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보다 높은 향기
김재형 지음 / 지식과감성#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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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우리는 무언가에 극도로 감탄했을 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감탄이라고 하는 것은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의 즐거움이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유할 수 없는 가슴속 공명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슬픈 감정도 감탄에 포함시키려 합니다.

                                                                    (509쪽) 


  연애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역시 연애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가을을 탄다. 가만히 있는데도 계절의 변화만으로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기도 하고, 괜시리 멍 때리고, 길가에 뒹구는 낙엽과 스치는 바람에 민감해지는 시간, 이런 시간 함께 해 보라며 추천받은 책이다.



  연애소설은 잘 공감도 안되고, 유치하고, 뻔하고, 결말도 대충 그려지는 편견이 있어서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몰입력이 좋았다. 첫사랑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때의 설레는 풋풋한 감정과 어리숙함, 처음이기에 가능했던 용기와 무모함, 그리고 이별과 아픔. 소설의 내용과 유사한 사랑은 아니지만 그 때 그 시절의 감성과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주인공이 겪은 감정과 행동을 따라가며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투영되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공대생의 글솜씨지만, 저자가 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이과형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진리 탐구에 대한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 천성과 긴 시간의 사색을 즐길 줄 아는 습관이 받쳐줘야 합니다. (510쪽)


  저자가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태도를 언급했는데, 과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긴 시간의 사색은 과학자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혹시나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우연히 이 포스트를 접할까봐, 소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주인공이 '청춘'과 '어른'의 한가운데, 서 있다고 여기는 그 감정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나는 청춘과 어른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

 

    


"타인과 쉽게 공유할 수 없는 가슴속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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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보기 좋은 날 - 내 가방 속 아주 특별한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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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접한 책이다. 초반에는 그다지 다가오는 글귀는 아니었는데, 다양한 그림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에도 몰입할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림을 담지 않고, 저자의 이야기에 따라 담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주로 많이 보았던 르네상스 시대나 17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그림보다 19세기 화가와 그림을 많이 알게 되었다.



  보통 청소년기에 자아정체성을 확립해야한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자아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10대 때 자아정체성이 지금보다 뚜렷했던 것 같다. 나도 여전히 청년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어린 청년들이 할 법한 진로고민을 안고 산다. 이런 저런 생각 중 음악을 했더라면, 미술을 했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을 한다. 

  여행을 가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오래 머물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림과 소통하고, 상상하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림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보며 감탄하고, 그림 안에 담긴 역사를 좋아한다.(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다지 적성에 맞지는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그림 감상을 좋아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그림 중에서 ,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
보는 순간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것,
설명할 수는 없어도 박하사탕처럼 쏴 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던진 의문이나 삶의 가치가 
나에게 의미가 되는 것,

그런 그림을 만난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명화를 만난 것이다.
(p.357)
  
순간 내가 좋아하는 그림 몇 점이 머릿 속을 지나갔다. 이미 명화를 만났다는 것과, 그 명화로 인해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 짜릿하게 떠올랐다. 
 

늘 그렇듯 사랑은 쉬운 말로 시작된다.
오늘 입은 옷이 참 어울린다거나 날씨가 너처럼 참 맑다거나, 
그렇게 간단하고 상투적인 말이 진리가 되어 마음에 무지개를 만든다. 
그림 속 그녀의 사랑도 오늘은 무지개 같은 날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사랑은 쉬운 말로 끝난다.
평범했던 사이가 특별해지는 순간 사랑이 시작되었듯 
특별했던 우리가 평범해지고 지겨워지는 순간 사랑은 끝난다.
찬란했던 순간도, 잊지 못할 기억도 
한바탕 시끄러웠던 불꽃놀이처럼 막을 내린다.
(p.301)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듯, 사람이든, 그림이든, 모든 만남도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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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부' 이승만 평전 -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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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다 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은 처음이다. 읽다가 화가 나서 책을 덮고, 웹툰이나 만화책을 보았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이승만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철저히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빙의해서 읽었다. 그래도 참, 해도해도 너무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굉장히 디테일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이승만의 행적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독부' 이승만, 이 말은 자유당 말기 심산 김창숙 선생이 칭한 것이라고 한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라는 뜻이다. 독부, 독재자, 하지만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그들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항변한다. 이승만의 행적을 통해 사람들이 각자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의 모든 행적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행적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1. 1908년 스티븐슨을 처단한 장인환 의사의 통역 의뢰를 받고 "예수인 신분으로 살인재판을 통역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2. 105인 사건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시련을 겪었을 때 미국인 친일 목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900명이 구속되고, 105명이 기소된 사건이고 그 중 미국인 24명이 구속되었다.


3. 1919년 2월 정한경과 "위임통치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4.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직과 상하이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을 '대통령'으로 행세했다.


5. 1922년 상하이임시정부 의정원은 이승만의 독선적 행위과 독립자금의 사적 유용 등의 5개항 사유를 들어 대통령직에서 탄핵했다. 또 임정은 1925년 이승만이 위원장으로 있는 구미위원부를 폐지했다.


6. 하와이 체류 중에 한인사회단체를 자기중심체제로 바꿔 교민사회를 분열시켰다.


7. 1946년 정읍 발언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8. 반민특위를 와해시키고, 친일파를 중용하였다.


9. 제주 4.3 사건 때 관련 법률도 없는 게엄령을 선포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정적 제거와 언론 탄압에 활용했다.


10. 북진통일을 주장했지만, 북한의 남침에 전쟁이 발발하자 후방으로 이동하여 서울시민을 속이고, 죄 없는 양민들을 용공분자,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이승만 정부 아래 자행되었던 많은 양민학살사건.


11.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된 경제 정책이 없어 국민들은 경제난에 허덕이는데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면서 반공ㆍ독재체제를 강화하며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몰두했다. 그 것이 3.15 부정선거를 통해 극에 달했고, 결국 4.19혁명이 발생했다. 4.19 당시 학생시민들에게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공적으로 여겨지는 외교독립론이 있다. 하지만 궁금한 점은 그가 외교독립론을 주장했지만,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면, 왜 미국은 한국임정을 승인하지 않은걸까? 한국임정이 승인되지 않은 점이 오롯이 이승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의사소통도 되는 그가 했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독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일제강점기에 사는 사람이라고 상상을 해보면, 독립을 향한 방법에 있어 무장독립투쟁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버리면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 것을 꼭 친일과 연결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승만이 보였던 언행(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 국내 학생들에게 반일운동보다 해외유학 권장 등)은 그가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의로운 일, 공익보다 권력 욕심이 더 앞섰던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정읍 발언이나 1948년 5.10 총선거 때 상대 후보인 최능진의 입후보를 방해하고 무투표로 당선되었던 점을 보면 분명 권력욕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 때 가슴이 아팠던 역사가 있다. 상대 후보였던 최능진은 독립운동가 출신인데, 한국전쟁 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쓰고 총살형을 당했다. 원통한 것은 최능진을 총살한 사람이 일본 관동군 출신 김창룡이다. 최능진 사건은 재심 소송을 통해 지난달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독립운동가가 독립 후에 그릇된 공권력 행사로 생명을 잃었다. 이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떻게 보면 이승만은 권력욕이 있는 정치인이었고, 또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감각도 뛰어났던 것 같다. 그의 친일적인 언행은 하와이에 일본인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장인환 의사의 통역 거부한 것도 미국 주류사회의 여론이 그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다. (예수인의 신분으로 살인재판을 통역할 수 없다라...... 법에 근거하지 않고 행사했던 계엄령이나 4.19혁명 때 발포, 이승만 정부 하에 있었던 국민방위군 사건,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문경양민학살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등에서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은 무엇일까?) 해방 이후 반소, 반공, 친미를 주장하며 미군부와 긴밀하게 지냈던 점, 미군용기를 타고 귀국했던 점 등은 그의 정치감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의 이런 정치감각이 개인의 욕심보다 국가를 위해 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있는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4.19민주이념이란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시민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승만은 그 부당한 권력의 핵심이었던 독재자이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갔다. 시민들은 그의 동상을 끌어내렸다. 그런데 다시 그의 동상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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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 / 책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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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겸손하고 낮은 권력을 지향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서민적이고, 소탈했다. 그가 이룬 성과와 그가 남긴 아쉬움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될 것이고, 또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기록을 남긴 저자가 전하는 못다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면보다 리더십을 보려고 했다.



  어떤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역사 속에 남겨진 전직 대통령에게서 어떤 리더십을 배울 수 있을까,



  통 큰 디테일 : 기본이 갖추어질 때까지는 까다롭게 간섭을 하지만, 일단 기본이 갖춰진 후에는 사람에게 믿고 맡긴다는 것, 그리고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진다는 믿음을 보여주며 실무자가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년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세종이 떠올랐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인에 대한 비호감 : 평소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치에 몸담고 있으면서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바보들이 정치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를 경멸할 때 불편해하며 했던 이 말도 인상적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인간의 존엄성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사건, 높은 청년 실업률, 빈약한 노후 대책, 주택 문제, 노동 개악, 누리 과정 등등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집행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나는 인간에 대해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고유의 독자적인 언어와 논리체계 : 타인이 써준 원고와 메모만 읽으며, 정해진 각본에 따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지도자보다 다수의 사람들과 자유로운 발언과 질의응답을 할 줄 아는 지도자가 현 시대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인간관계 마인드를 지니고, 토론을 좋아하는 지도자,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지도자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똑똑하고 합리적인 국민들이 그런 지도자를 알아보고 표를 줄 수 있을까?

 


  통합과 대화가 실종된 요즘의 대한민국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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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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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방자전'이 떠올랐다. 당시 방자전을 보면서 영화 자체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춘향전을 방자의 입장에서, 각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 기억에 남았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발상으로 익숙한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책은 임진왜란이라는 익숙한 역사적 배경을 조선의 입장이 아니라 일본군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신선했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가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읽으면서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우리가 침략을 당한 입장인데, 내가 이 소설을, 등장 인물을 인간적으로 느껴도 될까? 이 의문은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답을 해주었다. 어떤 전쟁도 정의로울 수 없다. 전쟁은 개인의 가족, 삶, 일상, 미래를 잃게 만든다.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인간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글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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