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조 사후 흑산도에 유배되어 『자산어보』 등을 지으며 민초들과 삶의 애환을 같이 나누다 끝내 유배지에서 죽은 정약전, 그는 정약용의 둘째형이다. 고문 속에서도 끝내 신앙을 버리지 않고 참수당한 정약종, 그는 정약용의 셋째형이다. 그 외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인 신부에게 영세를 받고 결국 신유박해 때 사형 당한 이승훈, 그는 정약용 형제의 매형이다. 그리고 지배세력에 맞서 개혁을 시도하다 이를 유배지에서 학문으로 승화시킨 정약용.

18세기 후반 정조시대를 맞아 새 시대를 온몸으로 밀고 가고자 했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어느 누구도 고문, 사형, 유배를 피할 수 없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지배세력에 의해 꿈이 좌초된 그들의 비망록이자, 결국은 죽음으로 또는 학문으로 꽃을 피워낸 그들의 서사시다.

지난 시기에, 나라를 지킨 영웅이나 임금, 정승은 교과서에 수많은 일화가 소개되기도 하여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고자 했던 이들에 대한 지식은 어딘지 얄팍하다. 정약용도 그렇다. 화성을 설계하고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실학자라는 설명을 넘어서기 어렵다. 『여유당전서』는 물론 그의 많은 책들이 아직도 국역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초라한 현실의 한 단면이다.

『정약용과…』는 소설과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정약용 형제에 대한 서술이지만, 그 중심에는 단연 정약용이 있다. 한번 그의 생애를 접해보려 할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정약용의 인생의 전반부가 개혁정치를 편 정조의 힘이 되어 현실정치를 개혁하려는 시기였다면, 후반부는 유배지와 고향땅에서 학문을 통해 개혁사상을 완성하는 시기였다. 전반부가 번뜩이는 재능과 열정의 시기였다면, 후반부는 시대에 대한 책임의식을 학문으로 승화시키는 시기였다.

일가가 참화를 입어 정약용 역시 기약 없는 유배 생활을 할 때 정약용이 그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소개되어 있다.

"폐족은 과거에 나가는 것이 기피될 뿐이지 성인(聖人)이 되는 길이야 기피되지 않는다.…기피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폐단이 없어서 크게 낫기도 한 것이다"

편지의 말대로 정약용은 성인의 길로 나아갔다. 유배지에서 17년,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18년 동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단절된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여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한 것이다. 모든 힘이 차단된 상황에서 글로서라도 자신의 개혁사상을 남기려 한 것이자, 당대로부터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후대로부터 평가받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발표해 온 조선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 단순히 사료를 직접 소개한 것이 아니라 이를 대화체 등의 형식으로 재구성해내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사료를 살아있는 역사로 재미있게 살려냈다.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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