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주인자리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2
신아인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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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혈귀를 연상케 하는 뱀파이어(Vampire)는 생각만 해도 오싹하게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개인적으론 아직까지 뱀파이어와 관련한 작품을 읽지를 못해 관념적으로만 뱀파이어의 속성을 알고 있다.죽은 귀신이 소복을 입고 송곳니를 드러 내며 원한과 복수의 화신으로 다가오는 그러한 이미지이다.때가 차가운 겨울이라 차가움을 더해 깡깡 얼어 붙은 얼음 덩어리와 같이 마비된 시신을 연상케 한다.아무런 감각,감정도 없는 살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한국에도 뱀파이어와 관련한 작품은 문영의 <아이 뱀파이어>가 있어 잠깐 읽은 적이 있는데 완독을 아직 못했다.이번 뱀주인자리는 원한과 복수의 화신보다는 천사와 같고 미의 여신과 같은 여성을 놓고 내 편으로,내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과 물리적 총성까지 가미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45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이 글을 쓴 목적과 배경,인물들의 특성들을 파악하게 되면 금방 읽어내려 갈 수 있는 흡인력이 충분한 작품이다.이렇게 해서 나도 뱀파이어 작품에 대해 맛을 들여 놓았으니 어떠한 작품이 나오더라도 재미와 흥미를 더해 가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우주에 떠 있는 별자리는 본래 12자리로 되어 있는데 열세번 째 별자리가 바로 '뱀주인자리'이다.영원한 삶을 꿈꾸던 의사,아스클레피오스의 별자리로서 죽은 사람까지도 소생시키는 탁월한 의술의 소유자라는 것이다.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기묘묘하기만 하다.대화 내용을 보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만 행동은 뱀파이어의 신분과 입장에서 하고 있다.주인공인 신우와 수안를 비롯하여 이엘,준수,유민,승윤,민조 등이 등장하고 있다.수안을 제외하고 모든 인물들이 뱀파이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그들의 말과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 특색이다.

 

 인간으로 회귀하는 것이 목적인 준수와 신우,이엘은 헤라 직원이면서 조각과 같은 미모를 겸비한 수안을 놓고 벌어지는 사랑 싸움이 이 글의 골격이라고 할 수가 있다.주인공 신우는 뱀파이어이면서도 절대 물리적인 싸움을 원하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띠고 있고,준수는 자신의 딸 유민마저 뱀파이어로 만들어 놓은데다 수안마저 다양하게 실험하려 들고 살해하려 든다.나아가 이엘은 피아니스트이면서 점성술사인 운하를 죽였는데 이는 수안의 어머니이다.수안의 어머니를 죽여서인지 내색은 못하지만 수안에게 죄책감 서린 말과 행동이 묻어 난다.물론 이것은 이엘이 수안에게 다가가는데 진심이 있지만 수안은 이엘보다는 신우에게 마음이 더 쏠린다.신우는 운하와의 약속을 지키려 수안에게 다가서면서 수안은 신우의 말과 행동을 지켜 보면서 신우가 과연 뱀파이어로 남아야 좋은지,인간으로 회귀하여 영원성을 끊어야 마땅한지를 놓고 고뇌를 거듭해 나간다.

 

 뱀파이어 신우와 인간 수안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준수에 의해 총상을 입어 고통이 온몸을 옥죄어 와도 둘은 멋진 체념의 말을 남긴다.비록 신우는 인간으로 변하지 않았지만 수안에 대한 고귀하고 정성어린 사랑의 메시지는 죽어서도 죽지 않은 불멸의 영혼을 간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도 어떤 별이 남기고 간 몸뚱이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어요.그러고는 언젠가 다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거예요." - 본문 -

 

 

 두 개의 심장이 하나가 되고 죽어서도 우주의 별로 남아 세상을 밝게 비춰 줄 신우와 수안의 로맨스적인 스토리는 애틋하기도 하고 고귀하기도 하다.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처녀 자리 주인인 페르세포데라는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여 스토리를 전개한 점도 이해력과 공감도를 넓혀 주기에 충분했다.쌍둥이였던 이엘이 사라지고 신우는 서향(瑞香)나무 묘목을 심으면서 신우와 이엘이 같은 날 태어났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과연 수안은 이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사랑은 유한할지라도 대지에 남겨 놓은 사랑의 흔적은 불멸의 존재와 같이 대지 위를 촉촉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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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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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작가 중에 몇 명은 번역본으로 나오게 되면 불티나게 팔리는 것 같다.문학장르를 떠나 독자층이 젊은층이 많다 보니 사랑과 이별,우정과 배신 등에 관한 작품이 인기도 있고 작품성도 있다는 감이 온다.다만 너무 인기에 영합하려는 일부 작품을 읽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뻔한 소재에 뻔한 내용과 전개가 가끔은 식상하다는 것이다.그런데 프랑스 작가인 귀욤 뮈소는 현재 10권이 한국에 번역되었는데 거의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내 나이가 적지 않은 편인데도 귀욤 뮈소의 작품을 읽다 보면 당연히 남.녀간의 우정과 사랑,배신 등이 교차하고 공간적 배경도 꽤 광활하기만 하다.배경의 스케일이 크다 보니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귀욤 뮈소의 매력이고 흡인력을 증가시키는 주된 요인은 아닐까 한다.

 

 <종이여자>,<7년 후에>와는 달리 <내일:Demain 드멩>은 색다른 소재를 갖고 스토리를 풀어 내고 있다.기존의 로맨스적인 요인에 배신에 대한 증오와 복수가 가득했다면 이번 작품은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 드는 시간 여행이 이색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일종의 타임슬립(Time slip)현상으로서 현재를 기준으로 가까운 과거 속을 헤집고 들어가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추어 내기도 하는 등 색다른 내용을 선사하고 있다.일종의 컴전문가인 해커를 이용하여 타인의 과거사를 파헤치는 것은 당사자에겐 흥미로운 일이면서 절박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그것을 알게 된다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 아닐까.

 

 하버드 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메튜는 아내 케이트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가운데 호화 빌라와 같은 집에 에이프릴이라는 동성애자를 세를 내주고 세 살 난 에밀리와 함께 살아간다.그런데 에튜가 중고컴퓨터를 구입하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던 메일과 블로그들을 컴전문가가 파헤치고 추적하면서 그렇게도 못잊고 사랑하던 아내 케이트의 과거사가 하나 둘씩 세상에 드러난다.이 역할을 뉴욕 호화 호텔의 와인감정사 엠마와 와인감정사 견습생이었던 로뮈알드가 죽이 착착 맞게 아내 케이트의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사랑 행각을 들춰 내게 되면서 이 사실이 메튜의 귀에 들어 가게 된다.메튜는 심장전문의였던 케이트가 왜 그렇게 이중적인 행동을 했을까를 두고 여식인 에밀리마저 친자인지 확인까지 하려고도 한다.

 

 정원 일을 하다 손을 다친 메튜는 케이트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서로 알게 되면서 4년 정도의 사랑과 결혼,가정을 꾸려 간다.케이트는 메튜를 알기 전부터 비디오게임 사업자였던 닉 비치를 열렬히 사랑했다.그는 선천성 심장질환에 헬싱키그룹에 속해 있어 어떻게든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안간 힘을 쓰던 차에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남편 메튜를 살해하고 심장이식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케이트는 여의사로서 영리한 만큼 살해계획도 용의주도하게 하는 대범성과 치밀성에 약간은 소름이 끼친다.결국 케이트는 엠마의 총에 사살된다.사랑에 굶주리고 정서불안증이 있는 엠마는 이제 모든 것을 툴툴 털어버리고 메튜와 다정하고 행복한 내일을 설계해 나가리라는 기대가 간다.

 

 케이트는 피아니스트 엄마를 일찍 여의면서 실의에 빠지고 우연히 병원에 치료차 들른 남편 메튜와 알콩달콩 4년 정도를 음흉한 내색 없이 살아 왔건만 결국은 모든 것이 중고컴퓨터 안에 케이트의 이중적이고 비도덕적인 저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던 것이다.서스펜스적인 요소와 (후반부)쫓고 감금 당하는 스릴감과 전율감도 동시에 맛보게 하는 보기 드문 글이었다.사랑의 이름으로,사랑을 위해서라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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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쿠쿠스 콜링 세트 - 전2권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1
로버트 갤브레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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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의 저자 J.K 롤링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장르 추리소설을 내놓았다.판타지의 완성된 미를 한껏 드높이고 독자들의 열렬한 관심과 사랑을 받은 J.K 롤링작가는 이번에는 사건사고와 관련하여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추리,스릴물은 사건 직후의 숨가쁜 수사일정과 주변인물들의 탐문 등이 백미인데 이번 작품은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 손과 눈에서 책을 놓치 못할 정도의 흡인력이 있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건현장에서의 흔적을 지우고 그럴 듯하게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등 치밀하게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한다.과학수사가 발달하고 LBS(Located Based System:위치기반 시스템) 및 CC(Closed Circuit)TV가 보급화 되면서 범죄를 저질르고선 빠져나갈 구멍이 많지 않다.그래서 사건사고의 장본인은 사건사고와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발뺌을 하여도 수사관의 집요하고 치밀한 증거물 앞에서는 꼼짝 없이 사실을 시인하고 죄값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영국 런던의 상류층 사회에서 벌어진 탑모델의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파리 떼와 같은 경찰관과 기자,차량들로 북적거리는 장면부터 이 글은 시작된다.탑모델 룰라가 차가운 겨울날 펜트 하우스 고층에서 떨어져 숨지고 부검결과 외상 및 타박상 등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하는데,룰라의 오빠 브리스토는 죽은 남동생 챌리의 친구 스트라이크에게 룰라의 죽음에 대해 탐정을 의뢰한다.스트라이크는 조수 로빈과 함께 사무실 한 칸을 쓰면서 사건 파일 작성 및 사건의 실마리에 대한 파일을 정리해 나간다.둘은 마치 사이가 좋은 오누이와 같이 명콤비 역할을 해 나간다.스트라이크가 군 공병출신으로 폭발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를 못쓰게 되면서 의족생활을 하기에 조수 로빈은 스트라이크의 심적인 괴로움을 덜어 드리기라도 하듯 조신스럽고 성실하게 보필을 해 준다.그림과 같이 보기가 좋은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타블로이드의 명성을 쫓고자 하는 모델 지망생 중에는 그녀의 성공과 참담한 전락(轉落)을 지켜 보면서 망연자실을 한다.룰라는 명성과 지명도가 있는 만큼 생전 화려한 삶을 살았다.배우,가수,프로덕션,디자이너,메이크 아티스트,그리고 그녀를 닮으려 하는 수많은 후배들 속에서 남부끄러울 것 없는 외면적인 생활이었지만 내면은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우울증까지 곂쳐 그녀의 후반생을 힘들게 만들었다.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룰라는 양부모를 만나게 되는데 양어머니와의 관계가 썩 좋지를 않고 그녀가 벌어 들인 재산 및 양부모의 상속문제로 속을 많이 끓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수사에서 이미 자살로 판결이 난 마당에 오빠 브리스토는 왜 사설탐정을 끌어 들이면서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려고 하는 걸까.아니면 무슨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에서 의문이 많이 갔다.룰리의 주변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룰라의 기사(騎士)를 비롯하여 양어머니,아파트 경비원,디자이너,메이크 아티스트 등으로부터 룰라의 행적과 언행 등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자살 이외의 별다른 단서는 포착되지를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는 참에 탐정 스트라이크는 탐정 의뢰인인 브리스토의 사건 당일 CCTV에 찍힌 모습과 재산문제,그리고 룰라가 유언으로 남긴 재산상속 문제 등을 종합.분석하여 브리스토를 강력한 용의자로 추궁하고 몰아 넣는다.이에 스트라이크와 브리스토,조수 로빈은 사무실에서 육탄적으로 비화되기도 하면서 약간의 긴장감과 스릴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혼혈이면서 친부를 찾고 싶었던 룰라는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친오빠인 브리스토는 재산을 탐하고 돈이 아쉬워 얄팍한 계산법으로 탐정을 끌어 들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도 못한 채 결국 자승자박으로 신세를 망치고 만다.탐정 스트라이크와 로빈은 젊은 청춘으로서 시간이 흐를수록 둘은 감정만 무르익지 않았을 뿐 가까운 사이가 된다.로빈은 남친이 있기에 이번 사건을 마치고 그에게 가야 하고 스트라이크는 그녀와 다시는 못만난다고 생각하니 쓸쓸한 고독이 밀려 온다.그와 한 때 사랑을 나눴던 여친도 새로운 남자를 만나 떠나게 되고 혼자 남은 스트라이크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기만 하다.그가 외웠다는 시구절이 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나는 결코 여행을 쉴 수가 없다. 이 삶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들이켤 테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일 때에도, 혼자일 때에도,

 그 언제나 나는 위대하게 향유했고,위대하게 수난을 겪었다.

 바닷가에서도 그리고 비를 뿌리는 히아데스가

 어둑한 바다를 뒤흔들어 광란의 표류를 할 때에도,

 나는 이름이 되었다...... - 알프레드 데니슨 경의 《율리시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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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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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어린시절엔 조부모님,부모님,동네어른들,친구들 모두가 영원히 함께 살아가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시간과 세월,시대의 흐름 모두가 정지되어 꿈과 희망을 찾아 가고 사랑과 우정을 녹슬지 않도록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었다.산과 들판으로 둘러 싸인 시골 마을에서 제법 큰 도회지로 나오고 또 다시 서울 한복판으로 출세를 하였다.내가 어린시절 품고 있었던 소박한 꿈은 변화를 해야만 하는 시대의 흐름과 내 자신의 각성 및 인지 앞에서 무너지고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야 하고 스스로 길들여지도록 동화되어만 갔던 것이다.단잠과 같이 꿀맛 같았던 어린시절은 문명적으론 살아가기가 꽤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오손도손 정을 나누면서 자급자족하던 이웃 사람들과의 시래기맛 나는 구수한 인연은 도시화,산업화가 되면서 희미해져만 간다.내 삶의 방향과 DNA기질,품성을 낳아 준 그 본향은 빛바랜 고서와 같기만 하지만 들춰보면 꼭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잔병치레를 유난히 많이 했던 나는 00소아과에 돈을 뿌리면서 대신 면역기능이 좋아져 지금까지 커다란 질병이 없이 사는 게 나에겐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다.일찍 남편을 잃고 7남매를 억척스레 보살피고 키우던 고모님은 먹고 살기가 힘든 것도 힘들었지만 먹었던 음식에 체하여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할아버지,할머니,남동생인 아버지는 딸이요 누나인 고모가 나을 수 있도록 온갖 약과 정성을 쏟아 죽을 운명에서 오래 살 운명으로 바뀌었다.지금은 90이 가까운 나이이지만 정정하고 잘 드시고 여기 저기 딸네집을 전전하면서 인생후반부를 후회없이 사시는 것 같다.또 하나 내 나이 열살 무렵 객지에서 그릇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께서 나를 비롯한 가족을 남겨 놓고 본가에 계시는 조부모님 문안을 드리러 가는데 마침 기차 좌석이 없었던 것이었는지 맨 뒤칸 문틈에 기대여 젊고 활력있는 목소리로 "아빠, 잘 다녀 올게"라는 사십대 초반의 모습이 돌아가실 무렵에는 이가 거의 망가지면서 홀쭉이가 되시고 숙환으로 어머니 무릎에 기댄 채 운명을 달리하셨다.

 

 글은 잘 살고 화려하고 잘 나가는 주인공의 삶보다는 그늘진 곳에 소외되어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의 가엾은 삶을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을 가미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찡한 여운과 생명력 넘치는 환희를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것이 살포시 미소가 나오며 공명을 느끼게 한다.살아가는 서민들의 삶 속에는 아픔과 상처,번민과 고뇌가 묻어 난다.시간이 흐르고 되돌아 보면 지금의 시련과 고난과 비교하여 대수롭지 않았던 일인데 '당시엔 왜 힘들다,괴롭다,막막하다'라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을까라고 스스로 성찰하기도 한다.이러한 사연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고 과거였기에 손을 내밀면 바로 잡힐 것 같기도 하고 꿈 속에선 내 자신이 그 모습,그 자리에 우뚝 서 있기만 하다.현실로 돌아오면 괜한 생각,덧없는 세월을 한탄했구나라는 각성이 일기도 한다.다시 올 수 없는 지난 시절을 아픔과 상처,회한과 우울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김연수작가의 <사월의 미,칠월의 솔>은 총 11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 모음집이다.

 

 사십대 초반의 김연수작가는 남성적인 육중한 문체보다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를 선보이고 있다.소리나지 않게 잔잔하게 내리는 사월의 빗소리는 음계 '미'로 들렸고 칠월의 비는 장대비와 같이 뚝뚝 떨어지는 '솔'로 들렸을 것이다.제목에서 다가오듯 창가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지난 시간과 세월을 음미하는 글 속의 인물들의 사연 만큼이나 애잔하고 촉촉한 느낌을 안겨 준다.사랑과 실연,삶의 고통과 회한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당시에는 어떻게 오고 갔는지 모를 정도였지만 지나고 보면 인간의 성장 과정에 꼭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사연들이다.작가는 이념과 사상에 의한 월남한 작가의 얘기와 죽음을 노 전(前)대통령 추모와 섞어 들려 주기도 한다.개인의 아픔이 아닌 국가의 몸뚱이가 흔들리는 아픔을 동시에 맛보게 하기도 한다.인상 깊은 소설은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이다.작고한 엄마의 음성을 기억하고 추억을 맛보기 위해 남동생과 안산 터널을 야밤에 쌍라이트를 켜고 그곳을 찾아 가는 여정에서 엄마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기만 하다.그리고 방화범인 청소년 동욱의 빗나간 삶을 작중 화자인 담임이 교도소에서의 만남과 격려 그리고 착실하게 교도생활을 하면 밝은 내일을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멘토에서 그래도 삶은 차갑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소설 11편 모두가 잔잔한 정중동의 모습이 연상된다.기쁨과 슬픔,만남과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남,기억과 추억의 소야곡들이 구슬프게 전해지는 것 같다.그리 멀지 않은 1990년대부터 근자에 이르는 이야기를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들려 주고 있다.김연수작가는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천상 이야기꾼이 아닐까 한다.마치 범생이 강의 내용을 메모지에 빼곡하게 정리해 나가는 모습이 연상되고 이를 다시 길게 해석하고 기술하는 스토리텔링의 파워풀한 힘을 느끼게 하였다.당시엔 다하지 못한,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눈빛을 솔직하고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진실로 그때의 삶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말해야 한다고 김연수작가는 5년간의 글쓰기 작업 속에서 하고 싶었던 진심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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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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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한다해도 인간의 정념 속에는 비과학적이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지만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 것이다.우환이 끊이지를 않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무속인을 찾아가 뒤풀이를 한다든지 액땜을 위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또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풍화 작용에 의하여 사라지지만 영혼은 남는다는 믿음은 아직도 갖고 있다.생전 원한을 안고 간 사람은 죽어서도 후손들을 해꼬지 한다는 생각마저 갖고 있기에 죽은 조상에 대해 제사와 명복,한풀이 등을 하여 후손들에게 불길한 일이 생기지 않고 안녕과 행운을 기구하기도 한다.

 

 흔히 꿈 속에서 죽은 조상이 소복을 입고 나타난다든지 어떠한 일로 가위눌림을 당한다든지 하면 다음 날 몸과 마음이 찌뿌듯하면서 일진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이것은 자신의 현재 상황과 상태를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판단이 들지만 예기치 않은 흉몽 속에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암시하는 경우가 있다.그러하기에 생전 잘 대하지 못한 조상에게는 마음으로나마 정성을 다해 제례를 지내고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면서 조상의 원혼이 후손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한다.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을 읽기 전에 상기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일본인에 의해 일본인의 인습과 정념을(인위적이지만) 배경,사건,인물들을 교차식으로 잘 배열하여 흡인력과 긴장감을 한껏 부풀게 하는 마력이 이 글 속에는 잘 담겨져 있다.일본은 지신과 곡식,물신 등을 아직도 숭배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은데 이번 작품 속에는 기우제와 관련한 수신(水神)인 미즈치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물의 재앙의 여부를 알 수가 있는 매우 흥미롭고 감칠맛 나게 명탐정과 조수를 등장시켜 스토리를 원활하게 이끌어 가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쓰다신조(三津田信三)의 작품은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을 읽으면서 일본의 무속신앙과 관련한 이야기를 향토문화적인 차원에서 잘 엮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무속신앙이 일본인의 뇌리에 아직도 견고하게 심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했는데,이번 작품과 견주어 볼 때 공통점이라고 하면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산골마을인 점과 재해 및 재앙과 관련하여 정념상의 신(神)적인 존재에게 잘 대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가 있다.미쓰다 신조작가는 일본민속신앙에 대해 많은 조사와 연구,통찰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이 강하게 일었다.

 

 일본의 나라현의 작은 마을(네 곳)과 신사,그리고 배례 등을 관장하는 신관,하인과 같은 다양한 인물,미즈치와 같은 정령의 신(神) 등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어느 나라에서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게 되는데 이것은 수리(水利)조합에서 담당을 하고 사요촌,사호촌,모노다네촌,아오타촌에는 각각 미즈시 신사,스이바 신사,미즈치 신사,미쿠마리 신사가 자리 잡고 있다.재해를 예방하려면 신사에서 감의 및 증의의식을 거행을 한다.신을 모시는 의례인 만큼 정성을 다하고 소홀함이 없어야 신으로부터 노여움과 재앙을 받지 않는 것이다.

 

 명탐정 도조겐야는 작가이면서 민속탐방이 전문이고 출판사 편집인 시노가 바늘과 실처럼 신사의 의례,신관 연쇄살인사건을 추리하고 말끔하게 정리하여 연쇄살인범이 누구인가를 가려낼 수 있는 단초를 만든다.등장인물이 참 많다.일본이 만주에서 패배하여 도망쳐 온 쇼이치 일가가 신사(神事) 및 신관들과 얽히게 되고 외눈 광에 갇히기도 하며 연쇄살인의 용의자로 떠오르기도 한다.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네 곳의 마을과 신사 그리고 산정에 자리잡은 진신호수가 있다.진신호수 밑바닥에는 미즈치신이 가라앉아 있는데 그의 비위를 못맞추게 되면 가뭄과 재앙을 안겨 주는 공포와 경원의 대상이기도 하다.신사에서 의식이 일어나던 때에 신관들이 연쇄적으로 죽어 나가는데 과연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머리가 잘려지고 전율감이 일도록 빨간 띠가 대롱대롱 달려 있는 등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럽기만 하다.오랜만에 기우제가 열린 나라현의 산골 오지마을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명탐정 도조겐야의 추리력과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제10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인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일본 민속신앙을 이해하기에 충분하고 스토리의 전개도 흡인력 있게 빨려 들어가는 묘한 마력이 있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정념의 신을 소홀히 하게 되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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