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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평점 :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공정과 공평에 관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 읽게 되었는데요. 제가 예상한 책은 아니었습니다만, ‘능력주의‘를 통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챕터가 인상적이었어요.
[능력주의와 기독교]
능력과 은총 사이의 균형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청교도들에서부터 번영 복음 전도자들까지, 성취의 윤리학은 거의 저항할 수 없을 만큼의 유혹이었고 언제나 보다 겸손한 희망과 기도의 윤리학, 수혜와 감사의 윤리학을 압도했다. 능력주의는 우리의 은총을 추동하거나 그 자체의 이미지로 개조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100쪽
챕터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중 발췌했다. ‘미국이 선하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역대 대통령들 발언의 기원을,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쟁에까지 올라가서 찾는다. 기독교에서 ‘은총‘과 ‘노력‘의 갈등 상황(무엇을 우선 순위에 둘 것인가)이 있었고, ‘노력‘(성취의 윤리학)의 유혹에 넘어갔기에 능력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챕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막스 베버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3챕터 읽으면서 쓴 글도 남깁니다.
[공감이 약해진 이유]
불평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진보 엘리트) ˝우리 운명의 책임자는 우리 자신이며 따라서 성공과 실패는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불평등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 더욱 힘을 실었다. 세계화에 따른 이익을 긁어모은 사람은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며, 그 과정에서 뒤떨어진 사람은 그래도 싸다는 믿음이 이로써 한결 굳어졌다.
-[공정하다는 착각], 133~134쪽
레이건이 주창하고 오바마와 클린턴이 공고하게 만든 ‘기회의 평등‘.-이 책에서는 대통령 연설에서 사용한 낱말까지 꼼꼼하게 분석한다. 민주당에서 ‘네가 한 만큼 올라갈 수 있다‘는 사회적 상승 담론을 받아들인 대가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민주당이 주창해야 할 평등은 이런 종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하나는 성공주의. 성공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며, 누구나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기회의 평등‘이 조장하고 있는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잘 버는 직종‘에 들어가는 것인데,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능력주의적 오만의 가장 고약한 측면은 학력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135쪽) ‘잘 버는 직종‘도 사실은 문제가 있다. 누가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하루 종일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 임금의 차이는 누가 결정하는가? 왜 (더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높이(?) 올라갈 수 있는가?(더 많이 벌 수 있는가?)-나는, 이 문제가 남녀 임금격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말하는 세세한 차별보다 더 심각한, 근원적인 차별이 존재한다고 본다. ‘높다‘, ‘낮다‘고 구분짓는 순간 계층이 발생한다. 평등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그걸 왜 민주당이 옹호하는가?-자신의 이익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겠지.
우리나라의 실상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좌파의 행태가 늘 싫었던 것은, 사회적 약자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할 뿐, 실제로 그 사람들을 위하는 근본적인 정책은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애쓰고(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거기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없다.
아무튼, 이런 ‘개인의 노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연대의식은 자연히 줄어든다. ‘나는 열심히 해서 올라왔고, 너는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있는 거야.‘라는 인식은 ‘내가 너를 밟고 올라왔으니 너에게 빚이 있다.‘(서열화)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내가 열심히 해서 이만큼 이룬 거야.‘라고 믿게 만든다. 상대방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는 오만함이 있다. 사회가 점점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러한 능력주의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사회적 약자‘를 운운하기 이전에, 이런 구조적인 측면이 먼저 개혁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 4호선 장애인 시위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팽배한 능력주의 분위기에 따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