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찾아서 3 : 중국이 날조한 동북공정을 깨라 환단고기를 찾아서 3
신용우 지음 / 작가와비평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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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우작가의 '환단고기를 찾아서' 세 번째 이야기를 맞이하여 새삼 냉철한 역사인식과 국력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역사이래로 한반도는 수많은 외침 속에 시대별로 부침이 있었다.이는 국가의 문명과 국력,그리고 사회구성원의 의식구조까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대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잠잘 날이 없을 정도로 서구 열강과 이웃 나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과 세를 조율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중국의 팽창정책,일본의 호전성이 더욱 짙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외교채널과 대응책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2편에서는 한국 고대사와 관련한 자료가 일본 왕실 비밀창고에 소장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일본왕실 지하비밀서고에 접근하려다 실패하게 된다.그러나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 줄 환단고기를 비롯하여 태백일사,조대기,삼성기 등에 대해 태영광,조병현,박종일 등의 등장인물들은 조선족 역사학자인 손영철씨를 만나 중국에서 자행하는 한국 고대사 말살의 전.후 맥락을 청취한다.손영철씨는 법적으로 엄연히 중국인이지만 그를 찾아 온 한국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면서 동포라는 혈육애와 선조라는 민족혼을 함께 나눈다.그가 비록 중국 정부의 녹을 먹고는 있지만 동북공정의 이력과 한반도 고대사의 비밀의 열쇠를 갖고 있는 역사자료에 접근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이러한 행위가 공안의 정보망에 포착이 되면 쌍방은 빼도 박도 못하는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알고 보니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마오저둥이 중국 인민의 삶의 개선을 위해 실시한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이러한 와중에 마오저둥은 농수로 개선으로 농작진작에 성공을 거둔 화궈펑을 중난하이로 불러 들이고 그에게 고려말~조선초에 쓰여진 환단고기를 설명해 주면서 동북(중국의 지린성,헤이룽장성)공정의 당면성을 고취시킨다.게다가 1960년대는 중국과 구소련이 이념의 갈등고리가 불거져 있고 국경지대와의 충돌가능성이 컸던 것으로 보여지고,만주땅이 역사적으로 조선의 고토였다는 것을 인식한다. 마오저둥은 김일성주석을 중난하이로 초대한 자리에서 북한이 구만주지역을 북한이 가져 가도록 재차 요청하지만 무슨 의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일성은 극구 사양한다.마오저둥은 교조주의니 수정주의니 하는 이념갈등과 국경분쟁의 우려,여진 및 후금,만주족,조선족에 대한 혐오증과 기피증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원인은 해서파관(海瑞罷官)사건이 터진다.해서파관은 청조 해서라는 관리가 가정제에 의해 파면되는데,장칭은 연극 해서파관의 내용이 마오저둥을 가정제에 비유하면서 마오저둥의 지도력에 흠이 가게 하고 모욕을 안겨 주는 것으로 각인시키면서 지식인,지주,반체제 인사 등을 무참히 짓밟는다.이러한 가운데 시장 자본주의 색깔을 띤 덩샤오핑과 류샤오치 등은 토사구팽을 당했다.마오저둥이 점찍은 화궈펑은 문혁을 진두지휘하면서 마오저둥의 뒤를 이어 실세로 떠올랐던 인물이다.마오의 네 번째 부인이었던 장칭은 그녀가 이제 정치일선에 나설 적시라고 판단하면서 4인방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그녀에겐 비빌 언덕이 마오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녀의 정적(예지엔잉 등)의 지시에 의해 체포,재판을 거쳐 감옥에서 자살로 파란많은 삶을 마감한다.

 

 중국은 화궈펑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1993년 지린성 지안시에서 '고구려 문화 국제 토론회'가 열린 것을 비롯하여 1998년 12월에는 동북 3성 학자들이 고구려,고조선,간도,백두산에 관한 문제 등의 입장을 정리하고,1999년 9월 '하.상.주 단대공정 성과 학술보고회'가 열리고,2003년 6월 중화 문명의 시원을 찾는다는 명분하에,중국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렸다.동북공정의 정식명칭은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다.중국정부는 그들의 역사의 시원을 요순시대를 포함하여 삼황오제를 역사로 조작하고,중국문명의 발상지는 요하였다고 공식적인 '요하문명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념과 사상에 의해 두 동강이 난 한반도는 언제 하나로 합쳐질지 모르는 대치상황이에서 중국이 그들의 영토확장을 꾀하고 한반도 고대사 부분까지 야금야금 왜곡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손영철 조선족 역사학자가 한 말이 부끄럽고 슬픈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조선족들이 처한 입장과 빼앗긴 만주고토를 향해 "조선이 버린 조선인'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지금 당장은 한반도 고대사 부분을 원형복구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과 의지를 중국정부를 향해 주장해야 할 것이다.역사의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후대를 살아 갈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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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시오리코 씨와 두 개의 얼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4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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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특유의 비좁은 공간을 이용한 고서점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관련한 추리적인 요소가 무척 기대가 됩니다.그간 1~3권을 읽었기에 4권에서 주인공 시오리코의 역할과 주변인물들은 어떠한 얘기를 들려 줄 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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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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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에서 관련 학생들에 대해 체포 내지 아동상담소 송치가 이루어지고 유족측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학교측 대표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으로 끝나게 되었는데,2권에서는 나구라 유이치가 죽음 이전의 학교생활을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다.글을 읽다 보니 나구라는 체격도 작고 소심한 성격의 학생이었다.그의 부모측이 내민 휴대폰 메시지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공갈과 명령을 강요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여름 캠프에서 텐트를 치고 1박을 하면서 강가를 청소하는 봉사활동에서 아이들을 웃길 만한 장기자랑을 하기도 하는데,돈을 뜯어 내기도 한다.나아가 새삼 놀라운 점은 3학년 선배 패거리들과 어울려 일명 '기절놀이'까지 한다.숨을 못 쉴 정도까지 가는 것이다.또한 나구라는 왜소한 체격에 기절놀이까지 당하고 포토타임을 외치면 바지까지 스스로 벗기는 기이한 놀이까지 한다는 점이다.그외 야간 캠프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의 손바닥에 사인을 받는다든지,운동부 대항 야간 릴레이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집과 학교만 뱅뱅 왔다 갔다 하다 모처럼의 스트레스 발산,기분전환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구라는 평소 유복한 집안이라 용돈,의복면에서는 부족할 것이 없는 학생이었기에 급우 및 후배들의 질투어린 시선을 받게 되고 이러한 면이 나구라를 못살게 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시샘과 질투가 강한 시기이기에 친구들과 약간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했겠지만 그러하지를 못하고,마음까지 약해서 친구들이 원하는 데로 퍼주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게다가 친구 및 후배들이 등짝이 출혈이 날 때까지 괴롭혔으면 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려야 문제가 작아질텐데 나구라는 그러하지를 못했다.

 

 테니스부에서 활동했던 나구라는 부 멤버들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의기투합도 되지 못했다.전체 경기는 함께 할지라도 연습 경기는 끼워 주지를 않아 늘 면벽수행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러한 일상이 흘러가면서 운동부 학생들은 운동부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분 전환을 하게 되는데,건물 옆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는 것이다.오래 되어 가지도 길고 두터운데 옥상에서 가지로 뛰어 내려 가지를 붙잡고 땅바닥으로 뛰어 내리는 담력 쌓기를 한다는 것이다.사건 당일 날,테니스부원들이 평소와 같이 옥상에 올라 두 명은 은행나무로 뛰어 내리고 나머지 두 명은 계단을 타고 그대로 귀가했다고 한다.혼자 남은 나구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옥상에서 은행나무 가지로 뛰어 내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도 호연지기로 뛰어 내리다 그만 추락했던 것은 아닐까.그가 운 나쁘게 콘크리드 도랑으로 머리를 쳐 박고 죽은 모습을 본 최초의 목격자는 과연 담임선생님일까,아니면 테니스 부원이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그리고 이제 조사를 받고 체포 내지 아동상담소로 갔던 나구라 친구들은 모두 증거부족으로 풀려 났다고 한다.어렵게 얻은 나구라 자식을 잃은 그 부모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이야기이니까 그렇지만 나구라 부모가 평소 나구라의 학교생활에 조그만 더 관심과 애정,신경을 썼더라면 학교생활도 원만하고 죽음에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돈과 물질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일부 빗나간 교육과 양육도 다시 한 번 고찰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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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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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사회면 기사를 3면기사(삼멘기지)로 불리운다.즉 일본 사회 곳곳에서 발생한 갖가지 사고,사건을 다룬 면이다.어느 나라이든 자고 일어나면 사회적 이슈가 되고 회자가 될 만한 사건들이 발생하는데,요근래 사건은 '묻지마 살해사건'이 빈번하여 사회적 안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사건.사고 소식은 살인,유괴,방화,뺑소니,절도상해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왕따,따돌림이 수위를 벗어나고 있는 심각한 사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국독자에게 잘 알려진 일본작가 오쿠다히데오의 이번 이야기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따돌림,괴롭힘에 의해 한 중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오쿠다히데오의 작품은 이미 몇 편 읽어서인지 문체 및 글의 구성을 예감할 수가 있다.일본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부조리 및 유머와 해학성을 가미한 글까지 오쿠다히데오작가는 소재가 참신하기만 하다.겉으로 표면화되지 않은 사회의 그늘진 곳을 샅샅이 밝혀 내어 독자들에게 경종과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소년을 두고 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번 글은 특히 관심있게 읽어 갔다.부모는 아이가 문을 열고 집을 나서 귀가할 때까지 마음을 졸인다.체격이 약하고 눈치가 없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내 아이가 과연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걱정반 근심반 한다.10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제2의 성징기가 나타나고 감수성과 반항심이 강렬한 시기에 놓여 있기에,가까운 식구,친척보다는 코드가 맞아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먼저이다.친구들 사이에서도 '끼리끼리'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함께 붙어 다니는 부류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인기가 많은 아이,인기가 없는 아이,인정을 받는 아이,무시당하는 아이로 나뉘어져 있다.자신이 어느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중학교 생활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는 경험과 상식이 덜 성숙되고 자아관념이 정착되지 않은 주변기라고 본다.괴롭힘과 따돌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나구라 유이치는 중2생으로 포목점(중.고교생 교복 등을 주문,판매)을 하는 부잣집 아들로서 테니스부에 속해 활동하던 중 은행나무 밑 콘크리트 도랑으로 추락사한 것을 이지마 담임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사건 수사는 주변친구들의 탐문,친구들과 주고 받은 메시지,사건당일의 CCTV에 찍힌 친구들의 알리바이 조사 등이 이어지게 된다.나구라 유이치 부모는 포목점 운영을 하다 보니 부모 모두가 나구라 유이치에 세세한 관심과 신경을 쓰지 못했나 보다.예상치 않은 흉보에 그의 어머니는 자리에 눕게 되고 학교측은 사고당일날 친구들의 동태파악 및 행적 등을 조사하지만 직접적인 살인으로까지는 밝혀지지 않고,기소유예 단계에서 만14세(태어난 날로부터 만14년이 되는 나이)가 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체포 여부가 결정난다고 한다.만14세 미만은 아동 상담소에 보내진다는 것이다.나구라와 같은 테니스부에 있던 에시스케와 후루타는 만14세가 되어 체포가 되고 이치가와와 가네코는 만14세 미만이라 아동 상담소로 보내지면서 그 명암과 희비는 천당과 지옥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구라의 죽음을 최초 목격한 담임선생을 비롯하여 관련 학생들의 조사가 경찰,검사,기자 등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간 급우 및 친구들의 얘기를 통해 얻은 정황 및 자백만으로는 공소 재판까지는 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증거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학교측은 나구라의 장례식에 교육위원회의 교제비 차출이라는 명목으로 부의금을 마련하고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고,나구라의 삼촌 나구라 고지로는 전교생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아는 점,느낀 점 등을 글로 써서 보내달라는 요구에 대해 학교측 간부와 평교사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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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천황을 맨발로 걸어간 자
김용상 지음 / 고즈넉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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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위기,빈부격차,민생외면 등의 차가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즈음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그리울 뿐이다.역사 이래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사후가 아닌 생전에 받고 그들이 그린 나라의 설계도대로 이루어졌다면 오랜 기간 민생고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그런데 나라 살림이라는 것이 혼자의 생각과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지도자는 이실직고를 잘하는 수하를 내치지 않고 국가의 대계,국가의 발전을 위해 겸허하게 경청하고 의논하여 수용해 나가려는 정치신념과 철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과거는 그렇다치고 현대사회는 대의정치이기에 선거를 통해 지도자가 탄생되는데,지도자가 후보시절 그를 지원하면서 아낌없이 밀어 주었던 주변세력에게 '권력 나눠먹기'를 하고 만다.권력의 속성상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잘못 그린 인사(人事)는 지도자를 비롯하여 국가의 발전과 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 등을 조장할 수도 있기에 우려스럽기까지 한다.

 

 엊그제 김탁환작가의 정도전에 관한 『혁명 1,2』를 의미있게 읽었는 바,고려말의 어수선한 정치권력의 다툼과 분열,갈등의 양상이 바로 엊그제 일과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정도전이라는 인물은 역성혁명의 주역이고 불세출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자신의 권력욕을 다져 나가기 위해 몇 번의 유배와 유랑생활도 권력의 좌에 앉기까지의 수행과정이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본다.권력의 좌에 앉게 되면 세상은 바로 자신의 소유물인양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덜 떨어진 정치주구(走狗)와 같은 존재가 없지 않아 있다.이와 견주어 보면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낱낱이 정리한 연후에 밑그림을 구상하면서 자기와 정치적 노선을 함께 할 인물들과의 대화,소통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꿈꿔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대쪽같은 성격과 시류를 간파하는 통찰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그가 남긴 몇 편의 저작물은 오늘날 그 시대와 그를 연구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시대에 오늘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먼저인 나라'를 꿈꾸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작가의 말에서 -

 

 정도전은 나이 차이는 있지만 정몽주와 같이 이색의 문하생으로 시작하여 학문적 소양을 넓혀 나가고,정몽주를 통해 맹자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한다.정도전은 동북면 병마사로 있는 이성계를 찾아가 그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트게 되고,이성계는 정도전의 참신하면서도 대국적인 면모에 감복하면서 정치인생을 나눠간다.최영이 잃어 버린 고구려 고토를 수복하기 위해 요동정벌에 나설 무렵 군사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는 고려의 상황을 이성계와 정도전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게 된다.당시 고려는 승려 신돈이 노비와 토지개혁을 내걸었지만 실상은 무모한 권력욕에 다름 아니었다.게다가 우왕,창왕이 신돈의 자손이라는 말까지 나돌기도 했다.또한 무신과 승려들이 경작가능한 토지를 움켜 쥐고 국가권력까지 장악하고 있던 터라 왕조의 힘은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였다.또한 무장 이인임은 공민왕이 피살되고 자신의 의지대로 우(禑)를 보위에 앉히고 국사를 제멋대로 주무렀던 것이다.이러한 상황하에서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해야 하고 흉년이라도 들면 민생고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그래서 전국적인 민란과 봉기가 일어났던 것이다.

 

 

 "간쟁보필(諫爭輔弼)하는 신하는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신하요,군주의 보배라고 했습니다." "간은 임음이 잘못된 계책을 세웠을 때 이의를 제기해서 받아들이면 좋고 아니면 물러난다는 것이요,받아들이지 않으면 목숨을 버리더라도 거듭 간하는 것이 쟁입니다." -P35

 

 정도전과 같은 신진사대부들은 친원반명정책을 쓴 반면 이인임과 같은 인물은 친원반명정책을 고수했으니,서로 엇박자를 보이면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결국 이성계 세력은 신돈,이인임,이색 등을 척살 내지 유배의 길을 걷게 했다.그러는 가운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은 문과에 급제하면서 무장의 신분이었던 이성계는 마음 든든한 자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이방원은 아직 정치권에는 속해 있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주변세력을 착실히 다져 가면서 정치야망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이제 정도전은 유배,유랑,관료생활(전의부령,남양부사,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본격적으로 민생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내놓게 되는데 그것은 전재개혁(田制改革)이었고 구체적인 실행계획,반대세력 대응방안 등은 조준과 함께 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문세족의 사전을 혁파,국가 소유의 공전(公田)으로 편입시킨 뒤 일부는 관료들에게 과전(科田)으로 나눠주어 신진관료층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주고,나머지는 애초 경작했던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P167

 

 수도 개경이 한양으로 천도되면서 개국의 물살은 더욱 거세지고 권력다툼 역시 본격화되어 간다.이성계가 해주에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돌아오던 중 낙마하여 커다란 부상을 입게 되면서 자리에 눕게 된다. 문신으로서 풍부한 경륜과 안목을 갖춘 정몽주는 이성계와는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사이이다.정몽주는 이성계와의 정치적 노선은 비슷하지만 고려를 없애고 새나라를 건설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을 고수한다.이성계가 낙마하여 자리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왔다 가는데,이방원이 정몽주를 불러 놓고 그의 의중을 탐색한다.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 남겠다는 것이다.이미 정몽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던 이방원은 그의 수하들(조영규 등 자객)을 시켜 선지교에서 무참하게 척살하고 참수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새 왕조인 조선을 위해 정도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새 왕조가 훨훨 날 수 있게 깃을 쳐주는 일,그것이 자신의 몫이고 할 일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그리고 그 뜻과 의지,에너지를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백성이 주인이 되고 백성의 삶을 우선시 하려 했던 정도전의 뜻은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과 같이 민생이 극도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로부터 난국에 대한 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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