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의 법칙 - 왜 조직이 커질수록 낭비가 많아지는가, KI 465
노스코트 파킨슨 지음, 김광웅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게젤샤프트에 속하는 조직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항상 풀어야 할 숙제다. 자신의 가치를 조직 속에서 실현해야 하는데, 조직은 자신에게 대립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여 모순적 관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영을 다루는 서적에서 조직은 언제나 골치아프면서도 달콤한 화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파킨슨의 법칙>은 조직을 주로 다루고 있다. 어느 누구나 느끼는 조직의 모순, 특히 관료적인 조직의 모순을 다루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파킨슨이 1955년에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다수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관료적인 조직에 대한 반감이 이제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시대이성'으로 올라선 느낌이다.

'파킨슨의 제1법칙'은 접하는 이를 금방 매료시킨다. "공무원 수는 일의 양에 상관없이 늘어난다"라는 명제는 조직생활의 안일함에 젖어있는 새태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들어온다. 파킨슨은 자신이 영국 해군 사무관에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법칙을 연구했다. 그 사례는 신랄하다 못해 끔찍하다. 1914년에 비해 1928년에 주력함정의 수는 68% 감소했는데, 오히려 동일 기간에 해군본부 관리의 수는 78% 증가했다. 영국 식민지는 2차대전 이후 급감하는데, 1935년에 372명이던 식민성 행정직원 수는 1954년에 무려 1,661명으로 늘어난다.

왜 그럴까? 왜 관리의 수와 업무량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파킨슨은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공무원의 생리가 원래 부하직원을 계속 늘리려고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공무원들이 서로를 위해 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일이 많아지면 동료인 B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동료의 경쟁력을 강화시키지 않고), 대신 자신의 밑에 C와 D를 두는 선택을 하고,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몇 단계의 수형도가 그려지고, 결국 A는 애초에 필요없었던 관리역할에 치이면서 연신 '바쁘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다는 것이다.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거나 또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파킨슨이 다루는 주제의 장점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만한 주제인데 이를 어느 누구도 체계화시키지 못한 것을 날카로운 분석틀을 가지고 신랄하게 찌르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에 실린 다른 9가지 주제 역시 이러한 점에서는 비슷하다.(이 책에 쓰인 10가지 주제 중 첫번째 주제만이 '파킨슨의 제1법칙'이다.) 회의에서 논의 시간은 안건 순서가 아니라 액수에 좌우한다는 분석 역시 신랄하기 그지없다. 1,000만 달러 사업은 그 복잡한 안건에 대해 알지 못하고, 또 어마어마한 액수에 대한 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관계로 금방 통과시키던 위원들이, 2,340달러 짜리 안건에 대해서는 45분간을 쓰고, 4.5달러 짜리 안건에 대해서는 1시간 이상을 소비하는 가상의 사례를 제시할 때는 쓴 웃음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다. 파킨슨은 1,000만 달러 짜리 안건과 10달러 짜리 안건에 소비되는 시간은 똑같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위원들의 관심이 사라지는 금액의 영역이 있다는 주장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처음 접하면 명쾌하고 후련하고 공감이 가지만,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의구심이 일견 든다. 단적으로 말하면 먼저, 파킨슨의 법칙에는 가정은 있어도 명제는 없다. 공무원 수가 일의 양에 상관없이 늘어나는데 그 이유가 관료화 때문이라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가정이다. 파킨슨이 증명하고자 하면서 가지를 치면서 늘어나는 관료의 팽창 예를 드는데, 이는 가정일 뿐이다. 좀 더 면밀한 원인분석 과정이 아쉽다.(다른 책에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이 책에는 드러나 있지 않다.) 설사 원인분석 과정이 있더라도 그것은 원인의 지나친 단순화에 가깝기 십상이다.

또 하나 '특수'의 '보편'화가 거슬린다. 동서양 부자의 삶의 양식이 다르다는 점을 분석할 때 파킨슨이 얘기하는 중국 백만장자의 재산관리방식이나 탈세의 기술은 보편화된 진리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렵다. 병든 조직 판별법 역시 '특수'를 '보편'화함으로써 전체적인 설득력을 스스로 깎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기술방식을 보자면 '논객으로서의 파킨슨' 이전에 '경제학자로서의 파킨슨'의 모습이 보여지지 않는 게 상당히 아쉬울 따름이다. 

단, 세상에 대한 거침없는 재단, 자유로운 접근, 이에 근거하여 쏟아내는 번뜩이는 조직에 대한 풍자는 여전히 감성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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