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슬로 라이프’라는 단어에는 벌써 많은 얘기가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언뜻 가깝고 친근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이 단어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음미해본다면 멀고 무겁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 단어에는 현재를 부정하고 현재를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를 자극하는 마력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행동화까지 이끄는 용기까지는 쉽게 주지 못하는 듯 하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의 삶은 복잡다단한 네트워크와 사슬로 묶여 있어 조그마한 고리 하나도 자유롭게 떼어내기 어렵다는 것과 긴밀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또한 슬로 라이프를 현재의 부정이나 탈출을 넘어 대안적 세계관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이의 방향으로 단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슬로 라이프는 현재의 주류문화, 주류가치관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식으로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관 또는 삶의 양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계 일본인인 쓰지 신이치(한국명 이규)의 『슬로 라이프』는 이점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슬로 라이프’라는 말은 저자가 처음 세상에 퍼뜨린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1999년 ‘나무늘보 친구들’이라는 NGO를 결성해 슬로 라이프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기도 하다.

‘슬로’ 또는 ‘심플’이라는 사상은 부분적으로는 이 세상의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슬로푸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의 생산양식이나 소비양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아무리 논리적 우월성을 띠었다 해도 항상 소수파의 입장이 될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단순히 시간이 걸리지 않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패스트푸드를 음식이나 요리법뿐만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활,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산업 구조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양식이자 사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결국 슬로푸드운동은 대안적인 음식에 대한 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양식에 대한 운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광란의 속도에 휩싸여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인 근로자들은 1970년대에 비해 연평균 142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현대과학기술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바쁘게 만들고 있다는 역설이다. 자신의 다이어리에 빼곡히 일정이 적혀있지 않으면 그 여백으로부터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 불안해서 못 견디는 ‘여백증후군’도 있다.

이러한 것이 발생하는 기본적인 정서가 ‘공포’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경쟁을 떠받치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가 제거되지 않는 이상, 경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대사회는 안심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고, 자유와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도록 부추겼으며, 그 너머에 도달해야만 안심이 있는 것처럼 믿게 했다. 슬로 라이프란 바로 이러한 안심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안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자는 ‘씨앗이 자라나는 속도’를 넘어선 곳에는 공포만 있을 뿐 안심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연의 시간에 인간의 삶을 순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적 시간을 자연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자연의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차원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발상법인 ‘시간이 돈’이라는 말 대신에, 모든 것을 시간으로 환산하는 ‘돈이 시간’이라는 말로 발상을 전환하자거나, 생산자와 소비자가 제휴하여 유기농업을 키워 온 것처럼, 유기공업을 키워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저자의 제안이 신선하다.

저자는 이러한 시각에 의해서 걷기, 게으름, 패스트푸드, 반세계화, 경쟁, 슬로 러브, 지구 온난화, 비폭력, 전쟁, 진보, 남북문제, 언플러그, 비전화(非電化), 친환경주택, 육식, 에코 투어리즘, 슬로 카페, 슬로 섹스 등 모든 사회현상을 걸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장시간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어슬렁어슬렁 보내는 사람들에게 슬로 라이프는 구세주 철학인가? 안타깝게도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진짜 슬로 라이프는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활기차고도 역동적인 생활 방식에 있다도 못을 박고 있으니 단순히 게으른 사람에게는 슬로 라이프가 탈출구가 되지는 못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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