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위안 - 산문이 있는 풍경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 수 있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고 합니다.

정호승씨의 산문집 <위안>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호승씨의 산문은 어떤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엄격하다. 그 성찰은 곧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자,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모든 고통과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 결과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삶을 찾는다.

정호승씨의 성찰은 "나 자신을 햇살에 드러나는 먼지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먼지를 드러내는 햇살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방으로 스며드는 햇살에 의해서 드러나는 먼지를 보면서 자신은 햇살이 아니라 먼지다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만이 이를 자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각이 있는 사람만이 먼지에서 햇살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 법이다.

정호승씨의 글에는 단지 자각만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과 모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이를 딛고 일어서려는 울림이 잔잔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고통이라는 노둣돌이 있음으로써 보다 쉽고 안전하게 말에 올라타 인생이라는 들판을 힘차게 달릴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고통은 자신을 억누르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안고 가야할 하나의 존재로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다음의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송봉모 신부는 십자가는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안거나 품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면 그것은 고통이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가면 그것은 곧 포용이자 기쁨이라고 말한다."

정호승씨은 자기 자신을 향해 엄정하게 겨누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항상 결론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향할 때는 날카로운 칼이지만, 그 칼의 방향을 바꾸어 세상을 향해 다가설 때는 따뜻한 시선으로 변해 있다. 그것이 정호승씨가 인간을, 자연을 껴안는 방식이다. 거대담론을 얘기하거나 사회의 변화를 얘기하지는 않지만, 정호승씨가 파고드는 성찰과 그 성찰의 결과로 던지는 따뜻한 시선은 잔잔한 파문이 되어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정호승씨는 '광야의 시인'이란 글에서 "삶이 뒷받침되지 않은 시란 없으며, 삶의 진실이 뒤따르지 않은 시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점을 나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한 시인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떠한 작품을 썼느냐보다도 더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은 정호승 시인의 삶이 잔잔하게 투영된 산문집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의 가슴에 세상을 향한 작은 창 하나 낼 수 있는 시인, 정호승씨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