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이팅 게임 - Science Pioneer(위대한 과학의 개척자들) 1
체리 루이스 지음, 조숙경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지위는 상승했는가. 인간의 인식의 지평은 넓어졌지만, 아쉽게도 우주의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지위에서는 내려와야만 했다. 인간의 지위에 대한 첫번째 반격은 지동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것에 의해 우주가 인간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한 행성에 실려 돌고 도는 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말았다.
두번째 반격은 진화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고매한 정신적 존재가 한 미물에서부터 진화되어 왔음을 인정하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세번째 반격은 프로이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주의 중심이 아니든, 진화의 산물이든 인간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훌륭히 구축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뛰어난 인간마저 의식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무의식세계의 지배를 한편으로 받고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또 하나의 흠집이었음에 자명하다. 더 이상 추락할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충격이 가해진다. 그것은 바로 '지구의 나이' 논쟁이다.
19세기만 해도 지구의 나이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성경의 창세기에 근거해 시간을 추산한 결과 지구의 나이를 6천년으로 보았다. 과학자 진영에서도 지구의 나이는 길게 봐야 2천만년으로 보고 있었다. 열역학을 확립한 캘빈은 지각의 표면이 식는 시간을 계산하여 2천만년을 주장했고, 이 분야에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2천만년의 시간은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구상에서 인간의 지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인간은 지구가 생긴 이래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 출현했지만, 그래도 지구 나이에 비해 지배하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기에 '지배자'로서의 풍모에 손상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윈이 남부 잉글랜드의 한 계곡을 조사하면서 침식에 의해 암석의 돔이 노출되기까지는 최소한 3억년이 걸렸다는 계산을 내놓았을 때는 한때 '출렁'거렸다. 그러나 다윈은 지질학자들의 반박에 즉각 휘말렸고, 결국 다윈의 '우연한 계산'은 철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세기말 원자의 핵, 라듐의 라돈으로의 붕괴, 헬륨 등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지구 시계'가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1903년 소디와 러더퍼드는 '붕괴 사슬'을 확립해냈고, 그 뒤 10년 뒤 아서 홈즈는 이 방법으로 지구의 암석을 분석하는 방법을 발표하였다. 이리하여 '지구의 나이' 논쟁은 중요한 분기점을 통과했고, 20세기 중반, 인류는 드디어 지구에게 46억년이라는 나이를 부여하였다.
46억년이라는 나이로 인해 인류는 지구의 자정 직전에 태어난 미미한 존재이자, 지구의 일시적인 지배자로 머무를 수도 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구의 나이’를 찾는 여행은 단지 지구의 존재위치를 자리매김 해주기 위한 과학자의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위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여행은 고행이 필요했다. 수많은 지질학자, 생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들이 이 여행에 동행했다. 이들 가운데 지구의 나이를 찾는 마라톤에서 ‘마(魔)의 고개’를 넘은 사람이 바로 아서 홈즈였다. 비록 1953년에 지구의 나이를 정확하게 이끌어낸 과학자는 패터슨에게로 돌아갔지만, 패터슨은 그의 스승인 아서 홈즈의 어깨 위에 올라선 것이라 할 수 있다.
<데이팅 게임>은 아서 홈즈에 관한 책이다. 지구의 나이를 찾아 나선 한 숨은 과학자의 일정을 다룬 책이다. 인간은 지구의 나이를 정확히 계산해 낸 패터슨만 기억할지 모르지만, 지구는 자신의 나이를 찾아준 은공을 아서 홈즈에게 돌릴 지도 모른다.
20세기 들어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데이팅 게임’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게임은 러더퍼드, 아서 홈즈, 패터슨 등의 과학자들을 승자의 반열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지만 최후의 승자의 몫은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돌려야만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지구다. 그리고 인간은 시상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서는 지구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쳐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