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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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아이를 데리고 갈 때마다 가슴 한켠에서는 일말의 자책감이 항상 남는다. 그것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얘기할 때와 비슷한 심정이다. 아이에게 저 방책과 해자 건너편의 진실에 대해서 얘기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기본적으로 갇힌 동물들의 슬픔과 ‘마주 대해서는’ 그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마술사의 마술이 탄로나지 않을 때 관객은 즐거워 하듯, 동물원 역시 동물의 고통을 적당히 외면할 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동물원은 기본적으로는 동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동물원의 역사를 봐도 그곳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럴지라도 동물원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화해오지 않았나 하는 일말의 희망은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동물원의 탄생』은 그 희망의 씨앗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이 책은 현대동물원의 시조격인 하겐베크 동물원과 그 동물원을 만든 칼 하겐베크에 관한 글이다. 하겐베크 이전에도 물론 동물원은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동물 전시는 거의 예외 없이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주인의 부와 권력을 강조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그러다 20세기 초반 하겐베크혁명이 일어난다. 하겐베크는 동물들의 점프능력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그 시대 동물공원의 필수품이라 여겨졌던 창살과 울타리가 없는 동물 우리를 고안해낸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해자(垓字)방식이 1907년에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창살 뒤의 좁은 방 안에 갇힌 동물을 보기 싫어하며, 대신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는 듯한 전시를 더 좋아한다. 하겐베크는 동물의 존엄성을 자각했기 보다는 이 점을 충실히 따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 ‘창살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진 순간에도 동물들은 ‘살육으로부터의 해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겐베크 회사는 어미를 죽인 다음 어린 코끼리나 호랑이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얻은 동물도 사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금방 목숨을 잃기도 했다. 어떤 동물 운송기를 보면 아프리카 내륙에서 홍해까지 걸어나오는데 54일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동물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하겐베크 이후 동물원의 역사는 100년을 더 흘러왔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니겔 로스펠스’는 동물 전시 측면에서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더욱 정교해지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자연이 창조되었고 관리시스템 역시 진화했다.

그렇다고 동물을 위한 멋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이런 유형의 전시들이 추구하던 바는 관람객들의 즐거움이었지 동물을 위함이 아니었다”고 말함으로써 현대동물원의 한계에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있다.

요즘 동물원을 보면 ‘보호’와 ‘교육’의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듯 하다. 보호를 위해서 동물원을 더욱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교육을 위해 체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실제 요즘은 직접 동물을 만질 수 있고, 먹이도 줄 수 있는 ‘체험’을 주제로 한 전문 동물원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고상한 ‘체험’에도 ‘인간 중심 정신’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원은 변화 발전해왔지만, 그 근본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하겐베크혁명은 전시방법의 혁명일 뿐 근본정신을 뒤흔든 혁명은 아니다. 진정한 혁명은 동물원이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동물의 입장을, 그리하여 자연의 입장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에 동물원에 가거들랑 ‘아이들의 웃음’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모습’도 진지하게 바라볼 일이다. 사람들이 동물들의 슬픔을 ‘마주 대하기’ 시작할 때 동물원은 서서히 변해갈 것이다. 그것이 변화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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