의 종류는 잘 보이지 않는다. - 꼭 같은 덕목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사랑 없는 책임‘만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떤 덕목을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한다.

#사랑에항복하다

201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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