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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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식은밥 먹기 보다 더 쉬운 것인가! 요근래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들을 보면 개인적 내면결핍과 사회적 불만이 증폭되어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와 같은 범죄유형을 낳고 있다.이러한 범죄유형을 띠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와 격리시켜 정신질환자로 분류해야 하며,교화시키기 위한 심리치료 및 약물복용을 꾸준히 병행.체크해 나가야 한다.물론 이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하지 않겠지만 사회안전망이 허술하다가는 더 많은 인적.물적피해를 낳게 할 수 있기에 사회와 국가는 이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치료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한 노인의 살인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사연이 궁금하기만 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년 전,아니 26년 전인가.하여튼 그쯤의 힘이다. - P7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는 순간 쾌감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노파의 천연덕스러운 넋두리,그 희망,쾌감이 사라져 사람 죽이는 일을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이제 그는 문화센터에 다니며 시공부를 하는 얼치기 시인이기도 하다.게다가 그는 알츠하이머(치매)병에 걸린 치매환자이기도 하여 지난 시절 살인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그에게는 딸 은희가 있는데 아직 미혼으로서 식품의 품종을 개량하는 연구소에 일하고 있는 연구생이다.은희의 친부모는 아마 노인이 죽였던 것 같고,노파는 은희를 고아원에서 데려온 입양아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인이 젊은 시절 무차별적이고 지속적으로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公訴時效)가 지나 사건 수사는 유야무야되고 미제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그러한 가운데 노인은 두렵지 않은 죽음,막을 수 없는 망각 앞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린 자신은 지금의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시간이 지나면서 은희는 자신의 부모의 존재,기억을 되살리려 하지만 그에 걸맞는 파편조각은 남아 있지 않고,은희에게 박주태라는 애인이 생겨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다.그런데 은희의 애인 박주태는 뚜렷한 목적지 없이 야밤을 즐기고 부동산업자 행색을 하면서 밭과 과수원과 같은 한적한 시골땅을 넘보고 있는 것일까.노인은 박주태의 전력과 행적에 대해 묘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경찰대학교 학생들이 장기 미제사건을 골라 조사한다는 과제로 노인의 집에 불쑥 나타나는데 이것은 미제사건과 노인의 행적과의 연관성을 깊게 수사한 결과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한다.'조사하면 다 다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또한 때린 사람은 오그리고 자고,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는 말도 실감난다.진실은 은폐할 수 없는 법이다.김영하 작가가 말했듯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숨이 막힌다' 에 부합된다.

 

 미디어에 보이는 특별한 살인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소리도 없고 절규도 없이 누군가에 의해,어느 조직폭력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겉으로는 미제로 남아 있지만 반드시 용의자의 단서,알라바이,행적 등을 면밀하게 찾아내어 프로파일화하여 재수사를 하고 법의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래야 사회안전망이 살아 나고,법이 무섭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글이 짧아서 쉽게 읽혀지지만 그 이야기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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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과 혼돈의 시대를 걷고 있는 현대인들의 영혼은 건조함과 피로누적으로 점철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인간성의 상실,몰개성과 팽창된 이기주의는 사바나의 정글 존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죠.그래서 불확실하고 혼돈의 시대에서 삶의 성찰과 가치를 발견해 나간다면 순간 순간의 삶이 다소 위안이 되고 한 발 물러서 세상과 타자와의 관계,소통이 원활해지리라 생각합니다.그러한 의미에서 로버트 노직의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는 현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을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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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천재 시계사와 다섯 개의 사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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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소한 일상의 얘기거리를 털어 놓기에 좋은 장소는 동네 미용실,경로당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한다.지난날 시골에서는 농한기에 마을의 사랑방이 있었고,새마을 회관이 있어 적적한 밤을 달래기 위해 장.노년층이 모여 화투도 치고 새끼도 꼬면서 긴 밤을 달랬다.찐고구마,적반,막걸리도 얘기를 나누면서 으례 차려지는 밥상과 같아 차가운 겨울날이 그렇게 냉골과 같지는 않다.시간이 흘러 돈과 물질을 챙겨야 하는 각박하기 그지없는 현 시대에서 '사랑방'과 같은 아날로그 느낌을 주는 환경적 공간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한 지난 시절의 사랑방을 상기시키는 소재가 있으니 바로 시계를 수리하는 시계 공방이 아닐까 한다.

 

 도시개발화에 따라 면,읍단위도 거의가 택지개발로 인해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상전벽해의 꼴이다.토박이보다는 외지인이 많고 사회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웃간에 나누고 생각하는 정(情)도 희박해져만 가고 있다.농촌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도회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불문가지이다.추석 성묘 가는 길에 국민학교,중학교 시절 걷고 뛰놀던 면단위 마을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로변에는 각종 상가로 즐비(櫛比)하기만 하다.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허전하고 공허하기만 하다.기억을 되살리고자 걷고 다녔던 길,사람의 온기는 온데 간데 없다.어쩌다 눈에 띄는 구옥은 앙상하게 잡초가 피어 있는 스레트 가옥이다.면단위도 돈과 물질이 이미 침투하여 지배하게 되었다.과연 사랑방은 어디에 있을까.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라는 제목만으로 어린 시절 조촐하고 비좁은 공간에 망가지고 상처난 시계를 고치는 시계사의 정성스러운 작업 광경이 선연하기만 하다.샬레 위에 아주 작은 시계 부품을 올려 놓고 핀셋으로 집었다 내려 놯다를 반복하면서 고장난 시계를 수리해 주는 시계사의 모습과 단골로 드나드는 손님과의 정겨운 대화의 광경도 이제는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누가 아날로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닐까.핸드폰,스마트폰이 바로 시간을 가르쳐 주는데...그래도 그 시절의 골목길의 광경과 인간적인 훈훈함과 풍성한 사연을 담고 있는 이 글은 도회지와 농촌의 경계지역에 있는 예스러운 풍경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그 주인공이 미용사 아카리와 천재 시계사이면서 스쿠모 신사 상가 회장인 슈지이다.둘은 미혼으로 꽉찬 나이이기에 조그만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하나로 결합할텐데 라는 기대를 해 보았지만 로맨틱한 얘기른 상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은 지천으로 신사가 산재해 있다.일본인의 신화와 의식을 지배하는 신사와 아담하고 좁은 골목길 그리고 상가인지 가정집인지 모를 정도로 안온한 거리 풍경들을 엿볼 수가 있다.간판 추억의 시계를 수리합니다의 계(計)자가 튼실하지 못해 떨어지는 바람에 추억의 시(時: 시간으로 번역)로 둔갑하여 5가지의 사연을 들려 주고 있다.고양이가 발견했다는 오르골 속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사랑인 줄도 모른 체 헤어진 오렌지색 원피스의 비밀,자신의 꿈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죽어간 형의 얘기,빛을 잃은 시계사,어린 시절 여의치 않은 양육문제로 인해 이웃 조부가 키워 주었다는 아카리의 사연을 들려 주고 있다.미용사 아카리는 대각선에 놓여져 있는 시계사 슈지를 자주 만나러 다니고,슈지 또한 붙임성 있게 아카리에게 말을 붙이고 편안하게 대하려 하지만 과년이기에 가끔은 몸과 마음이 떨리고 불이 붙기도 하지만,자제력이 있기에 선을 넘지는 않는다.

 

 국민학교 시절 이웃집에 놀러 가면 큰 방 뒷문 벽쪽에 큰 액자 사진첩에 조부모,부모,형제자매의 사진이 빼곡히 진열해 놓은 모습이 선연하다.앨범이 나왔다 해도 비싼 앨범을 산 여력이 없었기에 큰 사진 액자를 구입하여 한 곳에 기념사진을 진열해 놓고 시간 날때마다,시선이 갈 때마다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기억과 추억을 되살렸던 것이다.지금은 앨범도 한물가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마련하는 시대가 되었다.이 글에서도 예스러운 흑백사진첩에 대한 얘기가 잔잔하게 추억을 되살리면서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특이한 것은 일본에서는 남.녀가 인연을 맺고 혼사를 결정하는 옌니치(緣日)이 있나 보다.남편이 될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렌지색 원피스를 빼입고 신사로 나섰던 가슴 설레이던 날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시계사가 되기 위해 스위스로 연수를 가고 돌아와 보니 형이 죽게 되어 할아버지의 시계가업을 잇게 된 슈지,양할머니의 그림자를 밟고 마음으로 그린 미용사의 꿈을 실현한 아카리는 가까워질 듯 하다 가까워지지 못한 채 이제 아카리는 스쿠모 신사 상가를 떠나게 되고 슈지만 홀로 남아 시계 공방을 지키게 되었다.청년들이 썰물처럼 밀려 가고 노인들만 남은 스쿠모 상가 거리는 마음씨 좋은 천재 시계사 슈지가 있으니 마음 든든하기만 할 것이다.궂은 일,불편한 일이 생기면 내 일로 생각하고 곧장 달려가 기꺼이 무료로 상담하고 고치는 넉넉한 마음씨의 슈지는 스쿠모 신사 상가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가슴 훈훈한 사연도 있고 가슴 찡하면서도 슬픔이 밀려 오는 사연도 있다.일본인의 정령을 지배하는 신사가 곁에 있고 인생 상담사와 같은 천재 시계사 슈지가 있으니 스쿠모 신사 상가 거리는 그리 쓸쓸하지는 않은 것이다.참으로 희미하게만 남은 추억의 시간,각박한 마음을 넉넉하게 되살린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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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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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한 소재에 몽환적인 이야기를 오래간만에 접했다.가지오 신지 작가도 처음 접하는 분이다.SF소설이 그의 처녀작이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판타지 요소가 글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어 긴장감과 흥미가 더해 갔다.그것은 주인공 가쓰노리를 투명인간화하여 유리창 너머로 인간세상을 관조하고 생각하며 판단해 가는 주인공의 역할이 가상하리 만큼 매우 인상에 남게 되었다.

 

 징역 1년 미만의 죄인은 교도소 공간 확보 및 비용 억제 문제로 인해 교도소 수감 생활이 아닌 자택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는 교도소 방침이 매우 이색적인데다 주인공 가쓰노리는 머리에 '배니싱 링'을 늘 끼고 있어야 한다.배니싱 링은 죄인의 의식과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집과 정해진 구역,그리고 음식물을 받아 가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이를 어기면 바니싱 링이 죄인의 목을 꽉 조이면서 고통과 후회를 가중시킨다.비록 수감생활이 아닌 자택에서 형량을 살아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배니싱 링에 형이 감형되어 가는 전자식 날짜가 기록된다는 것이다.군생활할 때 언제 제대할지에 대해 달력에 날짜를 하나씩 지워가던 수기식 제대날짜 기다리기가 연상되었다.

 

 부모를 모두 잃고 혼자가 된 가쓰노리는 직장 생활 가운데 알게 된 여직원 아야나와 가까워지는데 아야나는 활달하면서 사람 관리를 확실하게 하지 않은 타입으로서 전 남친이 아야나와 접촉하면서 불상사가 생길 것을 우려한 나머지 중간 역할을 하려다 그만 과실치상을 입게 하고,결국 형사재판정에 오르면서 징역 8개월의 판결을 받게 된다.징역 1년 미만이고 교도소 원칙에 의해 가쓰노리는 '소실형'수형 생활에 들어가는 것이다.먹고 자고 음식을 받으러 교도소 관리 센터에 가는 것 외에는 집안에서만 뒹글뒹글한다.시간이 흐르면서 가쓰노리도 사람이 그리워지게 되면서 집 근처의 강가,길가 등을 배회하게 된다.그런데 다리 밑에서 노숙자를 만나는데 중학교 동창생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시간이 흘러 그의 형기(刑期)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중학 동창 노숙자를 발견하는데 동창을 살해하려는 중학생들을 몸으로 막으려다 그만 목에 낀 '배니싱 링'이 고장이 나면서 남은 형기 표시가 되지 않고 음식물마저 받을 수가 없게 되버렸다.교도소 관리센터마저 증발이 되어 버려 가쓰노리는 몸과 마음이 붕 떠 있는 상태로 전락해 버렸다.

 

 풀이 죽어 집에 돌아오니 교도소에서 놓고 간 듯 '형기 종료 통지서'가 도착해 있었다.그러한 가운데 가쓰노리는 몽상과 망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알고 있는 나쓰미 여성을 알게 된다.물론 실물로 나타나 대화를 나누고 알게 된 것이 아닌 몽환적인 분위기 가운데 가쓰노리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그리고 허기를 달랠 길이 없어 노숙자 동창을 살려 주면서 챙긴 낚시줄을 강가에 드리워 물고리를 낚아 올려 그것으로 배를 채운다.그는 하는 말과 행동은 타인의 시선과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데,한 신사(神社)에 들러 노파들의 끔찍한 얘기를 듣게 된다.사람을 잡아다 살해하고 장(腸)을 적출하여 '장기밀매거래'를 한다는 것이다.그러한 얘기를 들은 가쓰노리는 그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나쓰미의 행방이 더욱 궁금해지면서 그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결국 나쓰미는 장기밀매거래자들에 의해 죽음 일보 직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마음이 타들어 간다.천신만고 끝에 그가 짜 낸 퍼포먼스는 경찰서의 분할 영상에 잘 띠도록 알몸 퍼포먼스를 하면서 경찰관들의 시선을 끌게 한다.또한 직장 여친 아야나로부터 받은 향수를 조금씩 뿌려 가면서 나쓰미가 있는 구식 병원건물로 경찰관들을 유인하면서 나쓰미는 극적으로 생환하게 된다.아슬아슬하게 흘러 가는 팽팽한 긴장감과 (가쓰노리의)희생정신이 몽환상태에서 알게 된 나쓰미를 살렸던 것이다.

 

 가쓰노리 자신은 철책 건너편으로 투신하여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살리려 했던 살신 정신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야기의 전체에 깔리고,주인공 가쓰노리의 실팍하지 못한 삶의 역정과 절체절명에 놓인 한 여성을 살리려는 고귀하고 진실된 마음에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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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말
최강민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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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겉무늬만 화려하고 요란만 잔뜩 풍기고 있음을 몸과 마음으로 뼈저리게 느낀다.그것은 물리적,환경적,정신적인 면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속칭 속 빈 강정과 같은 꼴이라는 것이다.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정밀하게 해부할 처지와 입장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면서 사회는 소수계층 위주로 돌아가고 대다수 중산층 이하는 소수계층이 짜놓은 사회제도,사회시스템이라는 카르텔에 종속되고 말았다.정치 민주화가 되었으면 뭐 하냐,생각과 감정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사회의 약자를 배려하려는 상생의 설계도가 빈약한데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입에 담을 수 있고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외칠 수가 있단 말인가.게다가 작금 세수(稅收)확보<우회 증세> 차원에서 물가를 올리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졸속 행정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어느 계층을 위한 일이고 어느 계층을 죽이는 일이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한국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기 위한 길로서 흑백논리를 떠나 다양성이 존중받고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마음으로 바란다.386세대로서 대학시절 4월만 되면 대학가는 정치민주화를 요구하기 위해 투석과 최루탄이 난무했다.간절히 바라면 된다고 하듯 결국 정치민주화가 대학생 및 뜻있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 성취되었다.어느 덧 27년이 흐르고 사회의 모습도 상전벽해와 같이 변했다.그런데 정치 민주화의 본모습은 어느 곳에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국가를 대표한다고 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 본모습을 찾을 수가 없으며,지역 일꾼이라고 하는 의원들 조차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하듯 색깔과 이념도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왜 이렇게 되었을까.모두가 자본의 권력 즉 '밥그릇 챙기기'라는 생존 본능으로 똘똘 뭉쳐져 있기 때문일까.그래서 정치하는 사람,정치 얘기는 신물이 날대로 나버려 아예 관심 밖이 되버렸다.김지하 시인이 1970년 발표한 오적(五賊) 즉,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將星),장차관이 생각난다.높으신 신분,지체로 조직과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오적에다 언론,사법권은 어떠한가.모두가 밥그릇 쟁탈전에 극(極)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 평론계의 어제와 오늘의 풍조에 대해 분야와 사례를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는 최강민 평론가의 《고독한 말》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힘은 자본에 있다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자본의 힘은 누구나 소유하고 싶은 선망이고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자본이 있어야 사람 행세를 할 수가 있으며 행복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실상이다.20세기 초반 한국 사회에 태동하기 시작했던 동인지,문학 평론지를 비롯하여 해방후 시대별로 평론지는 정권의 코드의 부합여부에 따라 생멸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현재는 출판 자본을 기축으로 문예지는 난쟁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겨우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평론지도 베스트셀러 위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학창 시절 많이 접했던 월간지,계간지,주간지는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정도이다.설상가상으로 온라인 웹진 시대의 발흥으로 오프라인 평론지의 운명은 암울하기만 하다.

 

 권력에 저항했던 작가들의 쓴소리,바른 소리는 정권에 빌붙은 계층에 의해 흑백논란으로 번지고,우상으로 받들어졌던 인물들이 생각과 이념이 바뀌면서(개인적,사회적 환경) 변절(變節)로 개인의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또한 신자유주의가 기업의 유연화를 내세우면서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시대의 돌연변이를 낳았는데 그 피해자는 오갈데 없는 철거민의 참상이었다.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용산 철거민 대참사>의 처음과 끝 모두 철거민의 아픔과 고통,애환의 연속이었다.법정에서 언도된 판결도 철거민의 편이 아니었다.게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거대 자본,인지도가 높은 출판 자본을 바탕으로 좋은 학벌 모시기에 급급하면서 작가의 잠재력,능력보다는 판매부수,영업력에만 모든 것을 거는 출판업계의 실상을 접하니 반신반의했던 마음이 전의(全疑)로 전락하고 말았다.이제 출판업계,평론지도 자본력,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장될 것이라는 것이다.교수사회,작가 사회,출판 업계,현실 정치와 사회 모두가 현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어야 하고 맞춰 나가지 않으면 토사구팽 당하는 것이 불문율이다.자신의 소신과 색깔을 낼 수가 없게 되었다.이에 굴하지 않고 소신과 색깔을 잃지 않고 대쪽과 같이 나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자본의 힘에 굴복하여 마지 못해 따라가는 천민(賤民)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초상화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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