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 여행>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김훈이라는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구이길래 그의 가슴에는 저리도 풍부한 감성이 숨쉬고 있는 것인가, 이미 50줄이 넘어섰는데도 어찌 이리도 감수성이 풍부할 수 있는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이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서 저자의 얼굴 사진 한 장이라도 소개해줄만 하지만 저자도 출판사도 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어쩌면 저자가 사진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간혹 멀리서 그를 찍은 사진에서 그는 하나같이 카메라를 외면하고 서 있다.

그의 표현은 너무나도 시적이고, 생생하고, 새롭다. 언 땅이 녹는 과정에 대해 그가 표현하고 있는 내용을 보다 보면 나는 책으로부터 멀어져버린다. 그 표현이 거부감이 있거나 너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가 그리고 있는 세계가 너무나도 내밀하여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표현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언 땅이 녹는 것을 보고서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저자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하나 하나 쓰다듬고 있다. 이름을 얻거나 의미를 얻지 못했던 언 땅 녹는 과정이 김훈씨의 표현을 맞아 생명력을 얻고 부활하는 느낌이다.

주마간산이라고 했다. 우리는 속도를 얻으면 주변을 잃는다. 말을 타고 그러할진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더 무어라 말할 게 없을 게다. <자전거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속도를 잃은 대신 주변 사물을 얻는 여행처럼 들린다. 아니 그저 낭만적으로만 들렸으나 책을 읽고 손을 놓는 순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힘들게 여행한 게 아니었다. 그는 속도와 시간을 내준 대신 풍류와 인생의 깊이를 음미했다. 그렇기에 그는 고갯마루에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자전거는 힘을 집중시켜서 힘든 고개를 넘어가지 않고, 힘을 쪼개가면서 힘든 고개를 넘는다'고 말하고 있다. 힘을 쪼개서 간다, 분산된 힘을 겨우 겨우 잇대어가면서 간다 라는 그의 표현에는 힘듬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얘기하는 듯 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 자연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글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산하에 그의 글 같은 것이 한번쯤 쓸고지나간다면 사람들도 산하를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자연만 노래하지 않았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이라는 언론인의 본분이 항상 자리잡고 있는지 산골짜기에서 묻혀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삶을 담느라 자전거 페달을 며칠 밟지 않곤 하는 듯 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시적인 미문(美文)이라고 단언해서는 안된다. 충무공이나 퇴계, 의상과 원효 등을 다루는 부분을 보면 그의 글이 발로만이 아니라 부지런함이나 깊은 소양에서 쓰여지고 있다는 생각 또한 든다.

최근 이윤기씨의 책이나 김훈씨의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 한가지가 있다. 글이란 인생의 무게가 체로 걸러졌을 때 쓰는 것이 은은하게 묵은 글이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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