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잭 웨더포드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제목을 먼저 음미해서는 안된다. 원제는 ‘Savages and Civilization'인데, 한국어판으로 되면서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짜릿한 선택적 어구가 그 뒤에 붙었다. 그러나 제목처럼 이 책은 자극적이지도 않으며, 숨 가쁜 논쟁이 이어지는 책도 아니다.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긴 호흡을 요하고 있다. 잭 웨더포드는 각 장마다 세계의 한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 곳은 아프리카의 말리가 되기도 하고, 러시아의 바이칼호가 되기도 하고, 아메리카의 볼리비아가 되기도 한다. 원주민의 삶을 자세히 투영해보거나, 야만과 문명의 양상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한올 한올 풀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러면서도 인류문명을 시대순으로 얘기하고 있다. 현재의 땅에 서서 현실을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 인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 우리 세계에 아직도 여러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의 단증이기도 하다.

저자는 크게 역사를 3단계로 나눈다. 고대문명에서 15세기경까지 이르는 부족문화와 다양성의 문화가 존재하는 시기다. 원시시대부터 유목민문화, 정착생활, 세계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진보를 가져오는 원동력은 서로 다른 문화집단 간의 역동적인 긴장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나, 각 문화집단은 그 나름대로 제 기능을 훌륭히 수행해왔다는 것을 얘기한다. 나아가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일으켰다는 것 또한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농경은 채집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지만, 기대 수명이 짧아지고 키가 작아지며 질병이 많아지고 영양 상태가 나빠지며 주기적으로 기근을 겪는 등의 대가를 치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 다음이 근대의 국민문화와 세계 질서가 대두되는 시기다. 그러나 국민문화와 세계 질서는 접촉이 있을 때마다 부족민과 다른 문명을 끊임없이 파괴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를 창조하려고 애썼으나, 근대의 국민주의 문화는 그들이 지배한 넓은 지역에서 획일성을 강요한다.

획일성은 파괴를 낳는다. 유럽에서 싹튼 세계문명은 유럽을 빠져나와 카나리아 제도, 카리브해 원주민, 아메리카 주민,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를 깡그리 말살해갔다. 현대 세계는 반대나 변이나 일탈을 거의 용납하지 않았고, 특정 사회체제에 맞는 획일적인 주민들을 요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세계문화의 혼란기에 접어들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 혼란의 정체는 지금이 위기의 끝에 서 있다는 진단과 일맥상통한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역병, 환경교란 등의 이유로 비교적 갑자기 무너진 문명의 예가 많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단일한 지구 문명으로 통일되어 있어 단지 한 문명의 몰락이 아니라 세계문화의 몰락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저자는 더욱 심각성을 두고 있다. 한 부분의 멸망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지구 전체를 휩쓸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최근 1만년이라는 기간은 채집으로부터 모종의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생활방식으로 옮겨 가는 과도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낙관적으로 보든, 비관적으로 보든,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의 커다란 한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문명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이 순간, 저자는 우리 문명 스스로 아마겟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난제는 획일적으로 살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사는 것, 즉 상업, 대중문화, 통신 등과 같은 세계적인 힘에 의해 통일되면서도 종교나 민족성 등과 같은 분야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평화로이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닥칠 위험이 있는 문제들을 우리가 극복하려면 모든 문화가 지니고 있는 모든 지식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이브 폰팅은 ‘녹색세계사’를 통해 세계사를 환경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바 있다. 다니엘 네틀과 수잔 로메인은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을 통해 언어의 다양성 말살이 우리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책도 비슷한 맥락에 서 있다. 문명의 발달과정이 파괴의 역사를 걸어왔다는 지점에서는 환경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고, 문명의 다양성 입장에 굳건히 서서 문화 또는 문명의 획일성이 문명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얼마전만 해도 문화적 상대성은 상대편 문화에 대한 똘레랑스를 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관점은 다소 점잖은 태도로 느껴진다. 상대방이 없으면 자신도 없다는 절박감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제목은 수정되어야 한다. 야만과 문명은 분리된 다트판으로 우리가 화살을 던져 살아남을 쪽을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해야 하며 그 관점에서 그 둘은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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