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윤기씨의 책에서는 항상 '서권기 문자향'(書卷氣文字香 - 책을 좀 읽은 듯한 분위기와 문자를 좀 아는 사람의 향내)이 난다. 최근 나온 산문집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는 책 역시 그러하다.

이윤기씨는 책에서 자신은 불교도에게는 예수쟁이로 몰리고, 기독교도들로부터는 절집 처사로 몰린다고 얘기한다. 경상도 사람인데도 전라도 정서를 좋아해 고향 친구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전라도 친구들로부터는 경상도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억울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한글 순혈주의자로부터는 미국에 경도되었다고 지탄받고 영어공용론자로부터는 그들의 손을 만천하에 들어주지 않는다해서 언어 국수주의자로 몰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타가 공인하는 회색분자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중용의 도를 지키려하는 글이라고 예단해서는 큰 코 다친다. 그의 글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1977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에 문단에서 도망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운이 좋아서 단 한 차례 케이오 펀치를 날릴 수 있었던 권투 선수가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 참가하라는 제의를 받은 격이어서 두려웠다고 한다. 그뒤 50살은 넘어야 글을 쓰겠다고 했다고 한다. 50이 넘자 무서운 속도로 토해내기 시작하는 그의 글에는 이른바 연륜이 있다.

그는 회색분자라 하지만 명확한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드는 힘이 있다. 영어나 선진국의 앞선 부분에 대해 그대로 인정하고 설파하는 부분 역시 비난을 감수한 단도직입적 논지의 한 파편이다. 반면 우리의 말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오랜 인생을 살아온 그의 균형이다.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에서 느껴지는 그의 꼬장꼬장한 논지와 품위있는 글귀를 보다 보면 왜 그가 <장미의 이름>을 두 번씩이나 번역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