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고심 고심하다 결국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물과 인간관계를 그리는 그 명징한 울림은 여느 촌철살인과 같은 담론을 압도하고, 새싹 하나를 통해서도 그리는 따뜻함이란 성인의 미소보다도 부드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신영복님의 글 중에서도 특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좋아합니다. <나무야 나무야>나 <더불어 숲> 또한 최고의 평점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었으나, 아무래도 이들 책에는 출판사의 기획으로 시작된 글쓰기라는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을 조금은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이 이들 책과 특히나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감옥...>이야말로 신영복님이 사회의 한 가운데로 우뚝 걸어들어가 쓴 글이라는 점입니다. <더불어 숲>에서 다른 나라의 사는 모습 깊숙이 들어가 보고, <나무야 나무야>에서 다른 여행지를 둘러보았지만 <감옥...>만큼이나 사회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가보지는 못한 듯 합니다.

저는 <감옥...>이 슬픔 또는 낙담밖에 할 것 없어 보이는 수형생활 속에서 건져올린 주옥같은 글이라거나 이와 비슷한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날카로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그의 글은 슬픔이나 낙담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글은 연꽃이지만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수렁이나 진흙더미가 아니었습니다.

박노해씨가 <사람만이 희망이다>고 하며 '절망'을 쫓아내려 하고, <오늘은 다르게>를 얘기하며 '어제'를 딛고 일어서려 하는 것은 그가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지낼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자신의 운동방식이 틀렸음에 괴로워하는 것이지 그가 자유롭지 못함 때문에 피를 토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슬픔과 낙담은 보는 사람의 주관일 뿐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진정한 인생을 산 것이며, 그의 글은 그 인생을 통해서 건져올린 명징한 사색인 것입니다.

그의 글 어느 구절에서 그는 감옥을 사회의 미니어처로 표현했습니다. 역삼각형의 꼭지점이 지면의 한 곳과 만나는 그 지점이 바로 감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감옥이야말로 사회의 모든 모순과 인간관계의 모든 모습과 인간이 자연을 만나 느낄 수 있는 사고 범주 모두가 축약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영복님이 얘기하는 여름 징역살이 얘기나, 창녀촌의 노랑머리 얘기 등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 감옥 안이 아니고서는 그려내지 못할 삶의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옥...>의 책을 읽으면서 이중섭이 담배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는 느낌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몸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지만, 그의 글은 옥쇄에 갇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형식이 아니면 옥담을 넘을 수 없는 글이기에 자신의 내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색을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쓸 수밖에 없는 글, 세 번 접어 봉해야 하는 좁은 봉함엽서에 갇혀야 하는 글, 생각날 때 쓰는 글이 아니라 집필을 신청해서 써야만 하기에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글, 이렇게 그의 글이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이 통탄스러웠습니다.

그의 글에 슬픔이 묻어난다면 그것은 그가 기약없이 갇혀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글에 족쇄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글에서 향기가 나는 것은 그의 글이 박토에서 피어나야 하고 고통이 길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글이 꿈틀거리는 사회의 한 가운데서 풍부한 자양분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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