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거인 - 문화마당 4-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최윤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윤정씨가 쓴 <슬픈 거인>은 '어른들을 위한 어린이 책 길잡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단순히 좋은 책을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 책을 바라보는 시각을 여러 가지 주제를 통하여 전달해주고 있다. 특히 [아기 돼지 삼형제]나 [피오키오의 모험]에 대한 그녀의 시선은 인상적이다.

원래 [아기 돼지 삼형제]는 영국의 민담으로 제이콥스에 의해 문자화된 이후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제이콥스의 책은 그림을 빼고 글만 전체가 18쪽이 되는 동화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내에 유입될 때는 그림만 가득하고 글은 듬성듬성 있는 '애니메이션 세계 명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른바 요약이 된 것이다.

저자는 그 요약 과정에서 글의 깊이와 맛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내용 자체마저도 각색되어버렸다고 한다. 예컨대 원본에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성격을 상황 묘사를 통해서 드러내주고 있으나, 애니메이션'에서는 각각 게으른 돼지, 생각이 깊지 못한 돼지, 부지런하고 생각이 깊은 돼지로 단언적으로 묘사하고 얘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그만큼 줄여버린다는 것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가 길 떠나는 이유도 생략해버리고, 첫째와 둘째 돼지가 늑대에게 잡혀먹히는 내용도 수정해버리고, 마지막 셋째 돼지가 늑대와 숨막히는 줄다리기하는 과정도 생략하면서, 글의 깊은 맛을 없애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그 글을 통해 자아발달 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고 얘기하고 있다.

요컨대 세계 명작을 단시간에 주입시키려는 교육과 출판 풍토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책에 무방비로 열려 있다는 것이다.

두 권으로 된 [피노키오의 모험]이 '애니메이션'으로 줄어들 때는 그 폐해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완역본을 읽어보면 피노키오가 선과 악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면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그것을 뉘우치기도 하는,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린아이이고,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해진다는 것인데 '애니메이션'은 이를 기계적으로 축약하는데만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이 두 글만 읽어도 아이들의 독서 지도가 얼마나 그릇된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피부로 다가온다. <슬픈 거인>에는 이러한 부분 외에 어린이 책에 나타나있는 페미니즘이나 흑과 백의 편 가리기 문제 등을 주제로 어린이 책을 분석하고 많은 책을 추천해주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사주기 이전에 부모들이 아이들 책을 보는 시각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제목 <슬픈 거인>은 몸집이 큰 거인이 주인공 꼬마들이 사는 '집나무'에 들어갈 수 없어 슬픈 것처럼 어른들이 아이들 세계로 편입되지 못하는 것은 슬픈 것이라는 뜻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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