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0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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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서양에는 로마가도가 있다. 만리장성의 경우 기원전 3세기의 진시황시대 및 16세기의 명나라시대에 건설된 것까지 합치면 무려 5천km. 그럼 로마 가도는? 기원전 3세기부터 5백년 동안 건설한 도로 총길이는 지선도로를 뺀 간선도로만 해도 8만km에 이르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가도의 연장선에 있는 다리 역시 3천개를 구축했는데 그중 3백개는 지금도 사람이나 자동차가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로마의 테베레강에 놓인 11개의 다리 가운데 5개는 2천년 뒤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가도도 가도지만 수도(水道)도 놀랍다. 로마 관광사진에 큰 다리처럼 나오는 수도는 그저 로마인의 전시행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들여다보면 로마의 인프라가 얼마나 견고한지 그 힘이 느껴진다. 기원전 4세기에 첫 시공된 수도는 모두 11개가 건설되었다. 그 중 기원전 2세기에 건설된 마르키아 수도를 보면 총 길이가 92km인데 그 중 81km가 지하로 흐르고 11km가 지상으로 흐른다. 그 지상의 11km 중에는 9.6km가 고가 수로로 되어 있다. 90여km 떨어진 수원에서 로마시내까지 물이 흘러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완만한 경사를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서 산을 뚫고, 고가 수로를 놓은 것이다. 현대 산업의 동맥이 고속도로라면 고대 로마의 동맥은 이 수로였던 것이다. 지금 고속도로에 자동차가 흐르듯이 2천년 전 로마는 수도에 물이 끊이지 않고 흘렀던 것이다. 마르키아 수도의 경우 하루 수송량이 185,600㎥(현대인 37만명이 소비할 수 있는 양)였으니 로마는 이 풍부한 ‘수혈’을 통해 화려한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로마의 수도는 로마 제국 각지에서 건축되었다. 속주민에게 로마의 힘을 자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프라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로마 수도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옛 영광을 웅변해주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러한 얘기를 『로마인 이야기 10』에서 쓰고 있다. 그동안 9권까지 쓰면서 묵혀 두었던 로마의 인프라에 관한 얘기를 이 한 권에 모두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니 9권까지 따라오지 못했던 독자들도 10권만은 별도로 읽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진정한 위대성은 인프라 구축에 있다고 하면서 이의 방대함과 견고성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좀 다른 면에서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1세기경에 로마 인구는 무려 1백만명이었다. 잘 뻗은 가도는 물자의 집중도 야기하며 로마의 팽창을 가속화시켰을 것이다. 로마는 이러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도 수도와 같은 여러 인프라를 만들었을 것이다. 로마를 중심으로 방사선처럼 뻗어가는 로마의 수도는 로마 문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2천년 전의 로마인은 현대 최고 문명인들이 사용하는 만큼의 물을 소비할 정도였다. 그러나 성장과 풍족함은 항상 문제를 가리거나 희석화시켜버리곤 한다. 이러한 인프라는 로마를 인구압의 문제로 몰아넣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현대도 1백만명 정도의 도시라면 수많은 문제가 나타나는데 로마라고 해서 그렇지 않을리는 없다. 그러나 풍성함만을 알았던 ‘자신있는’ 로마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던 듯 하다.

항상 ‘적극적인 방법’이 최선은 아닌 것이다. 도심 주차난이 심각할 때 도심에 주차장을 늘리는 ‘적극적인 방법’이 오히려 주차장을 줄여버리고 주차료를 높이는 ‘소극적인 방법’보다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로마가 멸망하고 인구가 3만으로 줄어들었을 때 로마의 수도는 제 할 일을 못찾고 방치되고 말았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로마의 인구 집중이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수도를 늘려나가는 정책은 문명에 대한 과신이었다는 생각만은 든다. 아직도 도처에 남아있는 수도의 웅장함 속에서 왠지 문명의 그늘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속이 좁아서일까. 2천년 전의 문명에 대해 감탄사만을 연발할 때 우리는 현재 우리의 문제점도 읽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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