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꽃핀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박노해씨가 최근 세번째 시집 <겨울이 꽃 핀다>를 내었다. 여기에 실려 있는 시 중 박노해씨의 시 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시를 먼저 인용해본다.

큰 산불이 나고
검은 바람이 불고
푸르던 나무들 불타버린
참혹한 빈 산에
검은 산에

아 그래도 풀씨는 살아
불탄 몸 쓰러져도 뿌리는 살아
여린 싹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중략)

그랬습니다.
일어서 고개 들어보면 절망이지만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희망입니다.

- '검은 산에'

혁명가 박노해는 참혹한 빈 산, 검은 산의 황폐함과 모순됨을 강한 어투로 질타하였겠지만, 구도자 박노해는 '잊혀진 땅 속의 씨알 뿌리'의 희망과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박노해씨의 시 세계는 혁명의 대립은 사라졌지만, 진보를 위한 대립은 아직 강한 생명으로 살아있다. 이를 위해 나아갈 길과 버려야 할 길이 '푸른 싹'과 '검은 산'처럼 선명히 대조되고 있다.

그리고 대조되는 이 양자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일은 뼈를 깎는 구도이자, 지난한 자기 성찰이다. '절망'과 '희망'의 절대적 간극을 박노해씨는 고통스런 자기강제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그 절망에는 현실 직시라는 냉철함이 있고, 희망에는 구도자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박노해씨의 메시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전진을 위한 펄펄 뛰는 생동감은 사라졌지만, '함께'를 위한 조용하고 은은한 울림은 오히려 여전히 생동감 있다. 허리 숙여 '겨울이 꽃 핀다'를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은은한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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