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천재 시계사와 다섯 개의 사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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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소한 일상의 얘기거리를 털어 놓기에 좋은 장소는 동네 미용실,경로당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한다.지난날 시골에서는 농한기에 마을의 사랑방이 있었고,새마을 회관이 있어 적적한 밤을 달래기 위해 장.노년층이 모여 화투도 치고 새끼도 꼬면서 긴 밤을 달랬다.찐고구마,적반,막걸리도 얘기를 나누면서 으례 차려지는 밥상과 같아 차가운 겨울날이 그렇게 냉골과 같지는 않다.시간이 흘러 돈과 물질을 챙겨야 하는 각박하기 그지없는 현 시대에서 '사랑방'과 같은 아날로그 느낌을 주는 환경적 공간은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한 지난 시절의 사랑방을 상기시키는 소재가 있으니 바로 시계를 수리하는 시계 공방이 아닐까 한다.

 

 도시개발화에 따라 면,읍단위도 거의가 택지개발로 인해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상전벽해의 꼴이다.토박이보다는 외지인이 많고 사회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웃간에 나누고 생각하는 정(情)도 희박해져만 가고 있다.농촌이 이 모양 이 꼴인데 도회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불문가지이다.추석 성묘 가는 길에 국민학교,중학교 시절 걷고 뛰놀던 면단위 마을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로변에는 각종 상가로 즐비(櫛比)하기만 하다.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허전하고 공허하기만 하다.기억을 되살리고자 걷고 다녔던 길,사람의 온기는 온데 간데 없다.어쩌다 눈에 띄는 구옥은 앙상하게 잡초가 피어 있는 스레트 가옥이다.면단위도 돈과 물질이 이미 침투하여 지배하게 되었다.과연 사랑방은 어디에 있을까.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라는 제목만으로 어린 시절 조촐하고 비좁은 공간에 망가지고 상처난 시계를 고치는 시계사의 정성스러운 작업 광경이 선연하기만 하다.샬레 위에 아주 작은 시계 부품을 올려 놓고 핀셋으로 집었다 내려 놯다를 반복하면서 고장난 시계를 수리해 주는 시계사의 모습과 단골로 드나드는 손님과의 정겨운 대화의 광경도 이제는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누가 아날로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닐까.핸드폰,스마트폰이 바로 시간을 가르쳐 주는데...그래도 그 시절의 골목길의 광경과 인간적인 훈훈함과 풍성한 사연을 담고 있는 이 글은 도회지와 농촌의 경계지역에 있는 예스러운 풍경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그 주인공이 미용사 아카리와 천재 시계사이면서 스쿠모 신사 상가 회장인 슈지이다.둘은 미혼으로 꽉찬 나이이기에 조그만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하나로 결합할텐데 라는 기대를 해 보았지만 로맨틱한 얘기른 상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은 지천으로 신사가 산재해 있다.일본인의 신화와 의식을 지배하는 신사와 아담하고 좁은 골목길 그리고 상가인지 가정집인지 모를 정도로 안온한 거리 풍경들을 엿볼 수가 있다.간판 추억의 시계를 수리합니다의 계(計)자가 튼실하지 못해 떨어지는 바람에 추억의 시(時: 시간으로 번역)로 둔갑하여 5가지의 사연을 들려 주고 있다.고양이가 발견했다는 오르골 속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사랑인 줄도 모른 체 헤어진 오렌지색 원피스의 비밀,자신의 꿈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죽어간 형의 얘기,빛을 잃은 시계사,어린 시절 여의치 않은 양육문제로 인해 이웃 조부가 키워 주었다는 아카리의 사연을 들려 주고 있다.미용사 아카리는 대각선에 놓여져 있는 시계사 슈지를 자주 만나러 다니고,슈지 또한 붙임성 있게 아카리에게 말을 붙이고 편안하게 대하려 하지만 과년이기에 가끔은 몸과 마음이 떨리고 불이 붙기도 하지만,자제력이 있기에 선을 넘지는 않는다.

 

 국민학교 시절 이웃집에 놀러 가면 큰 방 뒷문 벽쪽에 큰 액자 사진첩에 조부모,부모,형제자매의 사진이 빼곡히 진열해 놓은 모습이 선연하다.앨범이 나왔다 해도 비싼 앨범을 산 여력이 없었기에 큰 사진 액자를 구입하여 한 곳에 기념사진을 진열해 놓고 시간 날때마다,시선이 갈 때마다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기억과 추억을 되살렸던 것이다.지금은 앨범도 한물가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마련하는 시대가 되었다.이 글에서도 예스러운 흑백사진첩에 대한 얘기가 잔잔하게 추억을 되살리면서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특이한 것은 일본에서는 남.녀가 인연을 맺고 혼사를 결정하는 옌니치(緣日)이 있나 보다.남편이 될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렌지색 원피스를 빼입고 신사로 나섰던 가슴 설레이던 날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시계사가 되기 위해 스위스로 연수를 가고 돌아와 보니 형이 죽게 되어 할아버지의 시계가업을 잇게 된 슈지,양할머니의 그림자를 밟고 마음으로 그린 미용사의 꿈을 실현한 아카리는 가까워질 듯 하다 가까워지지 못한 채 이제 아카리는 스쿠모 신사 상가를 떠나게 되고 슈지만 홀로 남아 시계 공방을 지키게 되었다.청년들이 썰물처럼 밀려 가고 노인들만 남은 스쿠모 상가 거리는 마음씨 좋은 천재 시계사 슈지가 있으니 마음 든든하기만 할 것이다.궂은 일,불편한 일이 생기면 내 일로 생각하고 곧장 달려가 기꺼이 무료로 상담하고 고치는 넉넉한 마음씨의 슈지는 스쿠모 신사 상가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가슴 훈훈한 사연도 있고 가슴 찡하면서도 슬픔이 밀려 오는 사연도 있다.일본인의 정령을 지배하는 신사가 곁에 있고 인생 상담사와 같은 천재 시계사 슈지가 있으니 스쿠모 신사 상가 거리는 그리 쓸쓸하지는 않은 것이다.참으로 희미하게만 남은 추억의 시간,각박한 마음을 넉넉하게 되살린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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