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이반 일리히 전집 3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존 라이언은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을 통해서 우리 인류 모두가 지구를 덜 망치고 오래도록 함께 쓸 수 있는 물건 7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가장 먼저 자전거가 소개되고, 연이어 콘돔, 천장선풍기, 빨랫줄, 타이국수, 공공도서관, 무당벌레 등이 ‘7가지’에 선정되었다. 우리는 자전거의 장점을 익히 알고 있는데다, 라이언이 자전거문명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라이언의 얘기에 공감을 하며 부담감도 크게 가지지 않는다.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접할 때 독자들은 보통 라이언식의 접근방식을 기대할 것이다. 원제인 ‘Energy and Equity'(에너지와 공정성)를 의역한 제목도 그에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리히는 우리 문명의 근원적인 문제점으로까지 깊이 파고들기 시작한다.<행복은...>은 <학교 없는 사회>, <병원이 병을 만든다>와 더불어 일리히의 현대문명 비판서라 할 수 있다. 그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는 강제적인 학교교육이 학습을 위한 환경을 파괴한다고 주장했고,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는 의술이 자본주의와 손을 잡으면서 ‘인간의 자율적인 치료’가 망쳐졌다고 주장했다. 이의 연장선에서 <행복은…>에서 일리히는 단순한 자전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에너지 사용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학교, 병원에 이어 교통수단이라는 자본주의의 성공적인 사회적 산물에 비판적 메스를 댄 것이다.

일리히는 미국에서는 총 에너지 사용량의 25%에서 40% 사이가 수송수단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 보통 사람이 하루에 일어나 있는 16시간 중에서 차를 운전하거나 그것을 운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재원을 모으기 위해 소비한 시간을 따지면 무려 4시간이나 된다.

일리히는 ‘1인당 소비하는 에너지가 어떤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어떤 사회의 정치체제나 문화적 환경도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된다’면서 에너지 사용량을 낮추어야만 한다고 얘기한다. 이를 교통문제에 적용하면 ‘속도’를 낮추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속도가 어떤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수송은 교통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시간 부족이 증대하기 시작하고, 특히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가 질곡으로 치닫는다고 진단한다. 그 한계는 대략 시속 15마일 정도되는 속도이고, 이러한 속도를 유지할 때 자율적 이동체계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최적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이다.

일리히는 단지 교통을 환경적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체제의 문제, 인류의 삶의 양식의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얘기했듯, 그 해결방식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우리가 이반 일리히의 지적을 편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의 교통수단과의 ‘조화’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역’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히는 이상적인 교통체제로 ‘자동차화된 수송의 속도가 수송을 자율적 이동의 보조에 멈추게 하는 정도의 것에 한정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율적 이동의 우월적 지위가 보장되는 한도 아래서 자동차 등에 의존하는 타율적 이동이 존재토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최적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의 한도를 정치적으로 결정지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율적 교통수단으로부터 ‘독립’해야만 할뿐더러 부(富)로부터 의연해야만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반 일리히가 1970년대 주장한 이후 탈산업화가 아니라 초산업화를 향해 치달았다. 뒤로 돌리면 절대 앞으로 가지 않는 자전거 페달처럼, 에너지 사용 및 수송 속도는 다른 문명 이기(利器)처럼 극심한 불가역성의 성질을 보여주기만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심각성’으로 인해, 이반 일리히의 30년 전의 외침을 현재에서도 불러내 음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에는 낭만적 감성이 깃들어 있지만, ‘교통’, ‘속도’에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환경은 이제 ‘자전거’를 넘어 ‘속도’의 문제에 대한 인류의 결단을 요구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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