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가 돌아왔다. 석 달 전 죽은 줄 알았는데. 벌써 서른 번도 넘는 환생이지만 매번 살아 돌아오는 라지를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엄마 껌딱지였던 진식이가 풀죽은 모습으로 패기와 어울려 다녔던 것도, 라지가 최근 거처로 삼았던 집 앞을 내가 기웃거렸을 때 라지의 기척이 나지 않았던 것도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뒷베란다에 나갔다가 습관처럼 창 밖을 내다보니 눈에 익은 삼색 고양이의 뒷모습이 고양이식당 앞에서 서성거린다. 소리나게 방충문을 열고 닫아 라지를 부른다. 라지는 쳐다보지 않고 그냥 식당 앞에 예쁘게 자세를 고쳐 잡고 앉는다. 기다릴테니 내려오라는 뜻이다. 오늘따라 늦게 일어난 터라 출근 준비에 마음이 급했지만 여차하면 전화해서 연차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는다.
3년 전 중성화수술 이후로 라지는 나와 사이가 멀어져 거처를 옮기고 내가 주는 것은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 해도 먹지 않으며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도 알은척은 해준다. 내가 사는 다가구주택 단지에 가끔 마실도 오고 나를 보면 반갑게 야옹~ 인사도 하고 달려와서 자기를 쓰다듬게도 해준다. 그래도 눈만은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라지의 결심 같은 것인 듯하다. 라지의 그윽하고 따뜻한 시선이 그립기는 하지만 괜찮다. 내가 라지에게 잘못했으니까.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먹든 안 먹든 국물이 걸쭉한 파우치 두 개를 종이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라지는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아무리 오랜만이라고 해도 너라는 인간을 섣불리 믿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한참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할짝할짝 국물을 핥는다. 고맙다. 나는 라지가 먹기 편하라고 접시를 들어준다.
3년 전, 그러니까 삼월이가 태어나기 전, 라지가 중성화되기 전, 내가 아직 취준생이었을 무렵, 라지와 나는 둘이서 함께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라지도 나도 딱히 서로가 마음에 들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세상에 둘만 남아 버려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돌아다니는 무리처럼 우리 사이에는 적당한 마음의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라지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와 기다렸고 나는 라지에게 손을 흔들며 우리는 즐겁게 계절들을 통과했다. 어떤 날들에는 솟구치는 애정에 숟가락으로 라지의 밥을 떠먹여줄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라지는 아기처럼 얌전하게 숟가락을 핥았다. 라지의 접시를 들고 있는데 가만히 그때 생각이 났다.
밥을 먹고 있는 라지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우리 엄마 같다. 늙은 우리 엄마. 물론 우리 엄마는 라지처럼 상냥하고 노련하고 유능하지 않다. 그래서 한때 나는 정말로 라지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나도 라지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었다. 나의 늙어가는 엄마를 보면서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나이든 나의 고양이를 바라보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까. 라지는 제 양을 다 먹고 그대로 돌아서 떠난다. 나중에 출근하면서 보니 라지가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나는 항상 라지가 어디 사는지 궁금하다. 그런 걸 보면 라지는 내 친구가 맞는 것 같다.
2021. 4. 25.(일) 오전 11:21 라지와 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