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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ㅣ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감옥은 흔히들 소외의 공간, 억압의 공간으로 상징된다. 그러나 어느날 깊은 우물물 속에서 무심히 길어 올린 두레박물이 시리도록 찬 청정수가 되어 우리 온몸을 소스라치게 깨울 때 우리는 흠칫 놀란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비쳐지는 밝은 미소, 가장 단절된 곳에서 이어낸 하나 되는 삶, 가장 억압된 곳에서 그려낸 자유, 가장 소외된 곳에서 얘기하는 사랑이 강한 대비가 되고, 큰 울림이 되어 우리를 쩌릿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청정수를 접할 때 감옥을 과연 ‘닫힌 공간’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밖으로 닫혀 있기에 안으로는 무한히 열려 있을 수 있는 세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감옥이 성찰의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둠과 상실과 고립 속에서 격랑은 거친 물결처럼 일기 마련이고, 이를 인고의 세월 속에서 정제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성찰일 것이다. 격랑이 잦아들면 강물 바닥이 훤히 드러나며 고요를 찾게 된다. 신영복씨의 강물 바닥에는 ‘인간’이 있었다면,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씨의 바닥에서는 ‘야생초’가 빙긋 웃고 있었다.
윤구병씨는 『잡초는 없다』에서 잡초에 대한 농사철학을 얘기한 바 있다. 마늘밭을 온통 풀밭으로 바꾸어놓은 그 괘씸한 잡초들을 죄다 뽑아 던져 썩혀버렸는데, 사실은 그 풀들이 잡초가 아니라 별꽃나물과 광대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후회하면서 터득한 철학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굳은 자가당착 때문에 폭군처럼 사물을 지배하고 절대권력자처럼 사물을 재단해 왔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면 제거대상이 될 뿐이다. 그리고 사물의 가치는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 용도를 가지고 있느냐로 재단하고 이를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
황대권씨는 감옥 안에서 잡초를 비로소 야생초로 받아들이고 야생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감옥에 갇힌 지 5년 동안은 억울한 간첩죄에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지내다가 급기야 몸마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연요법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도소 안에서조차도 미천한 존재로 치부 받아 항상 제거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잡초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관심이 거듭된 관찰을 낳으면서 점차 생태주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특별히 허락을 받아 안동교도소 운동장 한 구석에 야생초 화단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화단을 구분 짓기 위해 쌓아놓은 작은 돌 몇 개로는 사회의 인식을 방어하기에는 어려웠다. 교도소 구내 청소하는 사람들은 가꾸고 있는 야생초를 마구 뽑아버리기도 했으며, 같이 밭을 일구는 동료는 상추 성장에 방해가 되는 야생초를 솎아 내버리기 일쑤였다. 상추나 비름이나 명아주나 모두 같은 야채로 보이는 황대권씨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의식의 옹벽’이었다. 반면 이렇게 가꾸어낸 야생초로 만든 모듬풀 물김치, 들풀모듬 무침, 야초차, 들품모듬 잼 등은 옹벽을 넘는 전령이 되기도 했다.
황대권씨가 옥중편지 글 사이에 그려놓은 야생초 그림은 잡초에 대한 ‘복권’ 그 자체다. 잡초가 언제 그런 섬세한 필치 속에 자신을 표현한 적이 있었던가. 황대권씨의 손 끝에서는 잡초의 미세한 떨림, 수줍은 모습, 그리고 자랑하고 싶었던 숨겨진 아름다움이 하나 하나 살아났으며, 그것은 곧 잡초의 야생초로의 복권이자 탈피를 알려주는 기쁨의 타종이 되었다.
글과 그림 속에서 살아난 야생초는 식용이나 약용이라는 실용적 의미로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황대권씨는 야생초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종의 다양성을 유지시키며, 자연과 공생하면서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황대권씨가 감옥 안에서 끌어올린 야생초 사랑은 안일한 사회를 일깨우는 경종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야생초와의 공생’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감옥에서 걸어나온 야생초 사랑이 온 산야를 사랑으로 감싸, 사람과 자연의 즐거운 공생을 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