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우리 나무
박상진 지음 / 눌와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전에 조선시대 고가구전 관람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가구에 대한 지식이 조그마한 역사지식과 고향마을 집의 옛 기억에 대한 것밖에 없는지라 1층을 둘러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2층을 둘러보던 중에 관람객에게 고가구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안내자를 만났는데, 그 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재질과 양식, 기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너무나도 새록새록 다가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알면 보이고 보이면 애정이 가게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게 그렇다. 그 사람이 어떤 사물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방법은 그 사물에 대해 얼마나 세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로 대별될 수 있다. 그 분야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꿰고 있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지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개는 많이 안다는 것은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동일어가 되기 십상이다.

그 애정이란 게 희한하다. 어제 아무 생각없이 보던 돌도 어느날 사랑스럽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낸 후 그 책은 마치 큐피드화살처럼 많은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지난번 갔던 소쇄원도 이제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사랑’까지 하게된 것이다.

그 소쇄원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와서 꼼꼼히 둘러보던 사람들을 본 기억이 있는데, 얼마전 경복궁에 갔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느 30대 여인 두 명이 『궁궐의 우리 나무』란 책을 들고 와서 떨어진 낙엽을 주워들고 일일이 대조하며 나무에 대한 사랑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도 알아야지만 ‘사랑’이 가게되는 법이다. 나무가 거리의 소품이자 아파트단지의 장식물로 전락해버려 사실 의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잘 다가오지 않는다. 『궁궐의 우리 나무』의 저자 박상진씨는 그런 나무에게 눈길을 돌릴 수 있는 ‘나무 사랑법’을 얘기하고 있다.

굳이 궁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궐에는 조선시대 건물만 옛것이 아니다. 거기에 심어져 있는 나무도 옛것이다. 우리 고유의 정신은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도 깃들어 있는 것이다. 궁궐에 가거든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만 말고, 몇십년, 몇백년 전에도 묵묵히 서 있었던 나무 숨결도 어루만져볼 일이다.

우리 나무를 얘기하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궁궐에 있는 나무를 얘기하고, 또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궁궐에 있는 모든 나무들의 생태지도(地圖)를 상세히 그려놓고 있는 점에서 저자의 ‘나무사랑법’을 엿볼 수 있다.

나무에 대한 얘기를 구구절절이 써 놓았어도 실제 그 나무를 봤을 때 알아볼 수 없다면 저자의 ‘나무사랑’은 전이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면서 출석부를 통해 이름을 외우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궁궐의 우리 나무』는 아이 사진이 부착된 것은 물론 아이 자리 위치까지 기록되어 있는 출석부와 같다.

사실 예전에는 나무를 책을 통해서 익힐 필요가 없었다. 그저 산천에서 뛰어 놀면서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도상(圖上) 훈련을 통해서 익힌 다음에야 나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예전에는 물놀이 하면서 익힌 수영이었지만, 이제는 체육교실에 가서 배워야지만 할 수 있듯이 말이다.

『궁궐의 우리 나무』는 나무에 대한 지식을 주는 책이라고만 할 수 없다. 설사 그 출발이 ‘지식’에 대한 욕구이었을지언정 그 끝은 ‘사랑’으로 끝날 것이다. 그 출발은 책에서 시작하겠지만, 그 끝은 주변의 나무를 둘러보는 것으로 끌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주위에는 예전에는 몰랐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나무들이 숨쉬고 있었다는 색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에 대한 사랑, 그것은 나무에 대해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람 사귀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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