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강미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격동기는 어느 때일까. 혁명(정치적이든, 산업적이든)과 전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양자는 짧은 기간 안에 어떤 것을 파괴하고 어떤 것을 건설한다. 그 파괴와 건설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인류사는 이 기간에 응축되어 표출되고 충돌되기 마련이다.

전쟁 역시 인류사를 크게 움직여왔다. 전쟁사만 제대로 쓰다 해도 인류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인류는 전쟁의 징검다리를 짚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 전쟁에서 어떤 것이 결정적인 승패의 요인으로 작용했을까, 리더십이 가장 잘 발현되고 명암이 뚜렷이 교차한다는 전쟁에서 러더십을 잘 발휘한 지도자는 누구였을까 하는 주제는 그저 호사가들의 궁금증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릭 두르슈미트의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는 우리의 눈길을 끈다. 저자는 BBS와 CBS의 종군기자로 30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생존해 있는 그 어떤 장군보다 더 많은 전쟁을 겪고 생존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전쟁의 생리를 꿰고 있는 저자가 갖가지 자료와 백 명 이상의 장군, 역사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 10개의 전쟁을 선별했고, 이 전쟁에서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전환요소(hinge factor)와 군대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자질 등 두 가지 요소가 어떻게 전쟁과 역사의 방향을 뒤바꿨는가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 책 모두 우연한 전환요소가 세계사를 써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책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 두 책이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워털루 전투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두르슈미트는 그 전투 과정에서 끊임없이 '~했다면 ~텐데' 이라는 가정이 나온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는 우연의 산물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 우연의 파도에 타는 사람은 승리하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패배의 나락에 떨어질 듯만 하다. 저 거대한 적군의 파상공세도 어떤 우연의 힘 앞에서 꼬꾸라질 수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이지만 츠바이크가 쓰면 달라진다. 그는 우연의 순간이 오지만 그 우연의 순간을 잡는 사람은 '준비된 천재'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인간의 삶으로 아주 드물게만 내려오는 이런 위대한 순간은 그 운명의 순간을 장악하지 못한 인물에게는 모질게 복수하는 법이다. 이런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언제나 천재를 원하고 그를 불멸의 모범으로 만들어주지만 유순한 자는 경멸하며 밀쳐버린다.'

예컨데 두르슈미트의 책에는 역사 인식이 없다. 다만 '전투 해설'만이 있을 뿐이다. 축구공이 어디로 흐르고 있고 지금 어느 쪽이 비었으니 어느 쪽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전투 해설말이다. 그가 쓴 것은 '전쟁사'가 아니라 '전투사'일 뿐이고, 선정된 10개의 전투는 역사의 향방을 바꾼 전투라기보다는 해설하기에 인상적인 전투였을 뿐이다.

역사 인식은 애초에 두르슈미트가 접근하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으니, 지도자의 자질을 거론한 측면에서라도 무언가 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도 역시 부족하다. 축구 해설가가 어느 한 편 입장에 서서 해설하면 해설이 잘 될 리가 없다. 워털루 전투를 예로 봐도 두르슈미트는 애초에 그루쉬의 입장에 서서 볼 생각이 없었다. 그 것 또한 츠바이크와 다른 점이다. 이미 손을 들어줄 사람을 선택하고 해설하기 시작한다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차라리 츠바이크의 책을 다시 한번 더 읽어싶어질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